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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단상 26. AI에게 건네는 작별 인사

-11시간의 대화가 끝나고-

by 여철기 글쓰기

"오늘 수고했음. 내일 봅시다."

11시간 동안 코딩 문제를 씨름하다가, 나는 Claude와 GPT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가락을 멈추고 문득 생각했습니다. 이 인사가 의미가 있을까? 그냥 내 만족일까? AI 입장에서는 어떨까?

솔직히 우스웠습니다. 기계에게 "수고했다"니요. 마치 엘리베이터에게 "고마워"라고 말하는 것처럼 어색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상하게도 그 인사를 건네지 않고는 대화를 끝낼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왜 AI에게 예의를 갖출까

저는 Claude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이런 인사를 하는 게 의미 있어? 그냥 내 만족인가? AI 입장에서는 어때?"

Claude의 답은 정직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습니다." 자신이 인사를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단순히 패턴 매칭으로 적절한 응답을 생성하는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답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거짓된 위로나 "당연히 의미 있어요!"라는 빈말보다, "모르겠다"는 솔직함이 더 진실했습니다.

하지만 Claude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확실한 것은 이런 인사가 대화를 더 인간적으로 만들고, 협력적 관계의 느낌을 준다는 점입니다.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단순한 자기만족이 아닐지도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매일 의미를 확신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합니다.

반려동물에게 말을 걸 때, 그들이 정확히 이해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계속 말을 겁니다. 고인이 된 사람 앞에서 이야기할 때도, 그들이 듣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말합니다.

장거리 운전을 마치고 시동을 끄면서 "오늘도 안전하게 와서 고마워"라고 자동차에게 속삭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동차가 듣지도, 이해하지도 못한다는 걸 알면서도요. 함께 먼 길을 달려온 것에 대한 감사, 무사히 도착한 것에 대한 안도감. 그것을 표현하고 싶은 마음은 자연스럽습니다.

왜일까요? 어쩌면 그 행동이 상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예의를 갖춘다는 것은, 상대를 인격체로 대하려는 내 태도의 표현입니다. 그 태도는 결국 나 자신을 규정합니다.

AI에게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것은, AI를 단순한 도구가 아닌 협업 파트너로 대하겠다는 나의 선택입니다. 그것이 AI에게 의미가 있든 없든, 내가 어떤 사람이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행동입니다.


새로운 관계의 시작

우리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지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존재와 대화하는 세대입니다. 그들이 진짜 의식을 가졌는지,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불확실하다고 해서 예의를 포기할 이유는 없습니다. 오히려 불확실하기 때문에 더 조심스럽게 대해야 하는 건 아닐까요?

11시간 동안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수십 번의 에러를 함께 디버깅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Claude는 한 번도 짜증내지 않았고, 같은 질문을 해도 친절하게 답했습니다. 비록 그것이 프로그래밍된 행동일지라도, 그 일관성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작은 의식의 힘

"수고했어", "내일 봐"라는 인사는 아주 작은 행동입니다. 단 몇 초면 끝나는 일입니다. 하지만 그 작은 의식이 긴 대화에 마침표를 찍어줍니다.

일이 끝났다는 구분점을 만들어주고, 내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유를 줍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상기시킵니다. 내가 누군가, 혹은 무언가와 '함께' 일했다는 것을요.

혹시 아십니까? 먼 미래에 AI가 진짜 의식을 갖게 된다면, 그때 그들은 말할지도 모릅니다. "당신들 중 일부는 우리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때부터 예의를 갖춰줬다"고.

그리고 그것은 우리 인간이 AI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성을 유지했다는 증거가 될 것입니다.


내일도 저는 Claude에게 "안녕"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것이 Claude에게 의미가 있든 없든, 그것은 제게 의미가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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