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에코타운 Jul 24. 2016

사바나켓으로 가는 길

잠에서 깼다. 얼람은 울리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을 켜고 시간을 봤다. 이런 아직 3:50분 이다. 억울하다. 30분은 더 잘 수 있는데. 어쩌랴, 벌써 깨어버렸는 걸. 잠시 억울함을 뒤로하고 출장 채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샤워를 하고 썬크림을 팔과 얼굴에 진하게 발랐다. 오늘 거닐게 될 뜨거운 들판을 생각하며.


사바나켓 참폰군 들판에서 모내기 중인 가족들


경비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용히 오토바이를 끌어대문 밖으로 나온 후, 아파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한 번에 걸렸다. 지난 몇 달 간 나와 함께 동행해준 혼다(Honda) Wave 100S. 가끔 이른 아침에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 것 빼고는 모든 게 만족스러운 녀석이다.



아직 포장되지 않은 아파트 진입로를 지나 도로에 접어들었다. 차들은 보이지 않고 세상은 온통 암흙이다. 오토바이는 이내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를 본 따 만든 란쌍대로에 접어들었다. 군데군데 불을 밝힌 간판이 보였을 뿐 여전히 깜깜했다. 밤이면 잠드는 도시 비엔티안의 대로에서 라이트를 켜고 신나게 달렸다. WTC를 지나 달랏쿠오에 이르자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곳도 시장은 새벽부터 삶이 시작된다. 하지만 아직 움직임이 활발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활기를 띠려면 5시는 넘어가야 할 모양이다.


신호등에 멈춰 섰다. 하지만 이른 새벽이라 그런지 오토바이와 차들은 적당히 지나갔다. 나도 차가 움직일 때 함께 움직였다. 여기서는 음주운전이 흔한 지역이다. 역시 흐름에 따르는 게 안전하다. 딸랏사오 앞에서는 신호가 파란색으로 바뀌었다. 잘 살펴야 한다. 절대로 신호등을 믿으면 안 된다. 이곳에서 사고가 나면 응급처치를 기대하긴 어렵다. 가벼운 사고도 쉽게 죽음으로 연결된다.



호텔에 도착했다. 운전기사는 이미 나와 있었다. 차를 현관 앞으로 댈 것을 요청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비엔티안플라자 호텔 3층. 여기가 코이카 라오스 사무실이 있는 곳이다. 미로처럼 생긴 방 구조 때문에 처음 오는 사람들은 곧잘 헤매곤 한다. 하지만 벌써 8개월이 되어가는 나에게 이 미로 구조는 익숙했다. 컴퓨터를 켜고 전날 찍은 사진을 옮겼다. 그때 신 과장이 들어왔다. 그녀는 본부에서 이번 출장단을 인솔하고 나온 책임자이다. 신과장은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이내 체크아웃을 위해 자리를 떴다.


사바나켓 공항에 도착하니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5시가 되었다. 호텔 리셉션에서는 다른 일행들이 여전히 체크아웃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시간이 좀 걸릴 것이다. 여기서는 항상 시간이 더 걸린다. 모든 게 우리 예상 데로 되지는 않는 곳이다.



호텔 로비에서 지배인인 필립을 만났다. 그는 베트남계 미국인이다. 그가 먼저 나를 알아보고 '굿 모닝'이라 인사한다. 나는 잠시 얘기를 나눈다. 나는 그가 왜 이렇게 일찍 나오는지를 물었다. 그는 항상 일찍 나오지는 않지만 일주일에 4일 정도는 아주 일찍 나온다고 했다. 필립은 직원들이 자기가 움직이는 패턴을 알지 못하도록 불규칙하게 점검 차 들른다. 경비들이 야간에 졸거나 카운터에서 불성실하게 근무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호텔에서는 시큐리티가 매우 중요한데 그렇게 함으로써 경비들을 긴장을 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나는 왜 이 호텔이 이렇게 잘 유지가 되는지를 알 수 있다고 덕담을 건 냈다.


시간이 계속 지체되지 필립이 걱정을 했다. 일행 중 일부가 카운터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있는 데 뭣 때문인지 계속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비행기 시간을 맞춰야 하는 나의 초조함을 보았는지 그가 카운터로 갔다. 일을 해결해 주려는 성의가 보였다. 필립이 가자 풀리지 않던 문제가 해결되었다. 문제라는 게 뭐 별로 대단한 것도 없다. 숙박료가 잘못 계산되었는데 커뮤니케이션 문제인지 그걸 해결하는 데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체크아웃을 마친 마지막 두 사람이 차에 오르자 기사는 공항으로 차를 몰았다.


하늘에서 바라본 사바나켓 전경



평소에 차로 붐비던 길에는 움직임 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든 게 적막하게 느껴졌다. 대낮의 시끄러운 소음은 사랒고 모든게 적막하게 느껴졌다. 상념의 틈도 없이 일행을 태운 스타렉스는 불과 10분 만에 공항에 도착했다. 체크인은 부드럽게 진행됐다. 일본이 지어준 국제청사와는 달리 옆에 있는 국내청사는 중소도시 버스 터미널 수준이다.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카트로 승객의 짐을 받아서 비행기로 나른다. 현대식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은 수도인 이 왓타이 국제공항 국내선 터미널에도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 모든 게 수동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승객을 처리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티켓을 받아 들고 다른 방으로 옮겨가 시큐리티를 지난다. 역시나 여권 검사와 비행기 표를 검사하고 검색대를 통과하고 다시 항공사 카운터에 티켓을 체크하고 대합실로 들어간다. 말 그대로 대합실이다. 파란색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시간이 되기를 기다린다. 이윽고 게이트가 열리고 어두스럼 한 여명 속에 ATR-72 비행기 두 대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물론 걸어간다.




