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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수진 Oct 26. 2024

내일 정리해고를 당하면 나는 뭘 하지?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제목 : 고용에 관한 고지

전하기 힘든 소식이 있습니다. OO은 일부 직원을 감원하기로 결정했으며, 유감스럽게도 당신이 그 대상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OO에서 더 이상 직무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드립니다.


출근을 준비하던 아침, 이런 메일을 받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저라면 일단 회사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사실 여부를 묻고... 그 다음엔 잘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사실일 테고, 제가 어찌할 수 없는 당황스러운 일이니까요.


위 메일은 구글의 임원이었던 '로이스 김(정김경숙)'씨가 실제로 구글로부터 2023년 1월에 받은 이메일입니다. 구글에서 16년간 일하며 누구보다 구글을 사랑했던 직원을 하루아침에 정리해고를 한 겁니다. 30년 간 직장 생활을 해온 로이스 김도 위 메일을 받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죠. 그런데 오래 지나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내 손으로는 절대 끊어내지 못할 끈을 회사가 대신 끊어준 게 아닐까?'


로이스는 어차피 이렇게 된 마당에, 그동안 회사에 다니느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메모장에 적어내려가기 시작합니다.


- 슈퍼마켓에서 일하기 : 특히 트레이더 조의 크루 멤버 되기

- 공유 운전 플랫폼(우버나 리프트) 운전사 되기

- 레스토랑 바텐더로 일하기

- 스타벅스 바리스타 되기

- 아동 도서 전용 서점에서 일하기

- 마사지사 되기...


레스토랑 바텐더가 되기 위해 7번이나 도전했지만 결국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었던 목록 중에서 트레이더 조에서 일하기, 리프트 운전사 되기, 스타벅스 바리스타 되기는 실천하게 되었고 컨설팅 업무와 자원봉사까지 병행하려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실업 급여를 월 270만 원은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녀는 왜 굳이 50살이 넘은 나이에 이토록 힘든 아르바이트를 한 가지도 아닌 여러 가지를 병행한 걸까요?


출처 : 서울경제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지금은 실업급여보다 하루하루 쌓는 새로운 경험이 훨씬 중요하다고 느꼈다. 몸으로 배우는 경험과 인사이트는 돈을 주고도 사지 못하는 것이니까.
- 로이스 김, <구글 임원에서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었습니다> 중에서


이제 겨우 서른 중반인 나이이지만, 저 역시도 회사에 다닐 수 있는 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당장 회사에 다니지 않으면 뭘 하며 돈을 벌고 살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하죠. 하루는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맘껏 해보려고 아무 계획없이 연차를 낸 적이 있었는데요. 미술관도 가고, 카페도 갔는데 겨우 오후 3시이더군요. 그렇게나 지겹고 싫었던 회사 밖을 나섰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당황스러웠습니다.


나이가 몇 살이든, 경력이 몇 년차이든 언제든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시대입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회사 밖으로 튕겨져 나왔을 때, 그저 넋만 놓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쓰고, 그 언제라도 그 일을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회사 밖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과 제가 하고 싶은 일의 목록을 적어봤는데요.


<내가 할 수 있는 일>

1. 책쓰기

2. 글쓰기를 기반으로 하는 강연, 컨설팅 등

3. 콘텐츠 마케팅 외주

4. PR 외주

5. 유튜브 영상 촬영하고 편집하기

6. 운전하기

7. 오프라인 행사 기획하고 운영하기

8. 편의점, 영화관 매점, 경마공원 알바 경력을 살린 캐셔 업무

...


<내가 하고 싶은 일>

1. 1인 회사 차리기

2. 카페 운영/알바하기

3. 자기계발/에세이 전문 서점 운영하기

4. 옷가게/쇼핑몰 운영하기

5. 하루 1-2시간 할 수 있는 단순 노동 (포장?)

6. 무술 자격증 취득하기

7. 1종 보통 운전면허 취득 및 관련 일하기

8. 수영 배우기

9. 미용 자격증 취득 및 관련 일하기

...


적고 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적게 느껴지기도 하고, 하고 싶은 일은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맞는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습니다.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그만큼 더 열심히 채우면 되고, 하고 싶은 일이 무언지 모르겠다면 찾아가면 되니까요. 중요한 건, 미리 나의 다음을 준비해두라는 것.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제 2의 인생을 맞이하게 되었을 때, 당황하거나 쓰러지지 않고 준비해두었던 위 메모를 가슴 속에서 비장하게 꺼낼 수 있도록.


이 콘텐츠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레터, '일글레'입니다. 일글레 구독 하시면 매주 수요일마다 이메일로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일글레는 교육, HR, SaaS 등 다양한 분야를 거친 회사원이자 <나답게 쓰는 날들>, <아무에게도 하지 못한 말, 아무에게나 쓰다> 에세이를 2권 출간한 작가가 보내는 일하고 글 쓰는 사람들을 위한 에세이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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