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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Sep 28. 2024

자잘스토리 8 - 038 - 비움이 있을 것만  






1


여름 내내 냉차를 마셔도 탈이 없었는데,

그래서 계속 여전히 아.아를 마셨을 뿐인데

날이 서늘해졌다고 몸이 안 받쳐준다.

속이 더부룩하고 부대낀다.




2


그래서 뜨.아를 마시는 쪽으로 변경했고,

또 티백 차를 더운물에 우려 마시기 시작했다.


몸이 귀신같이 알아차리고 속이 편해졌다.

내 몸뚱어리는 계절성 체질인가 보다.

계절 특성에 맞춰 행동양식을 바꾸지 않으면 몸이 힘들다.




3


기왕 날 추워지는데 다도를 취미로 시작해 볼까?

지인분이 나보고 취미가 많지 않느냐고 하시더라.


응? 내 취미가 뭐더라...


다꾸, 커피 마시기, 보석돌 수집, 영어 문제집 풀기, 독서도 끼워야 하나?

그림 그리기.. 가 아닌 미술용품 수집하기...


일곱 가지라고 치고, 다도를 넣으면.... 음...

....음....

....흐음....

지금 백팔번뇌 중....




4


다도를 취미로 넣고 싶은데... 

음... 장비 빨 부리고 싶어서... 흐윽....

다관, 다하, 다시, 숙우, 잔, 퇴수기, 차반, 차건, 거름망 등등...

핵심인 차는 뭘로 마실지 정하지도 못했다.

다도는 문화를 즐기는 것이니 좌락 도구들을 펼쳐놓고.. 크으..

카아.. 운치 있게 다관과 찻잔을 데우고... 크으...

그 동작 하나하나가 문화적인 향취가 물씬물씬.... 캬아...

뭔가 되게 멋진뎅....

그렇게 되게 멋지려면 장비 빨 부려야 하는데...

표일배 시러. 개완 시러. 

다관이나 자사호가 있어야 하는데 말이다... 크아..

하아.. 현실 자각 타임 왔다.


냉정하게 따져보면, 난 녹차는 좋아하는데 

내가 보이차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품질이 좀 좋은 보이차 티백을 한번 구입해 봐야겠다.

우선 우롱차나 보이차가 입맛에 맞는지 알아보는 것부터가 순서겠다.




5


지금 혼자 피식 웃었다.


지금 내 취미를 살펴보니 집순이의 취미임이 여실하다.

하다못해 '요가'라든지, '걷기'도 없다.

오로지 집안에 들어앉아서 들입다 파는 것들, 집순이의 취미답다.


누군가 말했듯이, 자신의 성향과 조금은 다른 성향의 것을 

취미로 삼는 게 좋다고 하더라.

잘 모르는 다른 것이 취미일 때, 그 때문에 삶의 마당이 다채로워지기 때문이리라.




6


내가 아무리 해도 잘 안 되는 게 명상이다.


자판을 두드려 글을 쓰면 생각은 정리가 되는데,

좀처럼 마음이 비워지지는 않는다.


사실 티백 차도 얼마나 좋은 제품이 많은가!

알면서도 일부러 다도를 하겠다고?

도구들 고르고 사들이고 물 끓여서

요래저래 붓고 데우고 붓고 우리고 붓고 치우고....

그 수없는 동작 속에, 침착함과 

내려앉아 맑아지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만 같다.

티백 차의 간편함이 줄 수 없는,

편리하지 않은 다도 예식이 줄 수 있는 감정의 비움이 있을 것만 같달까.




7


결국 나는 마음을 비우고 싶어서, 마음 편하고 싶어서, 

장비 빨 부려서 먼저 부산스러워지려고 하는가 보다.

다시금 어머니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 딴 생각이 안 나, 움직여라."


그래, 지금은 움직여야겠다, 자러 간다.

움직이라는데 왜 눕냐고?

난 잠든 상태의 모습 그대로 일어나 본 적이 없다.

내가 자면서 얼마나 움직이는데!

어무니 말씀 들으러 움직이러 간다.


반성한다. 조금 다른 성향의 취미를 행해야 하는데,

여지없이 집순이들의 빼놓을 수 없는 활동을 취미로 행하려 하니까 말이다.

약간의 변명을 한다면.... 나의 경우엔!

움직이는, 활동적인 행위이기도 하다니깐.




8


날이 선선해졌다.

이제 정말 가을 같다.


한 해의 4분의 3이 지났다.

곧 10월.

음... 그냥 그렇다는 말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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