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길을 벗어나면 마치 '틀린', '사회부적응자', '루저', '반항아', '불효자'등의 이미지들이 덧씌워지기도 했다.
내 길이 전혀 아닌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고통스러웠지만 제시된 화살표를 따라가려고 노력했다.
'그래, 이게 맞는 길이잖아. 남들처럼 못 따라가는 내가 잘못된 거야..'
다수 속에서 홀로 붕떠서 땅에 착지하지조차 못하고 방황하는 기분이 들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봐도,
화살표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는 나 자신을 매번 마주해야 했으며
언제부턴가 스스로를 '실패자', '사회의 기생충', '부끄러운 딸'로 낙인찍어버렸고
그러한 죄책감과 자괴감에서 비롯된 온갖 자기혐오로부터 매 순간 몸서리쳐야 했다.
누군가가 제시해 준 화살표는 그 누군가에게나 맞는 화살표일 뿐, 나에게는 전혀 맞지 않는 화살표일 수 있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겪은 일들은 애초에 타인의 목적지와 나의 목적지가, 서로의 길도, 그러한 과정 중에 사용할 도구와 수단들도 각자 모두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깨닫기 위한 시행착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에게 화살표를 제시해 주는 것에도 신중을 가해야 함을 깨달았다. 자신이 가봤던 길이라고, 내가 겪어봤다고 해서 이 길이 '맞다', '틀리다'라고 주장하기보다는 나의 경우에는 이러했다고 상대에게 제시하거나 조언을 해주는 정도가, 그랬는데도 상대가 다른 선택을 하겠다고 한다면 수용하고 인정해 주는 것이 서로를 온전히 존중하는 방법이 아닐까.
무엇보다 자신의 화살표는 본인이 살아온 수많은 삶의 경험치와 시야가 쌓이며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니 화살표는 '삶의 정답'을 의미할 수 없다.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며 자립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자신만의 화살표가 가득한 과정을 만들어가는 것이 삶의 본질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실수와 시련이 빠질 수 없다. 이 또한 허용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걸 극복해 나간 깊이와 단단함이 더해져 진정한 화살표를 삶의 곳곳에 세울 수 있다.
그러니 인생에서 내가 가야 할 길과 방향은 결국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온전히 내가 선택해야 할 권리이자 자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자유를 어찌 다룰지는, 그 자유로 자신의 삶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각자의 몫이다.
그동안 타인들이 제시해 준 화살표를 선택한 것은 나였으며,
그 책임 또한 제시된 화살표를 그대로 따라 걸었던 '나'임을 다시 한번 인지해본다.
어쩌면 책임을 지기 싫었기에 말해준 길을 따라 걸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들이 그리하라 했지 않느냐며 회피할 구멍을 숨겨두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예상치 못한 시련 속에서 아무리 타인과 세상을 탓해봐야 소용없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냐며, 더 이상 왜 알려주지 않냐며 울부짖어봐야 의미 없는메아리뿐이다.
그런 시기를 아주 깊이, 오랫동안 겪어보았기에
이제는 안다.
온전히.
그리고 오로지 내가 삶의 중심이다.
인생의 모든 화살표는 결국 나를 향해 있었고 내 안에 있으며,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는 것임을 다시 한번 새겨본다.
결국 화살표는 삶의 정답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뜻대로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가는 삶의자유이자 권리가 아닐까?
귀여운 순례자 캐릭터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다음 마을이 궁금해지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걸으면서 바닥이 아닌 주변을 두리번거리게 만들어준다.
순례길 여정의 작지만 큰 즐거움을 주는 녀석들이다.
성당 지붕 위에 엄청 큰 둥지와 새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이곳이 종교적인 의미가,
저 새에게는 자신의 터전이라는 의미가,
나에게는 그걸 포착하며 찍는 즐거운 추억이 되네.
오늘도 보는 부엔 까미노. Buen camino.
좋은 길, 좋은 여행, 좋은 방법.
이 문장이 가면 갈수록 참 좋다.
문득 한국에 돌아가면 타투를 한번 해볼까 싶어 진다.
왼쪽 가운데 손가락에는 ↓ 이런 화살표를,
오른쪽 가운데 손가락에는 발자국표시를 새겨보는 상상에 빠진다.
가운데 손가락인 이유는
반지를 낄 때 가운데 손가락이 심장과 연결되어 있다는 뭐 그런 상징적인 의미가 생각났다.
그러니 만약 저대로 타투를 한다면
'모든 화살표는 내 안에 있었고,
나는 그 화살표를 따라 두 발로 묵묵히 걸어 나가겠다'는 의미가 담긴다.
사실 아직 반도 다 걷지 않았지만,
이 여정길에서의 가장 큰 깨달음을 얻은 느낌이다.
오늘 당장 한국에 돌아가게 되더라도 아쉽지 않을 만큼.
'13'
좋아하는 숫자가 보인다.
내 생일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껄끄러워하는 숫자다 보니 오히려 나는 더 좋아졌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다.
오늘은 걸으면서 '13'이 보일 때마다 찍어봐야겠다.
재밌겠는데?
지루한 여정 속에서 소소하게나마 즐거움을 찾는 방법이다.
홀로 붉게 피어있던 장미.
홀로든 함께든 아름다운 것은 그저 아름답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
여기야, 여기라구! 느낌의 화살표 3개
부엔 까미노
따르다호스 마을에서 하루 묵었다는 사실이 이 마을을 떠나면서 괜히 뿌듯함으로 다가온다.
안 그래도 아침에 알베르게 자원봉사자 할아버지와 포옹을 나누며 따스한 작별인사를 했는데,
곳곳에 순례자들을 위한 정감 가는 그림과 표시들,
이 마을의 모든 것들이 따스함으로 매듭지어진다.
그렇게 또 다음 마을을 향해 걷는다.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첫 번째 마을에 도착했다.
RABE DE LAS CALZADAS
라베 데 라스 깔싸다스.
출발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우연히 두 번이나 보게 된 '13'.
괜스레 응원받는 기분에 기분이 좋아진다.
조가비와 함께 'V'
나침반 옆 날아가는 새 두 마리
남은 거리 476km
800km대에서 어느새 400km대로 진입했다.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으며 걷고 있을 뿐인데,
그 한 걸음이 모이면 이리도 클 수가 있구나.
볼 때마다, 저 신발들은 애초에 저러려고 본인들이 챙겨 온 걸까 궁금하다.
이건 좀 웃겼다.
심지어 멋도 없어.
그래도 어이없는 웃음을 주었으니 되었다.
'순례길 낙서 컬렉션' 느낌으로
매일 보게 되는 낙서들을 몇 개씩 찍곤 하는데,
오늘의 첫 낙서는 이거다.
"Angel ♡
Love & Peace"
걷다가 잠시 멈춰 서서,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이 여정을 걷는 순례자들을 위해 저런 문구를 적었을 누군가의 모습을 떠올리니 귀엽고 사랑스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