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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Q Oct 24. 2024

선생님 그거 알고 계셨어요?

"선생님! 혹시 단톡방에서 아이들이 다툼이 있었는데 알고 계셨어요?"

알 리 만무하다. 겨울방학 기간이고, 교사가 아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감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알고 계셨어요?"라는 질문엔 힐난과 서운함이 섞여있었다. 일을 크게 만들지 않고 싶었다. 남자는 상냥하지만 관료적으로 대응했다.  

"아~ 그런 일이 있었군요. 저는 몰랐습니다."

카페 밖 하늘엔 한 줌의 햇빛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기세로 빽빽하게 잿빛 구름이 깔려있다. 곧 함박눈을 뿌릴 기세다. 카페 안에서 여자는 커피잔을 만지작 거리며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 소개팅을 시작한지 10분도 되지 않아 남자는 걸려오는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 짙은 눈썹에 둥글둥글한 인상의 남자가 여자는 마음에 들었다. 남자는 잠깐의 통화가 될 것이라 생각하고  양해를 구한 후 밖으로 나왔다.  통화를 하며 곤란한 얼굴로 통창 너머로 시선을 돌리다,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찡긋 웃어보이며 괜찮다는 시그널로 손가락을 밖으로 휘휘 날려보낸다. 

"단톡방에서 우리 아이가 따돌림을 당하고 있어요. 선!생!님!"

"아 그렇군요.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일단 단톡방 이름부터 마음에 안 들어요. 6공주가 뭐예요. 6공주가. 어쨌든 그 단톡방 친구들끼리 주말에 마라탕을 먹으러 가기로 했나봐요. 그런데 주말에 우리 아이는 가족 여행이 있어서 마라탕을 못 먹으러 간다고 이야기를 했죠. 그랬더니 미료가 오예~라고 하는 거예요. 우리 수진이가 같이 마라탕을 먹으러 가지 않는 게 아주 신이 난다는 뜻이 아니고 뭐겠어요?"

생각보다 학부모와의 통화가 길어질 거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받지 않을 걸 그랬다고 남자는 생각했다. 겨울방학이고 종업한 상태라 무슨 일이 더 있을까 싶었다. 새학년에 대한 문의전화나 아니면 그동안 고생하셨다는 말쯤일 줄 알고 전화를 받았다. 식어가는 커피를 마시는 여자의 얼굴이 계속 신경쓰인다. 여전히 선한 미소를 띄며 남자의 통화를 응원한다. 

"그런데 다른 아이들은 그냥 보고만 있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된다고, 우리 수진이 편을 들어줘야하는 거 아닌가요? 아무 말도 안 하는 아이들도 똑같이 따돌리는 거죠."

아이들은 곤란했을 것이다. 누구하나 거들거나 편을 들었다가는 곤란해질 수 있으니 말이다. 아니, 어쩌면 아이들은 아무 생각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훨씬 더 관계와 소통에 있어서 서툴고 미숙하다. 

"수진이가 속이 많이 상했겠어요. 그렇지만 다른 아이들이 수진이 편을 안 들어줬다고 해서 따돌림을 당했다고 보기엔 조금 무리가 있어요 어머니."

"네?"

남자는 수화기 너머 찡그린 얼굴이 떠올랐다. 

"아니, 아이들은 그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지 곤란해서 아무말도 안 했을 수도 있고, 미료가 오예~라고 말한 것 자체를 엄청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아서 말을 안 한 것일 수도 있거든요. "

"선생님은 늘 이런 식이더라."

은연중 말끝이 짧아졌다. 

"지난 번에 있었던 일에서도 미료 편만 드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구요."

"아 그러셨어요? 저는 누구의 편도 아닙니다 어머니. 그저 누구도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죠."

남자는 어정쩡하고 비겁한 태도를 취했다. 이런 류의 민원은 항상 모두의 말을 들어보기 전까지는 명확하지 않다는 걸 십여년의 교직생활을 통해 터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료와 수진이는 1학기에도 일이 있었다. 아무래도 6명의 친구들이 몰려다니다 보니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아니, 오예~라고 했다니깐요. 미료는 우리 아이가 6공주 무리에서 빠지는 걸 기뻐했다구요.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그걸 보고 방관했고요."

"아무말도 하지 않은 걸 무조건 방관이라고 말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어머니."

나름 예의를 갖추려는 남자는 말끝마다 어머니를 붙였다. 그게 예의인지 무례인지는 본인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한두번도 아니고 이런 일이 자주 있었어요. 그런데 선생님은 그때마다 뭘하셨죠?"

"어머니, 저는 단톡방에서 일어나는 일에 다 관여할 수는 없어요. 단톡방을 다 확인할 수도 없고, 설령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관여하고 교육해야하는지 그 범위도 애매해요."

"그래서 제가 알려드리는 거잖아요. 미료가 '오예~'라고 했고, 다른 아이들은 미료에게 잘못을 지적하거나 우리 아이를 위로하지 않았어요. 그런 걸 바로 왕따라고 하는 거예요. 왕따!"

