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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의석 Jun 29. 2016

시대가 리더를 받아들이는 방식

이상적인 리더의 조건

이상적인 리더가 갖추어야 할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또 그 조건은 항상 같은 방식으로 작용되어야만 할까요? 우리는 전 장에서 행운과 불운은 동시에 존재한다는 내용을 살펴보았습니다. 또한 현재 상황을 분석하며 미래의 변화에 맞춰 자신에게 필요한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았죠. 그렇지만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의심하라는 데카르트의 말 때문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항상 주변을 살피고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전략을 선택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이 사례를 설명하기 위해 2명의 군주를 이야기합니다. 첫 번째는 피에로 소데리니입니다. 그는 부드럽고 자상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리더였습니다. 삼국지의 유비 같은 스타일이라 생각하면 쉽게 이해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는 강한 국가가 필요했던 난세에도 위의 가치를 강조했기 때문에 힘을 기르지 못한 채 몰락했습니다.


반면에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소데리니와 정반대의 성향을 지녔습니다. 그는 재위 기간 내내 일을 격렬하면서도 성급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시대와 잘 어울린 탓인지 소데리니처럼 권력을 쉽게 잃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빠른 일처리 방식이 오히려 대신이나 백성들로부터 환영받았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기준 없이 일을 급하게 처리하는 리더가 오늘날 사랑받지 못하는 사실에 미루어보면 이런 현상은 좀 의외의 결과입니다.


위의 두 사람을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간단합니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행운을 잡으려면 생활양식이나 삶의 원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맞지 않는 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최고의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기 않고 상대가 틀리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집니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이런 상황을 다음과 같이 평합니다.


“이미 수차례에 걸쳐서 나는 사람들의 불운과 행운의 원인이란 그들이 일하는 방법이 시대에 적합한지 아닌지에 달려 있다고 서술한 바 있다. 일을 함에 있어 어떤 사람들은 서둘러 추진하고 어떤 사람들은 주의하며 조심스럽게 추진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두 방법을 활용함에 있어 진정한 길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때로 적절한 경계를 넘어서게 되고 그 결과 과오를 저지르게 된다. 그렇지만 만일 어떤 사람의 방법이 시대에 적합하다면 그는 잘못을 덜 저지르고 번영하는 행운을 누리는 데 성공한다. 왜냐하면 당신은 항상 본성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만약 여러분들이라면 소데리니와 율리우스 둘 중 어떤 리더의 입장을 지지하시겠습니까? 일반적으로 나라가 어지러운 상황이라면 결단력 있고 강한 리더를, 태평성대라면 정이 많고 자상한 군주를 선택할 것입니다. 강한 힘이 없으면 자신의 재산과 명예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던 춘추전국시대를 생각해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의 선택을 받은 사상은 일정한 규칙 아래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유가, 법가 같은 사상이었습니다.


반면에 묵자가 주장한 겸애(兼愛)라는 사상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의 선택을 받지 못했습니다. 겸애는 성경에서 말하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와 의미 상 거의 같은 개념입니다. 전쟁 중에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자세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그렇게 될 경우 스스로를 지킬 수단을 상실합니다. 누군가가 뒤에서 칼침을 놓을 수도 있죠. 눈먼 화살에 맞아 세상을 떠날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사상은 시대에 따라 자연스럽게 달라져야 합니다 (이 내용을 겸애가 나쁜 사상이라는 의도로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이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변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도가의 사상에 관심이 많습니다. 출퇴근 중 이북으로 된 노자의 도덕경을 읽는 시간은 제게 매우 귀하고 의미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을 삶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따르기 어려운 장벽이 생긴 것일까요? 마키아벨리도 이 점을 오래전에 깨닫고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잘 변할 수 없다. 첫째는 본성이 우리를 이끄는 것에 반해 행동할 수 없다는 점이고, 둘째는 어떤 사람이 한 가지 행동방식에 따라 이미 크게 성공했다면, 다른 방식으로 행동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그를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동일한 사람이 다양한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곧 운명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데 사람은 자신의 방식을 다양하게 변화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위의 내용은 바꿔 말하면 우리가 행운을 잡기 어렵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이 목적을 달성하려면 보통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하고 준비된 상태에서 시대를 읽는 눈을 갖추어야 합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손을 놓은 채 다른 사람들이 내 인생을 좌지우지하도록 두어선 안됩니다. 우리의 인생은 다른 사람들이 함부로 할 만큼 가치 없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소설입니다. 비극일지 희극 일지는 알 수 없으나 저는 개인적으로 이 소설이 희극으로 끝났으면 합니다. 개인의 인생이라는 소설은 누군가에 의해 쓰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쓰는 것입니다. 삶에 활력을 주는 일과 목적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어 나갑시다. 그 가운데 시대를 읽는 눈이 더해진다면 우리의 인생은 어떠한 방식으로든 세상에 큰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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