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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Jun 24. 2024

소멸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하지만 8년 만에 다시 만난 파리는 어딘가 변해 있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옛 애인처럼, 사랑은 이미 식어버리고 추억은 벌써 희미해졌다. 안개가 걷힘과 동시에 그 안에 감춰져 있던 신비로움과 은밀함은 사라졌다. 어쩌면 파리는 변한 게 없을지도 모른다. 또한 이제 막 봄이 시작된 파리와 가을 깊이 잠겨 있던 파리는 다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혹은 변한 것은 파리가 아니라 나 자신일 것이다. 

-괜찮아, 그곳에선 시간도 길을 잃어 中-


소중한 것이 변치 않길 바라는 마음은 '그때의 나'를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익어간다는 말은 서글픈 자기 위로에 불과하다. 늙어가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소멸하는 모든 것들은 슬프다. 흑백 사진 속에 건장한 아빠의 모습은 슬프다. 미처 버리지 못한 앨범 속 옛 애인의 증명사진은 슬프다. 응팔의 옛 감성이 슬프고, 이문세의 옛사랑 첫 소절이 슬프다. 


그것들이 너무 소중했기 때문이다. 소중한 현재를 살아야지. 나중에 실컷 슬퍼할 일들을 만들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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