나는 이게 너무 재미있다. 우리를 태우고 갈 비행기를 보면서 걸어가는 기분은 마치 나만의 특별한 전용기를 타는 기분이다. 커다란 프로펠러를 바라보며 큰 원을 그리며 뒷 쪽에 달린 문으로 향해간다. 4열짜리 조그마한 비행기이다. 여명 속에서 우릴 기다리는 비행기의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여섯 계단의 트랩을 사뿐히 오른다. 비행기 초입에서 신(Sinh)과 함께 파란색 유니폼을 입은 라오에어 승무원에게 '사바이디'라고 인사를 건 낸다.


사바나켓 공항


항공기는 태반이 비어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잠시 사람들의 자리를 옮기느라 분주해지지만 이내 조용해진다. 좌측의 창으로부터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야경처럼 진한 주황색이다. 그 여명과 함께 프로펠러가 있는 사진을 아이폰으로 담는다. 요즈음은 전화기 끄라는 소릴 하지 않아서 좋다.


잠시 숨돌릴 틈도 주지 않고 비행기가 좌우로 약간 흔들리며 사바나켓 공항에 내려앉았다. 출발한 지 30분 만이다.



오늘도 지리한 논쟁이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벌써부터 이 논쟁에 지쳐가고 있었다. 더운 날씨와 해외생활은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요인이다. 어쨌든 새로운 손님을 만나기 전에 배부터 채우고 볼일이다.


호수옆에 위치한 식당들, 큰 고동 구이가 특별식이다.


'낭응아' 국숫집, 아침은 여기서 해결하기로 했다. 공항에서 시내 들어가는 길에 있는 국숫집으로 매번 올때마다 들르는 한결같은 코스이다. 아마도 우리를 데리고 갈만한 마땅한 다른 장소가 없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즉, 이전에 가본 음식점을 이 다음에도 계속 가는 수밖에 없었다.


이 국숫집의 특징은 같은 베트남 국수이지만 고기가 듬뿍이다. 라오스 인들이 좋아할 만한 맛이다. 그렇지만 우리 일행들의 의견은 역시나 둘로 갈라진다. 입맛만큼이나 세상을 바로 보는 시각에서 차이가 난다. 한 그릇의 가격은 2만낍이다. 맛 집이라 그런가 조금 비싸다.


'낭'은 미스(Miss) '응아'는 이름이다. 즉 '미스 응아' 국숫집. 오늘도 안 교수는 깝비와 매운 고추를 찾는다. 이곳에 있으면서 감히 시도해보지 못한 것이 깝비를 먹는 것이다.민물고기를 발효시켜 굳힌 장의 일종으로 여기서는 약간 묽게 나왔다.


사바나켓 사업대상지 옆에 위치한 들판, 진흙을 뒤집어 쓴 물소



안 교수는 두리안을 비행기 타기 전에 빼앗긴 것에 대해 무척이나 아쉬워한다. 안 교수를 위해 시내에 들어가기 전에 과일가게에 들러 두리안과 망고스틴을 좀 구입했다. 두리안의 독특한 향을 싫어하는 사람이 분명 있다. 사자가 먹는 유일한 과일(?)이라며 라오스를 떠올리면 두리안을 떠올리는 사람이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의견이 일치되는 경우는 어디에도 없다. 이런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지만 때로는 자신의 입맛에 맞게 모든 것을 재단하려고 한다. 혹시나 나는 그러지 않았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것도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며.


호수에 메어진 보트들



주 농림국, 파포(PAFO)에서는 또다시 긴 회의가 시작된다. 우리는 역시 서로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각자의 생각을 만들어간다. 때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서로를 적대시할까. 남을 도우기 위해 우리가 다툴 필요는 없지 않을까? 혹시 나는 그러지 않았을까. 다시 보지 않을 사람처럼 자신의 신념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 이 상처는 사바나켓의 목가적인 풍경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 이어지는 일정 동안 서로들 조심하지만 결코 각자의 생각을 주입하기 위한 노력에 주저함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이틀간의 짧은 일정을 끝을 낸다. 우리는 그 논쟁 속에서 무엇을 만들어 냈을까. 어떤 이상을 담았을까. 그 생각들은 보고서가 되어서 나에게 다시 보내져 올 것이다. 우리는 이 도시의 이름처럼 '천국'을 그릴 수 있을까.


이틀 간의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사바나켓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에 들르자 피곤함이 몰려왔다. 역시나 늦은 밤까지 호텔에서 마신 맥주가 문제였다. 새벽 3:30분을 넘기며 열띤 이야기를 하는 일행은 무엇을 얻었을까.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서로를 더 잘 이해하는 단초는 되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는지는 지금의 피곤함 속에선 알 수가 없었다.


개미집이었던 곳이다.



모두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자신의 삶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며 살아간다. 그것이 때로는 자존심으로 불리고 옹고집으로 불리기도 한다. 우리는 그 자존심이 침해받았을 때 가장 크게 화를 낸다. 어떠한 합리적인 설명도 이 자존심에 대한 고려 없이 전달될 수 없다. 타자는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 낸 이에게 다르게 응징할 방법을 찾을 뿐이다. 우리는 과연 떠나기 전에 다시 상대에 대한 존중을 회복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수록 상처는 잘 아물지 않는다.

 

사바나켓, 천국의 땅으로 불리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샹그릴라는 없었다(3): 꿈이 자랄 수 없는 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