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에 개봉한 '조 블랙의 사랑'은 삶과 죽음에 대한 한 편의 동화처럼 보인다. 주인공은 갑자기 찾아온 죽음을 통해 진정한 삶의 의미를 정의하고, 죽음(브래드 피트)은 오랫동안 궁금했던 사람들의 삶을 배운다. 이렇게 죽음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삶은 죽음에 맥락을 부여한다. 이미 지나온 삶은 돌이킬 수 없더라도 앞으로 남은 삶이라도 잘 꾸려가고 싶을 무렵, 이 영화를 만나게 되었다.
뉴욕의 유명 커뮤니케이션 회사 오너인 윌리엄 패리시에게 어느 날 죽음이 말을 걸어온다. 지상 생활에 호기심이 생긴 죽음은, 윌리엄의 죽음을 며칠 유예해 주는 대신 며칠간 윌리엄의 일상에 동행하기로 한다. 윌리엄은 죽음에게 조 블랙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가족 저녁 식사, 회사의 인수 합병 건을 함께 한다. 조 블랙은 윌리엄의 딸 수잔이 호감을 가졌던 사람의 얼굴을 하고 찾아왔는데 수잔과 조는 서서히 사랑에 빠진다. 한편, 윌리엄은 본인의 가치관에 맞지 않는 대기업의 인수 합병 제안을 거절하나, 사위의 말실수로 빌미로 잡혀 이사회에서 해고될 위기에 놓인다. 사랑에 빠진 조는 윌리엄뿐만 아니라 수잔도 함께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하고, 윌리엄의 마지막 65세 생일 파티가 열리게 된다.
죽음이 눈에 보이게 되면서 윌리엄의 삶이 변하기 시작한다. 가족 식사 다음 날 또 한 번 가족 식사를 잡기도 하고, 가족들과 진심을 담은 이야기를 나눈다. 65살 생일 파티에서 더는 바랄 게 없고 후회 없이 살라는 이야기를 하며 삶을 돌아본다. 마지막 장면에 죽음과 함께 떠날 때도 미련 없이 홀연히 떠날 만큼 윌리엄은 강인한 사람이다.
죽음이 내게 말을 걸고 눈앞에 나타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윌리엄처럼 홀연히 떠나지 못하고 아쉬움에 계속 뒤돌아보게 될 것 같다. 내가 아쉬워할 것은 더 많은 성취를 이루지 못했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때문일 것이다. 미처 전하지 못한 이야기들, 용기 내지 못한 것들, 나를 위해 집중하지 못한 시간들. 이런 것들이 눈에 밟힐 것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등한시했던 것을 후회하면서. 언제나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고, 영혼의 정수를 이룬다.
영화에서 윌리엄 외에도 죽음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수잔의 환자이자 죽음을 앞에 둔 노인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죽음을 보자 동요하다가도 자신에게는 외로운 삶 속에서도 죽어서도 가져갈 추억들이 있으니 떠날 준비가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녀가 남긴 대사가 마음에 남는다. 나 또한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갈 좋은 추억들을 포착하고 마음속에 저장하며 살고 싶다.
노인: 우린 이곳에 살지만 대개가 외로워. 운이 좋다면 좋은 추억을 안고 이곳을 떠날 수 있겠지. We lonely here mostly too. If we lucky, maybe... we got some nice pictures to take with us.
조 블랙: 추억은 충분히 만들었나요? You got enough nice pictures?
노인: 그래 Yes.
영화는 죽음을 앞둔 주인공이 그동안 이루지 못한 버킷리스트를 달성하는 스토리가 아니다. 오히려 죽음과의 계약을 통해 며칠 더 살게 되었을 때 어떻게 삶을 품위 있게 마무리할 수 있는지 집중한다. 죽음의 존재를 알기 전 윌리엄은 수잔에게 사랑에 푹 빠진 삶을 살길 바란다고 이야기하고, 수잔은 조를 만나 진정한 사랑을 깨닫게 된다.
윌리엄: 사랑에 푹 빠져 보지 않은 삶은 진정한 인생이 아냐. 그러니 노력해야 해. 노력 없는 삶도 인생이 아니니까. To make the journey and not fall deeply in love, well, you haven't lived a life at all. But you have to try, cause if you haven't tried, you haven't lived.
수잔: 다시 말씀해 주세요, 대신 짧게요. Give it to me again. But the short versions this time.
윌리엄: 가능성을 열어둬. 누가 알겠니? 번개가 칠지. Stay open. Who knows. Lightening could strike.
이 대화는 사랑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조언으로도 읽힌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노력할 것. 사랑 없는 시간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사랑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시간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인생에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 무의미해 보이는 시간도 사실은 각자 자신이 바라는 삶을 준비하고 향해 가는 시간들은 아닐까. 우리는 다가오는 시간들에 대해 지레짐작하거나 포기하지 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바라봐야 한다.
영화에 죽음과 세금만큼이나 확실한 것은 없다는 표현이 등장한다. 그런데 죽음과 세금만큼 확실한 또 하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지 않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변화하거나 성취할 가능성은 0이다. 그러니 삶을 속단하지 말고 각자의 소설을 완성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 포기하지 않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서.
영화에서 죽음은 인간사에 방관하는 듯 보였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인간사에 개입한다. 주인공의 회사가 부당하게 인수되는 것을 막아주고 수잔이 사랑을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하지만 이는 내 삶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내 삶에서 죽음은 눈을 감는 순간 직전까지 직접 개입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하지만 죽음이라는 개념을 내 삶에 더 적용하고 싶다. 언젠가 죽을 것이니 남은 삶은 후회 없게 살아가고 싶다. 최근 10년 전의 나의 행복감과 지금의 나의 행복감이 비슷하고 꽤 낮은 수준이라는 것을 알고 놀란 적이 있다. 10년 간 내가 성장은 했겠지만 더 행복해지지는 않았구나 싶어 서글퍼졌다. 마찬가지로 10년 후에 내가 얼마나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 그 열쇠는 오직 나만이 쥐고 있을 것이다.
죽음 앞에서 후회 없이 떠나기 위해서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며 살고 싶다. 내가 해오던 방식대로만 살면 미션을 수행하듯 변화 없이 염세적으로 살게 될 것만 같다. 인생은 내 마음대로 통제되는 대상이 아니기에, 삶의 몰랐던 모습들을 만나고 변수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들을 채워가려 한다. 심규선 님의 노래 한 곡이 떠오른다. 언젠가는 죽을 운명이라면, 남은 날들을 더 충만하게 채워갈 수 있기를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어요. 애써 서두르지 않아도 말이에요.
누구도 인생의 남은 날을 몰라요. 눈이 부시도록 웃어요.
우리는 인생의 많은 것을 놓쳐요. 영원히 살듯이 착각도 하고요.
인생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아요. 눈이 부시도록 살아요. 너의 오늘을요.
심규선 - 우리는 언젠가 틀림없이 죽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