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가지 않는 것은
이미 죽음이나
마찬가지다.
-E. 캐서린 토블러-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일어나세요. 일어나세요, 정신 차리세요.
선생님 여기요 생존자가 있어요!!!!
구조대가 나를 나르는 사이 죽어 있는 여자를 보았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아, 공항에서 나보다 먼저 게이트를 통과했던 여자다.
나와 죽음의 순서를 바꾼 여자였던 것이다.
하나둘씩 기억이 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첫 해외여행에 신나 있던 철없던 친구들의 여행길이자,
들뜬 마음으로 인천공항을 향해가는
리무진 버스의 이야기였다.
앞서 가던 트럭의 갑작스러운 멈춤으로 인해 추돌사고가 일어났다.
트럭과 리무진, 따라오던 차량의 삼중 추돌사고로 인해 차량 탑승자는 전원 사망했다고 한다.
아니, 나만 살아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나는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오게 되었다.
문득, 나를 기어코 못 타게 하려던 그 젊은 여직원이 떠올랐다, 누구였을까.
어디선가 봤던 것 같은데,
떠오르지 않는다.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해 있는 동안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꽤 오랜 기간 입원해야 할지도 모른다.
뼈와 장기 손상이 심하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다행인 건지 병원에서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생각보다 빠른 회복 속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매일 일에 치여 살다가 이렇게라도 쉬어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여유로웠지만 함께 했던 친구들의 장례식장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
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그들의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입원해 있는 동안 병실 사람들,
간호사들과 꽤 친해졌다.
그중에 내 또래의 동생이 있는,
아니 있었던 간호사 형과 꽤 친해졌다.
5년 전 오토바이 뺑소니 사고를 당해
세상을 뜬 동생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까지도 범인은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버려진 오토바이 번호판은
대포차량으로 조회되었다고 했으니,
경찰에서도 찾기를 포기한 것 같다고 했다.
어쩌다 동생이 생각나면 사고가 났던 장소에
소주를 흩뿌리는 게 일상이 된 게 전부일뿐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내 나이쯤 되었을 것 같다고
내 동생이 살아온 것 같다고 더 잘해준 것 같았다.
퇴원을 해도 술 한잔 하자며,
빨리 퇴원하라고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기다리던 퇴원하기
며칠 전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다.
퇴원 후 술 한 잔 기울이기로 약속한
간호사 형에게 사고가 생겼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누군가와 싸우다 쓰러진 이후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와 함께.
중환자실에선 커다란 의식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