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브런치 작가 활동 하지 마세요."
첫 출근한 날, 면접에서는 만나지 못했던 '창업자'라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그는 자신도 국문학과를 나와서 안다며, 영화 <기생충>은 딱 한 번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고 끝났지만 아이폰은 10년이 넘도록 큰 사랑을 받고 있지 않냐는 궤변과 함께, 글을 쓰는 것보다는 IT분야에 더 힘을 쏟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한 마디로, 외부 활동 하지 말고 회사 일에만 집중하라는 것이죠.
저는 그 회사에 출근한 날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그 한 마디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 한 마디만으로도 퇴사를 결심하기엔 충분했어요. 이미 이력서나 면접에서 저의 브런치 작가 활동에 대해 밝혔고, '저희 회사에서는 작가 활동을 금합니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 회사에 입사하기까지 걸린 시간과 놓친 기회에 대해 보상을 받아도 모자랄 지경이었지만, 단 하루라도 더 그 회사에 출근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거쳐온 모든 회사의 대표님들은 제가 외부에서 작가 활동을 하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에, 책을 구매해 회사에 여러 권 비치까지 해주셨죠. 물론 모든 회사가 외부 작가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진 않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활동을 긍정적으로 바라봐주는 회사가 조직 문화나 업무 분위기 등이 잘 맞았던 것 같습니다. 저는 퇴근 후 작가 활동을 겸할 수 있을 때, 일의 에너지가 더 높아지는 사람이니까요.
가끔 직장 생활이 너무 지칠 때,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 작가로 살아 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봤어요. 아침에 일어나서 가볍게 운동을 하고, 여유롭게 식사를 한 다음, 글을 쓰고 싶은 만큼 쓰다가, 오후에 나른해지면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 하고, 저녁에는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보는 그런 삶. 물론 전업 작가라고 해서 그렇게 여유로운 삶이 가능해지는 건 아니겠지만, 최소한 출퇴근을 하는 데 쓰는 시간과 불필요한 체력 소모와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으니 글쓰기에 전념할 수 있는 에너지가 더 많아지겠죠.
전업 작가까지는 아니지만, 약 10개월간 창업 멤버로 일을 하면서 작가 활동을 겸한 적이 있었어요. 상상했던 삶이 펼쳐질 줄 알았건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일정하지 않은 월급, 불안정한 소속, 같이 호흡할 동료가 없다는 외로움, 원룸에서 혼자 일을 하는 고립감이 밤이고 낮이고 저를 찾아와 괴롭혔거든요. 일이 안정적이지 않으니 퇴근 후에도 글이 잘 써질 리 만무했죠. 결국 저는 일도, 글도 잘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다시 회사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비단 저뿐만은 아닌 듯합니다. 유튜브 구독자 65만 명을 보유한 크리에이터 '김짠부'님은 본인의 유튜브 계정을 운영하다가 최근에는 한 회사의 미디어 팀에 입사를 했다고 합니다. 이미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유튜버로 큰 성공을 이루었지만, 그 행복은 2년을 채 지나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내가 잘하고 있는지 함께 체크해 줄 동료가 없고, 일이 크게 성공해도 함께 축하해 줄 팀이 없다 보니 삶의 만족도는 점점 떨어지고 번아웃이 온 거죠. 감히 예상해 보건대, 회사에 입사한 후 김짠부님은 크리에이터로서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1인 사업가', '크리에이터'로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고, 꼭 조직 안에서만 일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조직 밖에 나가면 행복이 펼쳐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각자에게 맞는 최고의 환경은 다르겠지만, 현재 저에게 가장 잘 맞는 환경은 직장 생활과 외부 작가 활동을 겸할 수 있는 지금입니다. 직장에서 얻을 수 있는 소속감과 외부 작가 활동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를 모두 가질 수 있다는 것,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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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