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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담자 May 28. 2021

부엌의 올바른 자세

자존감 회복 일기 2


 느지막이 일어나, 다른 사람들이 열어 놓은 아침을 걸어 나온다. 집 앞 가까운 가게. 엄마의 가게이자 나의 가게, 그러니까 우리 가게의 부엌에선 코를 자극하는 양념 냄새와 밥 짓는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다. 부엌에서 일하는 이모들과 엄마의 몸은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다. 수년 이상 유사한 일을 가진 사람들의 정자세로. 음식이 묻지 않게 걷어 부친 팔뚝, 옷 속으로 물이 새지 않게 단단하게 묶은 앞치마, 머리에 두건을 얹고 일하는 사람들의 어깨는 곧게 긴장해 있다. 조금 더 흥분하지도 않으며, 너무 늘어지지도 않은, 부엌에서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적당한 태도일 것이다.


나는 그곳에 온전하게 발을 담그고 싶지 않았다. 쉬려고 해도 일거리를 생각하며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그나마도 쉬려고 하면 온몸이 결린 채로 하루를 보내야 하는 엄마의 모습을 닮고 싶진 않았다. 건방진 생각이었다. 몸으로 일하는 대신, 워라밸을 만족시키는 고상한 일을 하고 싶었다. 낮은 자존감과 자신감은 나를 현실에 눌러 붙게 만들었다. 온종일 몸을 갉아 일하는 일터에서 순응했다. 시간이 없으니 다양한 일을 시도하기 전에 포기하기 일쑤였고,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날엔  곳에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에 불평불만이 쌓였다. 당신의 이름을  가게를 지켜나가기 위해  힘을 다하는 엄마의 모습은 나와는 상반된 것이었다. 손님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내가 절대로 온전히    없을 것이다. 쉴 새 없이 몸을 움직이게 하는 주인의식이란 어떤 것일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점은 그런 의식이 나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삶의 주인의식을 가져본 적이 거의 없었던  같았다. 누군가의 결정에 끌려가고, 그냥 주어져 있는 삶을 살았다. 열정 어린 시간이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대부분의 삶은 수동적이었다. 크게 부딪쳐본 적이 없으니 성공도 실패도 없었다. 무미건조한 삶이었다. “나는 장기 기억력이 뚜렷하지 않은 것 같아.”큰 굴곡의 정점에 위치한 기억들이 없다는 점이 내 기억력 탓인 줄만 알았다. 삶을 내 힘으로 끙끙대며 일으키거나 다듬어나갔던 기억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었다.


졸음이 오면 믹스커피를 후다닥 타 먹으며 다시금 정신을 일깨우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들처럼, 욕심 있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오늘, 아니면 내일. 작은 것부터 바꿔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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