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화일치(詩畵一致)," 시와 그림은 하나의 예술.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 시가 있다.
우리에게 '소동파'로 많이 알려진 소식(蘇軾, 1037~1101)은 당나라의 시인이자 화가인 왕유(王維, 699?~759)의 그림 <남전연우도(藍田煙雨圖)>를 감상하고는 위와 같은 평을 남겼습니다. 소동파는 왕유의 시를 읊을 때 마치 눈 앞에 생생한 산수화가 펼쳐지는 듯하고, 왕유의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시 한 수가 떠올랐나 봅니다. 소동파를 비롯한 중국 문인들은 예로부터 이렇게 언어예술과 시각예술의 만남으로 이루어지는 독특한 조화에 크게 감화했습니다. 시라는 언어예술과 그림이라는 시각예술의 만남, 시의도는 바로 여기에서 출발합니다.
사전적 정의로 '시의도'란 시를 그림의 제재(題材)로 하는 회화 작품을 일컫는 말로, 시인이 언어로 표현한 시의(詩意)를 화가가 해석하여 화폭에 재창조한 것입니다. 물론 화가의 해석이 시인의 묘사에 언제나 그대로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화가는 언어 그 이면에 숨겨진 의미와 정서까지도 그림에 담아내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림은 시를 단순히 모방하거나 시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의 창조로 재탄생하여 시의 구체적이고 새로운 형상화를 이루게 됩니다. 이 과정을 거친 그림을 보는 관람자는 그림의 시각적 이미지를 초월하여 그림에서 시를 보는 듯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시중유화, 화중유시'의 경지이며, 중국 문인화가 추구하는 이상이었습니다.
- 여는 글: 인사
옛 그림과 마주할 때 아무런 느낌 없이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에 한문이 적혀 있으면 더욱 골치가 아픕니다. 서양 추상화는 무엇을 그린 것인지 몰라(혹은 너무 쉽게 그린 것 같아) 재미없게 느껴지는 것이라면, 동양화는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것 같은데도 재미가 없고 감동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나쳐 온 수많은 옛 그림들 중 상당수가 시를 바탕으로 그려진 것이라면 어떨까요. 그 시들의 정체가 조금 궁금해집니다. 시를 읽고 나면 그 시를 재해석한 결과물인 그림이 이전과는 달라 보입니다. 어떤 작품은 감탄이 나오기도 합니다.
중국에서는 소동파 이래로 시와 그림의 결합을 중시해 왔습니다. 이웃나라인 우리나라에서도 그 영향으로 많은 시의도가 그려집니다. 시의도에 대한 글을 연재하면서 초반에는 중국 작품들을 먼저 보고, 우리나라 조선시대 작품들을 이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순서는 시의도의 연원이 중국에 있기 때문에 그 순서를 따르고자 한 것 이외에 다른 까닭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