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근영 Jul 25. 2017

색다른 오이호박 콩국수

무더위를 이기는 글루텐 프리 영양식


“너희 아빠 말은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않을 거다”.

애주가였던 아빠가 과음한 다음날 아침 밥상에 앉으며 ‘어휴 속 쓰려. 이제 술 끊어야지’ 하면 이어지던 엄마의 대사다. 쿵쿵한 냄새 때문에 메주를 친근하게 느낀 적도 없고 어떻게 만드는지 관심도 없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엄마의 결연한 표정에서 두 가지를 눈치챌 수 있었다. 메주는 콩으로만 쑨다는 것과 아빠가 다짐을 여러 번 무너뜨려 엄마의 신뢰를 잃어버렸다는 것.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사실은 마치 동쪽에서 해가 뜨는 것과 같이 명명백백한 진리다. 그 말을 믿지 못한다는 건 어린 마음에도 무서운 불신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가뭄에 콩 나듯 한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 ‘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콩가루 집안이다’ ‘ 사랑을 하면 눈에 콩깍지가 씐다’ 등등 우리나라에는 콩과 연관된 속담이 유난히 많다. 쌀을 주식으로 하고 있지만  콩은 우리 식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작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된장, 간장, 두부, 콩나물, 콩기름처럼 한국인의 밥상을 차리는 데 쓰는 주요 재료들은 콩으로 만들어진 것이 대부분이다.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는 표현이 콩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내가 대학생이었을 때 아빠가 드디어 술을 끊었다. 갑자기 건강이 나빠진 이유로 단호히 끊게 되었던 것이다. 은근히 아빠 편이었던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엄마에게 얄미운 딸 노릇을 했다. “엄마, 이제 아빠가 ‘콩으로 메주를 쑨다’하면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믿어야 하는 거네요”하고 혀를 내밀자 엄마는 ‘그럼 메주를 콩으로 쑤지 팥으로 쑤겠냐’며 눈을 흘겼다. 진리는 늦게나마 증명될 수밖에 없다. 진리는 절대 변하지 않으므로. 




연일 이어지는 폭염. 배는 고픈데 입맛이 없다. 주방에 들어가도 불 앞에 서기가 두렵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한 음식을 잘 먹어야 한다. 영양도 보충하고 입맛도 살릴 수 있는 색다른 콩국수를 소개해 보려 한다. 탄수화물 섭취량을 줄이고 싶은 사람에게 다이어트 건강식으로도 안성맞춤이다. 


새로 나온 요리책 <집밥에 대한 딴생각>에서 발췌한 "영양이 듬뿍, 오이호박 콩국수"이다. 



[무더운 여름에는 땀을 많이 흘리고 입맛이 없어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덥다고 무조건 찬 음식만 먹게 되면 몸에 탈이 나기 십상이다. 여름이야말로 영양의 균형을 잘 잡아 줄 메뉴를 구상해야 하는 계절이다. 단백질과 여러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 있어 완전식품이라 불리는 콩.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해도 모자라는 식재료이다. 콩은 암이나 당뇨병, 갱년기 증상을 앓고 있는 사람에게 좋으며 노화 방지 효과도 뛰어나다. 콩을 삶아서 부드럽게 갈아 만든 콩국물에 국수를 말아먹으면 없던 입맛이 살아난다. 고명으로 올리는 오이는 열을 내려주는 효능이 있어 여름에 먹기 좋은 식재료이다. 


고소한 맛과 영양이 뛰어난 콩국수지만 모든 사람이 즐기는 건 아니다.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안 되는 딸과 오이 특유의 향을 싫어하는 아들에게 먹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약선 수업을 듣다 아이디어를 얻었다. ‘당뇨가 있는 사람은 피가 걸쭉해지고 몸에 열이 나기 때문에 열을 내려주는 오이즙을 자주 마시면 좋다. 생오이즙은 오이 특유의 비린내가 있어 살짝 데친 후 즙을 내어 콩국물과 섞어 마시면 좋다’는 내용을 듣는 순간 갑자기 오이채를 올린 콩국수가 떠올랐다. 오이를 데친 후 국수처럼 길게 채를 쳐서 콩국수에 섞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밀가루가 잘 소화되도록의 돕는 호박까지 섞어 만들었더니 식구들 반응이 뜨거웠다. 주변의 지인들도 너무 좋아해서 내가 만들고도 흐뭇한 요리이다. 




오이와 호박을 끓는 물에 통째로 넣고 약 1분 정도 데쳐 사용하면 아삭한 식감이 살아난다. 오이를 데치면 특유의 비린내가 없어져 더욱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데친 오이와 호박을 국수처럼 길게 채를 썰어 국수와 섞어 말면 국수의 양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콩에도 탄수화물이 30%가량 들어있으니 밀가루 국수를 싫어하는 사람은 오이와 호박 채만 넣어 먹어도 괜찮다. 채소를 단순한 고명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국수처럼 먹으면 자연히 글루텐 프리(gluten free) 음식이 된다.



재료 :

콩 1.5컵, 황기 50g, 물 6컵, 오이 1개, 호박 1개, 국수(베르미첼리) 150g, 무짠지, 깨소금 약간


만들기 :

콩은 약 3-4시간 동안 물에 불린 후 물 2컵을 붓고 중불에 끓인다. 끓기 시작하면 약 2분 후 불을 끈다. 황기는 물 4컵 정도에 우려 끓인 후 식힌다. 오이와 호박은 끓는 물에 통째로 넣고 1분 정도 데쳐 내어 그대로 식힌다. 국수는 삶아서 찬물에 헹궈 둔다.

믹서에 삶은 콩을 넣고 물은 콩보다 약간 높게 부어 갈아 준다. 볶은 땅콩이나 아몬드, 잣, 캐슈너트 등을 2큰술 정도 넣고 갈면 더 고소하고 맛나다. 간 콩을 황기 우린 물과 섞어 체에 내린 후 소금으로 간한다. 데친 오이와 호박을 국수처럼 길고 가늘게 썰어 국수와 섞어 말아 놓는다. 준비된 오이호박국수를 그릇에 담고 콩국물을 붓는다. 깨소금과 무짠지를 고명으로 얹는다. ] 

=> <집밥에 대한 딴생각> 158-161 페이지 발췌.



작가의 이전글 의사 얼굴을 파랗게 질리게 한, 토마토 물김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