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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Jul 08. 2024

계절에 설레다

저는 여름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에요. 살집이 많지 않아서 짧은 소매 입기를 좋아하지 않고, 몸에는 열이 많아 더운 날씨는 더욱이 견딜 수 없어합니다. 습한 날씨에 끈적이는 기분은 또 어떻고요. 여름이 오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던 날도 있을 거예요. 


장마가 찾아든 요 며칠, 비가 와서 젖은 땅이 마를 일 없이 축축하기만 해요. 습한 날씨에 걷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서 요즘은 일을 마친 후에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너무 얇지 않은 이불을 덮고 에어컨을 켜고, 좋아하는 음악과 빗소리를 들으면서 생각해요. '여름이구나.' 기다리지 않았던 계절에도 행복은 어김없이 찾아들더라고요. 


-함부로 설레는 마음 中-


아파트 5층 베란다 바로 밑, 자귀나무 꽃이 끈질기게 피어있다. 이렇게 오랫동안 화려함을 잃지 않는 꽃이 있었던가. 화무십일홍이라고 하였는데 어찌하여 자귀나무꽃은 화무이월홍인 걸까. 6월부터 핀 자귀나무 꽃이 질릴 법도 한데 여전히 자귀나무 아래를 지날 때마 그 고운 자태에 감탄하게 된다. 여름이구나. 


더위를 유난히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에게도, 그래서 몇 년에 한 번쯤은 그냥 여름이란 계절이 생략되어도 서운할 것 같지 않은 나에게도 여름은 소소한 설렘을 선사한다. 후드득 느닷없이 떨어지는 소나기에 흙냄새가 올라올 때, 샤워 후 선풍기 앞에서 무념무상 상태로 있을 때,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발 담그고 백숙 닭다리를 잡고 뜯을 때, 삼복더위에 체내수분함량이 실시간으로 떨어지는 걸 느끼다가 냉장고에 2도씨로 냉각된 보리차를 벌컥벌컥 들이켤 때. 역시나 계절은 각각의 이유로 설렌다. 아 물론, 한 번쯤은 그냥 생략되어도 여전히 서운하진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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