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감 회복일기 1
나는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나 날 만났고
내가 짓지도 않은 이 이름으로 불렸네
걷고 말하고 배우고 난 후로 난 좀 변했고
나대로 가고 멈추고 풀었네
- 이소라, track9
그저 좋다는 말로만 흘려듣던 노래 가사를 깊이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한참 동안 문장을 곱씹었다. 나는 그 해, 가장 우울했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앞으로 나아갈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걱정과 불안이 다른 모든 생각을 누르고 있는 상태였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내가 누구인지 알 턱이 없었다. 다른 모든 이들에게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알지도 못한 채 태어났다’는 대목을 좋아했던 이유는 나를 방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어서였다. 정체성이 없는 나의 인생에 대해 조금이라도 덜 상처 받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래, 누구나 그래. 다 힘든 거고 다 이렇게 살아.
꿈이라는 게 없다는 게 이상했다. 작은 목표는 꿈으로 모아지기 전에 사그라들었다. 세상의 수많은 꿈들 속 내 현실에 걸맞은 꿈을 한계로 가둬두면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다. 이루어지지 못한 꿈이 마음속에 쌓여 갔다. 풀어내지도, 걷어내지도 못한 꿈의 무게감은 나의 몸을 계속해서 작게 만들었다. 매일 같이 꾸는 꿈은 아침을 뒤숭숭하게 시작하게 만드는 쓸모없는 잡꿈일 뿐이었다. 완벽하게 잠들지도 못하는 하루가 계속되었다.
가족의 일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한 곳에 수년을 머물러 반복적인 생활을 했다. 답이 정해져 있는, 형식적이고 반복적인 대화 이외에 말할 기회는 많지 않았다. 언어는 퇴화되고, 언어가 퇴화된 것이 퇴화된 것이 아니라 원래 부족한 것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게 없던 것들이 원래 없던 것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친구들은 무슨 일이 있냐고 종종 물었다. 괜찮아,라고 답하는 와중에 말하고 싶은 수많은 고민들이 입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사실은 괜찮아,라고 그만 말하고 싶었다.
무언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땐 수년이 지난 후였다. 온갖 후회들과 아쉬움이 남았다. 후회를 후회로만 남기지 않기 위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기억들을 모두 꺼내는 과정이 필요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지, 진짜 내 이름이 무엇인지에 관한 고찰을 위해 생각을 풀어내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