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의 결의와 성인의 판결에 따라 바루흐 스피노자를 저주하고 제명하여 추방한다 ... 나갈 때에도 저주받을 것이며 들어올 때에도 저주받을 것이다 ... "
1656년 7월 26일, 스피노자는 암스테르담의 유대교 회당 공동체로부터 파문을 당한다.
유대교 경전인 모세 오경과 죽음 이후의 심판과 그리고 창조주 하느님을 부정한 것이 그 이유였다.
스피노자의 부모는 1492년 스페인의 유대인 추방령에 따라 네델란드로 이주한 '마라노(Marrano)'였다.
'돼지처럼 더러운 인종' 이라는 의미로 기독교로 개종한 콘베르소(Converso) 유대인들을 비하하는 별칭이었다.
중세 이베리아 반도의 무슬림 왕조를 도우며 경제적 부를 누렸던 유대인들에게 스페인의 왕조의 회복은 재앙이나 다름없었다.
그들에게 기독교로 개종도, 다시 네델란드로 이주도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 유대인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하기에 유대인의 신은 너무 가혹했다.
하느님의 나라, 시온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선지자 모세의 명을 따라 참고 견뎌야 한다고 했다.
시온은 '여기' 있지 않다.
마리노 스피노자가 있을 뿐이다.
시온의 신은 저 멀고도 먼 하늘에 있다.
스피노자는 내세보다 세상이 자유롭고 행복하길 바랐는지 모른다.
자연의 모든 것은, 그 자체가 신이라면, 그래서 자연의 일부인 인간도 신과 하나가 된다면, 자유와 행복은 바로 지금 오는 것이다.
"내가 진리를 위해 살 수 있도록 나를 내버려 두어라."
스피노자는 덴하흐 파빌리온스그라흐트 거리의 한 집에서 살다가 근처 스파위 거리의 한 교회 묘지에 잠든다.
230년 뒤, 파빌리온스그라흐트 거리로 세 명의 낯선 이방인들이 힘찬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시온은 없다던 한 철학자의 집앞을 더러운 돼지,
조센징들이 대한국인의 시온을 되찾기 위해 왔다.
우리는 그들을 헤이그 특사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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