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용 <서울의 어느 집>
한국에 박찬용 작가의 집보다 더 대단한 집은 많을 것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세련된 감각과 정교한 기술 공학을 접목한 집 등등등. 그러나 박찬용 작가의 집만큼 주인의 의도와 논리와 고민과 기호가 다각도로 녹아든 집은 많지 않을 것이다. 있다 한들, 그 의도와 논리와 고민과 기호의 맥락이 자기 언어로 정리되고 기록된 집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서울의 어느 집>은 저자가 1970년대에 지어진 서울의 낡은 아파트를 매입해 7년 동안 고쳐 산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 일상이 얼마나 큰 호사인지를 깨달았다. 저자가 계획하고 실수하고 개선하고 체념하고 수용하며 통과해 온 시간, 그 시간의 압축파일이라 할 만한 어느 집 한 채가 말해주는 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 중에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당연한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받아들이고 감당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해나가는 것. 이 책의 생생한 에피소드와 정보와 유머가 빛을 발하는 이유도 그것들 모두 저자가 일상을 대하는 태도에 빚지고 있기 때문일 테다. 감수와 책임은 삶을 전진시킨다. 나아가는 모습이 어설프든 촌스럽든 짠내 나든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게 다 내 모습이라는 게 중요하지. <서울의 어느 집>은 자기 몫의 고민에 담긴 자기 몫의 욕망, 자기 몫의 선택이 부른 자기 몫의 책임에 집중한 어느 도시인의 이야기다.
나의 필요와 기호가 쌓여 나의 판단과 결정이 된다. 그건 대체로 복잡하고 지난한 과정이지만, 복잡하고 지난한 만큼 피하지 않고 짊어진 사람에게는 선물이 온다. 배우고 이해하며 한 단계씩 개선해 나가는 시간 속에서 “설명하기 힘든 기쁨”을 느낀 박찬용 작가처럼. 고생 꽤나 하셨겠지만 저자의 말마따나 타인의 고통은 때로 나의 즐거움이 되는 법이다. 상세하게 들려주신 좌충우돌 두 번째 집 연대기를 읽으며 나는 지하철 옆 사람도 의식하지 못한 채 깔깔거렸다.
“미련한 나에게 ‘좋아함'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나는 필요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고 싶던 걸 하며 살았다.”
서울의 어느 집
저자 박찬용
출판사 HB프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