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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by 갬성개발자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를 너무 좋아하지만

도쿄의 아동 방임 사건을 소재로 한 <아무도 모른다> 는 보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아버지가 모두 다른 4명의 아이와 어머니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애인과 함께 살기 위해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갔다. 장남은 열네살이었고 6개월 동안 아이들은 방치되었다.

그 기간 동안 막내딸이 사망하는 일도 일어난다.


이 무거운 영화를 보며 감정이입하는 것이 두렵고

이 사건이 실화라는 것을 한번 더 상기시키는 것도 싫었다.


하지만 이 자서전을 읽으며 <아무도 모른다> 를 안볼 수가 없었다.

미디어의 비판이 어머니를 향해 집중될 때, 그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 어째서 소년은 동생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지 않았을까 ?

- 동생들은 오빠는 다정했다고 말했는데 어머니가 신경질적으로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존재였다면 장남도 동생들을 똑같이 대하지 않았을까 ?

- 방치된 기간 동안 그들에는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어떤 '풍요로움'이 존재했을 테고, 남매들 사이의 감정 공유, 기쁨과 슬픔, 그들 나름대로의 성장과 희망이 있지 않았을까 ?

- 전기가 끊어진 아파트 안에서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했을 '풍요로움'을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상실되었는 지를 그려보자


그의 남다른 관점에 감동하며 본 영화는 그의 다른 영화들과 마찬가지로

뚜렷하게 선과 악을 구분하지않았고 도덕적 잣대를 휘두르지 않았다.


<아무도 모른다> 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80번에 가까운 취재를 받았는데,

"당신은 영화 등장인물에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아이를 버린 어머니 조차 단죄하지 않지요" 라는 지적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화는 사람을 판가름하기 위해 있는 게 아니며 감독은 신도 재판관도 아닙니다. 악인을 등장시키면 이야기(세계)는 알기 쉬워질 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관객들은 이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으로까지 끌어들여 돌아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내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게 되는 대답이였다.

그의 영화는 복합적인 인물과 상황을 그려내면서 선악을 희미하게 만든다.

특정 인물에게 비난이 쏠리지 못하기 때문에 관객의 시선은 영화 속 모든 인물들을 거쳐 결국 자신에게로 향하게 된다. 특히 2023년 개봉한 <괴물> 이 그런 체험을 극대화해준 사례인 것 같다.


이 영화로 처음 데뷔한 아가라 유야는 칸 영화제에서 역대 최연소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된다.

영화를 보며 심사위원 중 한명이 많은 영화를 봤지만 잊혀지지 않는 것은 야기라 유야의 얼굴 밖에 없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아역배우와 작품을 할 때의 고민들, '각본은 배우와 소통하며 풍성해진다' 라는 생각, 자연스러움을 이끌어내기 위한 디렉팅 방식들도 너무 인상깊었다.

역시 다큐멘터리 출신 감독답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동진 평론가님의 '야기라 유야의 칸영화제 남우주연상 수상조차 감독의 공' 이라는 말씀이 납득이 갔다.




<아무도 모른다> 위주로 적었지만, 그의 팬이라면 이 책을 보는 것을 추천한다.

영화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는 감독님이 딸의 성장을 지켜보며 나와 아이를 잇는 것이 '피'인지 '시간'인지 자주 생각하게 되면서 나오게 되었고

<걸어도 걸어도> 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어머니의 세속적인 부분을 각본에 많이 담았으며 영화 홍보 문구 '인생은 언제나 조금씩 어긋난다' 도 어머니가 영화로 먹고 살 수 있을 지 걱정했는데 반년만 더 버티셨다면 <아무도 모른다> 까지 보고 안심하지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에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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