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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종호 Nov 08. 2024

오늘 하루

후쿠오카에 온 날 

아침 6시 사무실에 나와 이것저것을 챙기었다. 다음 주 베트남 전시와 그다음 주 연달아 있는 한국의 전시에 빠진 것이 없는지 다시 한번 살피었다. 마음이 안 놓여 베트남에 가져갈 비품들을 아예 다 꺼내어 놓고 다시 한번 빠진 것이 없는지 살펴보았다. 

  

7시 코트라 멕시코 지사와 영상통화를 했다. 우리 사 제품의 멕시코 영업을 위한 사전 미팅이었다. 멕시코의 젊은 직원 가비는 산업제 B2B 제품이 아닌 슈퍼마켓 같은 소매점에서 일반인들에게 판매하고 소비제의 마케팅과 영업을 맡게 된 것에 굉장히 흥미를 느끼고 있는 듯 보였다. 사무실 앞 정거장에서 인천공항으로 가는 버스를 타야 했기에 길지 않게 미팅을 마쳤다. 


7시 50분 정류장 앞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추웠다. 요즘은 시대가 좋아져 검색창에 버스의 번호를 치면 실시간으로 버스가 어디에 있는지 보이고 도착 예상 시간도 알려준다. 출근 시간이 겹치어 버스는 전역에서 천천히 움직였다. 정류장에서 덜덜 떨다 버스를 탔다.       


10시 50분발 후쿠오카 대한항공을 탔다. 3-4-3열로 이루어진 대형 비행기임에도 거의 만석이다. 유독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공항의 혼잡으로 비행기는 30분 정도 늦게 이륙하였다. 기내에서는 새로운 메뉴인 주먹밥 기내식이 나왔다. 50여분의 짧은 비행시간 중에 시장기를 적당히 가셔주는 메뉴이다. 앞 좌석에 붙은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려 했지만 졸다가 깨어보니 비행기는 벌써 활주로에 내려 달리고 있었다..


12시 40분 후쿠오카에 도착했다. 후쿠오카 공항의 입국장에는 막 중국발 비행기가 도착했는지 중국인들로 붐볐다. 후쿠오카는 도심과 매우 가까운 곳에 공항이 있다. 국내선과 국제선이 따로 떨어져 있는 데 국내선 공항이 국제선보다 훨씬 크다. 아주 오래전부터 국제선 공항의 이전하지 않으면 확장을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 데 코로나가 끝나며 드디어 확장 공사가 시작되었다. 주차동이 세워지고 기존의 건물의 좌우에 새로운 공간을 이어 붙이는 공사 중이다. 어수선하다. 와이프가 마중을 나왔다.   


1시 30분 공항에 있는 택배 회사 사무실을 찾아가 동경의 바이어에 전달하려 가지고 온 샘플들을 택배로 붙였다. 꽤나 무거운 샘플이라 한국에서 붙였으면 운송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왔을 것이다. 샘플의 운송비를 절약한다는 핑계로 직접 들고 와이프와 아이들이 지내는 후쿠오카로 들어왔다. 일본의 택배 비용은 한국과 비교하면 턱없이 비싼 가격이지만 그래도 국제 운송료에 비할 바가 못된다. 게다가 나는 그 핑계로 금요일 아이들을 만나러 일본으로 들어왔다. 


2시 장을 보러 이온에 들렀다. 공항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30분만 달리면 우리 집이다. 모모치하마라는 동네인데 이곳에 후쿠오카 타워와 긴 해변이 있다. 집 근처에 있는 대형 쇼핑몰인 이온에 왔다. 한국에서는 온라인 쇼핑에 밀리어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는 일이 드물어졌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쇼핑센터가 성업 중이다. 널찍한 쇼핑센터에 여러 가지 물건들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그 사이를 카트를 밀고 지나다니며 주부들은 식탁 위에 올라갈 각종 요리들을 머릿속으로 기획하고 그에 맞추어 식재료들을 카트에 넣는다. 밥을 먹는 것은 무엇보다 중한 일지만 그 밥을 만들어 먹이는 일은 더없이 숭고한 일이다.


3시 30분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샘플 전달을 핑계로 갑자기 후쿠오카에 오기로 하였는 데 두 딸들에게는 놀라키기 위해 비밀로 하였다. 아이들이 학교를 마치는 시간에 맞추어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놀라켜주려 했는 데 와이프가 자기도 아이들이 아빠를 보고 놀라는 모습을 보고 싶다 하여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렸다. 아이들은 놀라기는 하였지만 얼마 전에 한국에 들렀다 돌아온 탓에 이산가족 상봉 정도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4시 큰 딸이 학교 사물함에 도시락을 두고 왔다 하여 학교까지 같이 가주었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학교가 쉬니 금요일에 도시락을 놓고 오면 더욱 곤란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바다로 흐르는 강길을 따라 산책을 했다. 겨울이면 이 동네로 돌아오는 오리 떼들 한 무리가 물 위에 앉아 있었다. 바다로 이어지는 이 강의 이름은 무로미가와(강)이다. 바닷물과 밀물이 섞이는 풍천으로 썰물이면 강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진다. 여름이면 아사리(바지락)를 캐러 사람들이 모여든다. 


4시 50분 주말이 되면 함께 넷플릭스를 보는 데 순서에 따라 돌아가며 자기가 보고 싶은 영화나 드라마를 고를 수 있다. 식사도 텔레비전 앞 거실 테이블에서 넷플릭스를 보며 한다. 오늘은 큰 딸이  <아나 Anna>라는 한국 드라마를 골랐다. 6화까지 있는 드라마로 수지가 주인공이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란 한 여자아이가 다른 사람의 이름과 학력을 도용하여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이야기이다. 한국판 <리플리(1999)>, 더 오래전 아랑드롱이 주연한 <태양은 가득히(1960)>랑 비슷한 설정이다. 


6시 저녁식사 시간. 메뉴는 와이프가 만든 돼지고기 볶음, 햄버거, 라자냐와 오븐에 구운 냉동피자 등이다. 외식을 하지 않고 주말에도 집에서 먹을 때면 대충 먹지 않는 이유는 와이프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감사의 마음과 적당한 추임새로 수준급 요리를 매일 집에서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만족도를 매우 높이는 일이다. 나는 감사의 뜻으로 설거지를 했다. 요리의 수고에 비하면 설거지는 매우 단순하고 짧은 수고이지만 가끔 하여도 매번 느끼는 귀찮음은 어쩔 수 없다.


<안나>를 이어서 보다가 마지막 한 회를 내일 저녁 식사 시간의 히든으로 남겼다. 샤워를 하고 나와 번뜩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에 컴퓨터를 열었다. 배는 부르고 몸은 노곤하니 글이 써지지 않는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 인가 고민하다 꾸뻑 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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