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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연 Dec 06. 2018

안녕, 나비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갓 지은 밥 냄새가 나는 허름한 빌라들 사이로 배고픈 고양이들이 말을 겁니다. 


작년까지는 나비가 축 늘어진 살과 특유의 여유를 흩뿌리며 온 동네를 휘저었어요. 고양이의 언어를 모르는 인간들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주변엔 위풍당당한 터줏대감의 아우라가 가득했습니다. 한번 밥을 준 인간을 기억해 두었다가 그 집 대문을 톡톡 두드리는 일이 뒷발로 목덜미를 긁는 일보다 쉬운 그녀였지요. 고양이 밥을 주러 나온 초면의 아주머니들은 나비의 안부로 대화의 물꼬를 텄습니다. 

「얘 요즘 살이 더 찐 것 같지 않나요?」


나비의 주인은 내가 사는 빌라 위층의 젊은 남자였어요. 목걸이에 이름과 핸드폰 번호까지 적어두었던 걸 보면 길고양이와 집고양이의 중간 어디 즈음으로 나비를 키우는 것은 상호 합의된 계약인 듯했습니다. 몇 가지 궁금증이 일었지만 허락 없이 타인의 경계를 넘는 일은 피차 서로 반갑지 않아, 묻고 싶은 말을 꾹 담아두었습니다. 


나비의 활동 구역에 속한 몇 블록의 사람들이 그녀의 서슴없는 방문과 애교에 익숙해질 무렵, 이상하게도 며칠이 고요했어요. 날이 선선하고 발정난 고양이들이 울지 않고. 그리고 동네에는 낯선 벽보가 붙었습니다. 

「나비가 지난주에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동안 나비를 사랑해주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드라마 마지막 회 멘트와 꼭 닮은 인사는 덤덤했고 또 먹먹했습니다. 벽보 앞에 서서 몇은 울었고 우연히 마주한 아주머니들은 말이 없었어요.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일이 길을 걷다가 운동화 끈이 풀리는 일보다 빈번한 요즘 같은 세상에, 고양이가 죽었다는 벽보를 붙이는 일도 결코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오천 세대가 거주한다는 서울 주택가 한복판이라면 더더욱이요.


2020년. 갈현동 일부에 재개발 허가가 떨어졌습니다. 워낙 많은 가구가 사는 곳이라 허가가 떨어지는 데에만 몇 년이 걸렸다고 해요. 언젠가는 이 곳을 떠나야겠지만 그게 당장은 아닐 거라고 우리 가족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리 오래 산 동네도 아닌 데다가 대단한 재개발 보상과도 거리가 먼 우리는 그저 떠나야 하는 시기에 떠나면 그만일 뿐이에요. 


사실 인간의 갈 곳보다 염려스러운 건 길고양이들의 거처입니다. 이곳이 다 허물어지고 번쩍번쩍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 그이들도 우리처럼 이들을 돌봐줄까. 아니, 그 이전에 어둑한 곳에 숨기를 좋아하는 이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는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한껏 무거워집니다. 어떻게든 건강하게 살아주기를. 어느 곳에 자리를 잡든 제발 마음이 따듯한 사람을 찾아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에요. 나비가 그랬듯이 우리 집 문을 톡톡 두드려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텐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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