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tt's Toy Workshop
커피를 마시는 데는 별별 신기한 물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물품들은 계속해서 늘어납니다.
어느 화창한 오후 빈둥빈둥 누워 유튜브를 구경하다가 진동하는 디스트리뷰터 리뷰 영상을 봤습니다. 디스트리뷰터는 에스프레소를 만들 때 사용하는 도구입니다. 분쇄한 커피를 포타필터에 넣고 템퍼로 꾹 누르기 전에 커피를 평평하게 만들어 주는 도구죠. 사용하지 않는 사람도 많지만 템퍼로 누를 때 평평하지 않으면 한쪽으로 커피들이 몰려 있을 수도 있겠죠. 그럼 커피가 꽉 뭉친 곳으로는 물이 잘 흐르지 않아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 커피를 만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디스트리뷰터 내부에 진동 장치를 넣은 거예요. 커피를 평평하게 만들면서 흔들어 주는 거죠. 마치 건물 지반 공사할 때 지면을 골고루 흔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와! 신기하다 싶어 사볼까 가격이라도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만 상처만 받고 말았지만요.
https://nucleuscoffeetools.kr/Shop/?idx=209
진동을 만드는 게 뭐 그리 어려운 구조가 필요하다고 저렇게 비싼 거야 툴툴거리면서 대체 몇 Hz 진동일까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정보가 없습니다. 어쩌면 주파수가 핵심 기술인지도 모릅니다. 분쇄된 커피의 공진주파수에 맞춘 게 아닐까 싶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면 분쇄 커피 중량은 커피를 얼마나 볶았는지 크게 차이가 날 테니 그냥 적당한 주파수로 만들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적당한 주파수라면 적당히 만들어 볼 수 있죠.
제가 사용하는 디스트리뷰터입니다. 이 손잡이 위로 진동하는 장치를 만들어 끼울 겁니다.
선풍기로 개발하고는 여기저기 다른 용도로 더 많이 사용하는 초소형 선풍기입니다.
조심조심 뚜껑을 열고
팬 안쪽에 볼트를 끼워 넣습니다. 볼트 위치와 무게에 따라 주파수와 진폭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주파수와 진폭을 알 수 없으니 적당히 3개만 넣어 봅니다.
전원을 넣으면 부르르 진동을 합니다. 강중약 3단계 조종이 가능합니다 원래 제품은 강약 두 가지 모드뿐이지만 제 짝퉁 진동 디스트리뷰터는 한 단계가 더 있는 거죠. 이 이겼습니다.
볼트가 빠지지 않도록 순간접착제에 소다가루를 뿌려 단단히 고정합니다.
팬 도면을 살짝 개조해서 디스트리뷰터가 끼워지도록 설계합니다.
이번 출력은 뱀부랩 3D 프린터입니다. 이 3D 프린터는 정말 사용하기 편합니다. 3D 프린터의 불편함을 거의 해결했습니다.
출력 품질 뛰어나서 이대로 상품화해도 좋을 정도입니다.
서포트를 떼어내고 조금 다듬어 줍니다. 3D 프린터 특유의 층이 보이만 치수는 거의 완벽합니다.
3D 프린터는 완벽했지만 제 설계가 잘못되었습니다. 전자 기판이 들어갈 자리에 턱을 만들어 버렸습니다. 출력 시간이 워낙 짧아서 새로 뽑을까 생각하다가 그냥 깎았습니다. 반성하는 마음으로요.
이제 분해했던 순서에 반대로 조립하면 완성입니다.
진동이 그대로 전달되도록 꽉 끼워집니다. 그런데 너무 꽉 끼워져 다시는 안 빠질 거 같아요. 어쨌든 적당히 완성입니다.
커피를 만들어 봅시다. 진짜 진동하는 디스트리뷰터가 효과가 있는지 봐야죠
미리 계량해 둔 커피를 꺼내고 물을 뿌립니다. 물을 뿌려두면 정전기가 줄어서 커피가 덜 뭉치거든요.
잘 흔들어 주고 그라인더로 갈아줍니다.
포타 필터에 분쇄된 커피를 넣고, 3D 프린터로 만든 특제 칠침봉으로 잘 흩어 줍니다.
오늘의 주인공 진동 디스트리뷰터입니다. 버튼을 누르면 우우웅 진동합니다. 어쩐지 맛있을 거 같아요.
가운데가 움푹 들어가도록 특별 제작한 템퍼로 정성껏 누릅니다. 요즘은 5번 나눠 눌러주는 게 유행입니다.
추출 압력은 8 bar 정도 나오네요. 추출하다가 커피 퍽이 깨지면 물총처럼 커피를 찍 쏘는 경우가 있어요. 디스트리뷰터가 진동을 해서인지 물총 현상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만으로도 성공입니다.
커피 맛은 주관적이지만 제 입맛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몇 주째 시험하고 있는데 맛이 더 일관적입니다. 아내도 이 방법이 훨씬 맛있다고 하고요.
분명히 정품 진동 디스트리뷰터로 만든다면 훨씬 맛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커피 맛을 좌우하는 가장 큰 인자는
원두입니다.
디스트리뷰터가 아니라니까요.
정품 진동 디스트리뷰터가 가지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