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엄청난 더위에 온 가족이 입맛을 잃었다.
거기에 어머니는 기력이 없으셔서 시들시들 하셨다.
2
날은 덥고, 입맛을 잃었는데, 요리를 하실 수 있는 어머니는 아프시고,
그럼 내가 요리를 해야 하는데, 난 간식 밖에 못 만든다.
첨단 과학이 멀리 있지 않다.
절반가량의 레토르트 식품,
이 여름의 희망, 냉면이 상시 주문 가능하다.
나는 오늘 같은 날이 올 것을 알아차리고(?)
넉넉히 간편 냉면을 주문해 놨고,
며칠 전에 가족이 그 비빔 냉면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어제 다시 그 뜨거운 날에 서늘한 물냉면을 만들어서 입맛을 달랬다.
3
냉면이 상당히 적은 양인데도 가족 모두 더위에 지쳐,
맛이 괜찮았고 넘어가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셔서인지,
딱히 양이 적은 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으시더라.
그러나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라는 심정이어서,
평소에 손을 잘 안대는 주전부리도 가져다 먹고,
더우니 시원 달달한 팩 음료도 가져다 마시고...
그런데도 다음날 일어나니 몸이 좋지 않았다.
분명 긴 시간의 수면을 취했는데,
든든히 먹고 체력 보충하고 잠들었는데,
그 긴 수면시간 동안 몸이 더위에 시달려서,
어찌나 지독하게 더운지 숨을 헐떡이다가 깼다.
그때 아버지께서 에어컨 켰다고 나오라고 부르시길래 정신을 차렸다.
전날 주전부리 왕창 했으니 얼굴이 탱탱 부어있어야 하건만,
붓기가 차오르지도 못할 만큼 열대야에 달달 볶여서,
세면대 거울을 보니 퀭한 얼굴이 나타났다.
근데 퀭하기는 한데 또 붓기가 빠지니
턱 선이 날렵해져서...
음? 얼굴이 괜찮아 보이기도 하네?
더위가 사람을 볶는데, 괜찮아 보이게 한다?
역시 시련은 사람을 아름답게 하지... 에잇!
무슨 소리냣! 이 더위는 용서가 안 되는!...에 후.. 너무 덥다.
썽질 낼 힘도 없다.
4
지금은 오전.
에어컨 잘 안 켜시는 아버지께서 정말 예년과 달리,
올해 특히 이번 8월에는 매일 에어컨을 켜주시고 있다.
주로 거실 에어컨보다 안방 에어컨을 켜주셔서,
나는 좌탁과 노트북과 책까지 한짐 지고 가서
안방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작업을 했다.
근데 말이다. 날이 더워서 지금도 안방으로 가고 싶지만,
작업이 하고 싶어서, 좌탁과 노트북 들고 안방에 가고 싶지가 않다.
노트북 자판을 치면 에러가 자꾸 생겨서,
한 문장 쓰는 데에, 받침 있는 글자 개수, 그 이상의 횟수로 에러가 생기니,
침착하게 쓰기 시작하다가 나중에는 화딱지가 나서,
잘 유지해오는 평정심이 휘청휘청, 무너질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에어컨을 마다하고,
지금 내 방 샤랄라 한 기계식 키보드로 랄라~하며 글을 써 날리고 있다.
속이 펑 뚫리는 것같이 후련한데, 그와 달리 육체적 시달림은
정오로 갈수록 짙어지고 있으니...
시련이 사람을 아름답게(?) 한다지만, 이러다가 더워서 다 죽겠네.
5
말복도 지났고 더 진작에 입추도 되었는데
어찌 이리 덥다지?
6
이 글을 쓰는 당일은 광복절.
어릴 때는 휴일인 게 좋았었으나 철이 들면서 정말 귀한 날이라고 생각한다.
79년 전 여름의 이날 더위가 어떠했을지 아는 바가 없으나,
그 감격의 느낌은 오늘 이날의 더위만큼이나 뜨겁지 않았을까?
나는 정말 한글을 사용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 태어났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긴다.
한글처럼 쉽고 풍부한 표현이 가능한 언어를 사용할 수 있는 게
정말 신의 축복이라고까지 여긴다.
오늘은 특별한 날이다.
나라 사랑과 애민하는 마음으로 독립운동을 하신,
의사, 열사, 돕는 민초... 모두 독립운동가이시고
그분들이 노력해 주셔서 얻은 광복의 날이다.
덕분에 우리의 언어를 잃지 않고 이어올 수 있었다.
7
내가 그 귀한 우리말로 농담도 하고, 진지한 말도 하고,
감정의 말과 의미의 말까지 두루 쓰면서,
많은 기쁨을 얻고 있다.
우리 나라가 존재하니까, 그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감사하고 감사하고 다시 감사한다.
어렵게 얻은 광복,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어른답게
진지하게 생각해 보고 감사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나는 감사한다. 당신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