사회가 만든 언어는 종종 프레임을 만든다. 왕따라는 말이 통용되기 시작하면서 '내가(혹은 내 자녀가) 놀고 싶은데 다른 친구들이 놀아주지 않는 행위'를 왕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따돌림과 놀지 않는 것조차 구분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살고 있다. 본인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 피해자가 되어버린다. 

남자가 상처받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아이들 뿐만이 아니었다. 이제 바닥이 드러난 커피를 소중하게 나눠 마시며 애타게 남자를 기다리고 있는 여자의 인자했던 미소는 조금씩 굳어가고 있었다. 소개팅을 위해 새로 산 신발 안으로 찬 겨울바람이 들어온다. 헌 신발보다 새 신발이 더 발이 시렵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얼른 통화를 끊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진다. 

"제 생각엔, 일단 아이들에게 연락해서 자초지종을 물어봐야할 것 같습니다. 수진이가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다른 아이들은 왜 가만히 있었는지 한번 물어보겠습니다. 그리고 단톡방에서 나오라고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오해가 자꾸 생기는 것 같아서요. 그리고 아이들 부모님들께 연락해서 상황을 알려드리고 단톡방의 문제점에 대해 설명드리려구요. 아이들끼리 소통할 일이 있으면 전화로 하거나 일대일로 문자를 하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좋지 않은 신호였다. 

"아니, 아이들끼리 이런 게 한두번이 아니잖아요. 그 정도로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잖아요. 선생님."

"수진이에게 어떤 의도로 그런 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사과가 필요하다면 사과를 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사과가 필요하다면이요?"

"네! 수진이 입장도 들어봐야하니까요.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부분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고 단톡방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대화들을 파악도 해봐야하니까요."

"거봐요. 선생님은 늘 수진이 편이잖아요."

"아니, 제가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해야하니 다른 친구들의 말도 들어보겠다는 뜻입니다."

"맥락이고 뭐고 "오예~"라고 한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선생님. 그 말 때문에 우리 미료가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고요."

"네 그래서 그게 사실이라면 사과를 시키겠다는 겁니다. 다른 아이들 말도 들어보고요."

"아 됐고요. 다른 학부모님들에게 다 전화하세요."

잠시 '다 전화하세요'에 담긴 함의를 생각하던 남자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졌다. 명령조의 말투도 그러하거니와 담임으로서의 권위가 상실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학부모님들께도 전화드린다고 제가 이미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어머니께서 지금 말씀하신 건 좀 다른 의미인 것 같네요."

말을 하다보니 남자 언성이 높아졌다. 

"아이들 부모님들께 전화해서 당신 자녀가 미료를 따돌렸다고 알리는 건가요? 아직 다른 친구들 이야기도 안 들어봤고, 무작정 전화해서 상황을 질책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여자는 답이 없었다. 남자는 그 공허함에 더 화가 났다.

"어머니가 갑이고 제가 을이에요?"

이젠 화가 아니고 성질이었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제가 무슨 갑질이라도 했다는 말인가요?"

"말씀이 그렇잖아요. 제가 분명히 상황파악부터 하겠다고 말씀드렸죠. 그런데 다른 학부모들에게 전화해라~ 이런 말투에는 그냥 무조건 다른 아이들은 다 잘못한 거다. 학부모들에게 전화해서 경고라도 해라 이런 말씀이시잖아요."

"제가 언제 그렇게 말씀드렸어요? 그냥 학부모님들께 전화하라는 거예요."

"그러니깐 전화해서 뭐라고 하냐구요? 제가 처음에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드리겠다 말씀드렸더니 그걸로는 안 되겠다면서요. 그러니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전화해라~라는 말은 다른 의미가 아니고 뭡니까?"

이제 감정싸움이 되어가고 있었다. 문득 카페 안을 들여다보니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수화기 넘어로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 우시는 거예요?"

"아니 제가 무슨 갑질을 했다고 그러시는 거예요. 저는 그냥 우리 미료가 너무 상처받은 것 같아서 그래서 조금 격앙되었던 것 뿐인데, 선생님은 저를 무슨 갑질하는 학부모로 몰아가시는 것 같고......"

"아니 또 왜 그러세요. 저도 미료가 기분이 상했을 거라는 건 알고 있죠. 그런데 다른 아이들 말도 들어봐야하겠다 싶어서 그런 겁니다."

한동안 위로와 공감과 자책이 섞인 통화가 계속되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렇게 통화는 끝이 났다. 통화시간을 확인하자 1시간 46분이 지났다. 

통화를 마치고 남자는 카페로 돌아왔다. 자리에 여자는 없었다. 거의 두 시간을 혼자 기다리다 일어난 것이다.남자의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교차했다. 떠나버린 여자에 대한 미안함, 학부모와의 갈등으로 인한 스트레스, 그리고 자신의 대응에 대한 후회. 이 모든 감정이 뒤섞여 남자는 종업원에게 화를 냈다. 자신의 허락없이 테이블을 치운 것에 대해 소리를 지른 것이다. 하지만 그 분노의 진짜 원인이 무엇인지는 남자 자신도 알 수 없었다.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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