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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world May 01. 2024

우리 빌라 흉은 나만 보고 싶어



불편한 점? 솔직히 많다. 

대표적으로 주차. 우리는 일찌감치 우리 차량을 유료주차장에 대기로 해서 집 앞 주차장을 두고 다른 집과 실랑이할 일은 없다. 하지만 아기 짐을 차에서 집으로 옮길 때나 장을 보고 왔을 땐, 집 앞 주차장을 맘껏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이 참 아쉽다. 

다행히도 층간 소음은 전혀 없지만, 빌라이다보니 지나가는 사람들 말소리, 윗집 아랫집에 사는 강아지가 짖는 소리가 잘 들린다. 

벌레도 많다. 우리집은 2층같은 1층인데, 가끔 덩치 큰 벌레들이 집으로 들어온다. 3년 째 살다보니 작은 벌레 잡는 데엔 도가 텄으나 집 안에 들어온 큰 벌레를 보는 것은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여름이면 작은 날파리들이 창문을 뚫고 침입하는 것, 쓰레기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것, 택배보관함이 없는 것, 현관 공동출입문의 덜컹덜컹거리는 소리가 큰 것, 가끔 외부인이 전단지를 붙이고 가는 것.. 

불편한 부분이야 전부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지만 이런 얘긴 나만 하고 싶다. 내 빌라 흉은 나만 보고 싶다.




이사올 때 인테리어 했나봐요. 샷시가 새 거다라고. 나는 그냥 부동산에서 전세 매물을 소개해줘서 이것 저것 안 따지고 계약하고 들어왔는데 여기 집이 너무 별로네. 나 예전에 살던 집은 이 동네인데도 주차를 한 집 당 한 대 씩 했거든요. 근데 여긴 여섯 집이 어떻게 차 두 대 겨우 들어가는 주차장을 나눠 쓰는지. 새벽에 쓰레기차 지나가는 소리 들리죠? 우리 강아지가 그 소리 듣고 새벽에 일어나서 막 짖는다니까. 새벽 여섯 시에 지하 아저씨가 강아지데리고 산책나가시나봐. 그 때부터 우리 집 강아지 완전 깨요. 그리고 쓰레기도 엉망이야. 아무도 관리를 안해. 어휴. 우리 집은 주인이 샷시도 안해줘서 바람이 엄청 들어와. 너무 추워요. 우리집 애들한테 너무 미안하더라고.


아.. 주차는 좀 그렇죠. 그래서 저희는 그냥 유료주차장에 돈 내고 월주차해요. 벌레야 뭐.. 저층은 대부분 그러니까요. 샷시는 저희는 하고 왔는데 새 샷시가 아니면 좀 추우시겠네요.


샷시만 문제인 게 아니야. 아무튼 나 부동산에 진짜 이런 집 소개해줬다고 항의하려고 해요. 으 정말 치떨려. 불편한 게 이만저만이 아니야. 엉망이야.



본격적으로 불평 모드에 들어가시려는 301호 아주머니를 뒤로 하고 나는 아, 제가 바쁜 일이 있어서요. 다음에 또 말씀 나눠주세요, 라며 집에 후다닥 들어왔다. 창문 너머 주차장을 보니 아주머니는 아주머니 차 앞에 주차한 302호에 계속해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사실 아주머니 얘기가 맞다. 불편한 건 셀 수 없이 많다. 나와 남편도 너무나 잘 안다. 오죽하면 양가 부모님께도 종종 하소연을 할까.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집이 좋다. 주차야 다른 주차장을 돈 내고 이용하면 그만이고(주차난 모르고 이사온 게 아니니까) 샷시야 새로 하면 그만이다(오래된 샷시는 눈에 보이니 알고 계약하셨겠지). 벌레는 집 문제라기보단, 아파트든 빌라든 전원주택이든 저층이면 겪는 흔한 문제다. 쓰레기차나 소음이야 건물끼리 멀찍이 떨어지지 않은 빌라동네에 사는 이상 감수해야 한다. 



평소 불편하다며 가족들에기 하소연하던 나는, 어느새 집 안으로 들어와 301호 아주머니가 한 불평에 대해 하나하나 반박거리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우리 빌라는 불편한 게 많다. 인정한다.

하지만 이 집은 우리가 직접 고르고 직접 꾸민 우리 집이다. 우리 고민과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고 추억이 깃들지 않은 곳이 없는 우리 집. 힘든 일도 있지만 어렵사리 아기도 생기고 몸조리도 한 우리 집. 그러니까, 왕벌레가 갑자기 튀어나와도, 청소차가 지나가는 소리에 새벽잠에서 깨도, 불평은 나만 하고 싶다. 험담은 나만 하고 싶다.




혹시 우편물 201호로 받고 있지 않으세요? 제가 보니까 우리 빌라가 호수는 101, 201, 301호로 쓰고 있어도 등기부등본에는 지층, 1층, 2층으로 되어있더라구요. 이 부분때문에 고지서가 가끔 잘못 오더라고요. 이걸 좀 정정해야 할 것 같은데.. 우편물 잘못 받으신 게 있나 궁금해서요.


우편함을 들여다보던 중 지나가는 301호 아주머니에게 질문을 했더니, 아주머니가 단박에 대답하신다. 우리? 301호, 201호, 뭐 우편물 다 와요. 다른 집 우편물이 우리 집으로 때마다 내가 우편함 위에 올려놓잖아. 하여간 엉망이라니까.


아 네. 제가 한 번 알아볼게요.

나는 또다시 눈인사를 하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머릿 속에서 반박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아는데, 우리 빌라 불편한 것 투성이인 것 아는데, 이기적인지 모르겠지만 다른사람으로부터 욕을 듣고 싶진 않다. 우리 빌라 흉은 나만 보고 싶다.


동네에 많은 구 샷시 vs 신 샷시. 샷시를 바꾸지 않은 집은 추울 수 밖에. 빌라는 불편할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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