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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용한 Sep 22. 2017

비 오는 날 현관앞은 아깽이들로 냥장판


맨 처음 집에서 그리 멀잖은 도랑에서 또랑이네 아이들을 만난 지도 3개월이 지났다. 눈이 파랗고 조막만했던 아이들은 어느 새 캣초딩이 되어가고 있다. 이 녀석들의 어미고양이 또랑이는 우리집 급식소 단골이기도 했지만, 도랑에서 육묘중인 사실을 알게 된 뒤부터 나는 매일같이 특별식(캔+닭가슴살+사료+라이신)을 만들어 내놓았다. 이웃집 눈을 피해 도랑의 아이들에게도 경단밥을 만들어 던져주곤 했다. 그러다 장마철이 되었고, 또랑이는 도랑이 아닌, 먼 곳으로 둥지를 옮겼다.

영역을 옮긴 뒤, 또랑이는 하루에도 대여섯번씩 아깽이들에게 밥 배달을 했다. 그것이 또랑이도 귀찮았을까. 어느 날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는데, 또랑이가 아이들을 데리고 처음으로 급식소에 나타났다. 집 앞의 자동차를 베이스캠프로 삼고, 그곳에 아이들을 데려다놓기 시작한 것이다. 녀석들은 몰래몰래 급식소까지 올라와 밥을 먹다가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꽁지가 빠져라 자동차 밑으로 숨곤 했다. 한동안 녀석들이 자동차의 엔진룸을 은신처로 삼아 나는 자동차 시동을 걸 때마다 이 녀석들을 쫓아내느라 여간 신경이 쓰인 게 아니다. 

그러던 녀석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급식소에 머물며 밥을 먹고, 마당까지 접수해버렸다. 녀석들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급식소와 마당, 이웃집 콩밭에 머물렀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어미인 또랑이를 비롯해 다섯 마리 아깽이들은 현관 앞을 임시 대피소로 삼았다.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던 여름, 어김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현관 앞에 오종종 앉아 있는 녀석들을 볼 수 있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깽이들인지라 잠시 비를 피해 앉아 있던 녀석들은 툭하면 그곳에서 우다다와 싸움장난을 벌였다. 

현관의 계단을 오르내리고 사료포대를 뛰어넘으며 녀석들은 거의 현관 앞을 자신들의 놀이터이자 아지트로 여겼다. 현관을 냥장판으로 만드는 게 못내 미안한 어미 또랑이는 아이들에게 연신 주의를 주지만, 아랑곳없이 아이들은 그런 엄마에게 달려들어 꼬리를 물고 등짝에 올라타 장난을 걸었다. 결국 엄마는 모든 걸 포기하고, 테라스 밑으로 되돌아오곤 했다. 그럼 또 아깽이들은 저희들끼리 신이 나서 하하호호 야옹야옹 현관 앞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근데 참 희한한 것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급식소에 내내 머물던 또랑이네 식구들도 밤이 되면 모두 자신들의 거처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냥 이곳에 머물러 마당고양이로 살아도 좋을 텐데, 녀석들은 밤이면 퇴근하고 아침 일찍 출근하는 일상을 고수했다. 아마도 한밤중에는 급식소에 다른 손님들이 들락거려 공연한 분쟁을 일으키지 않으려는 행동인 것만 같았다. 실제로 급식소를 찾는 다른 고양이들도 낮에는 또랑이네 식구들을 위해 양보하고 밤에만 찾아오는 듯했다. 알 수 없는 고양이들의 오묘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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