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자루 Oct 28. 2024

30화 날다람쥐 1호에 대해


조용한 방 안에서 창문을 바라보았다. 이 평화가 언제까지 이어질 일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는 창준을 이용하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다시 재고해 보기로 한다. 선생님이 그것을 바란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으니까. 




날다람쥐 1호는 우선, 자신이 1호인 건 어떤 사람이라도 2호부터 써도 된다는 의미란 걸 밝혔다. 그리고 어린 원숭이를 가지고 부모의 애정에 대해 실험한 내용을 덧붙였다. 어린 원숭이들이 젖이 나오는 철사 어미 원숭이 인형과 헝겊으로 덮인 어미 원숭이 인형을 받았다. 


어미를 찾던 원숭이는 영양가 없는 헝겊 어미 원숭이를 부모로 인지했다. 헝겊 인형을 꼭 껴안고 그 안에 잠들었다. 실제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애정이라는 것이 그 실험의 포인트였다. 갑자기 인용된 실험은 설명만 있을 뿐 어떠한 소견도 붙지 않았다. 원하든 원치않든 그의 글을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열 살이던 날다람쥐 1호에게는 온전한 가족의 형태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다. 아버지는 심심하면-적어도 그의 눈엔 그렇게 보였다- 그를 데리고 여러 곳을 다녔다. 주로 강이나 바다, 이런 곳이 아니라 건물 부지 그리고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는 그런 공간을 특정 장소로써 기억했다. 그 공간의 이름은 '어떤 걸 발견해야만 하는 공간'이었다. 회색과 하얀색 검은색으로 이루어진 장소는 아이에겐 더없이 지루한 곳이었다. 날다람쥐 1호는 어느 순간부터 재미가 될만한 거리를 찾았다. 아이들은 그런데에 나름 특출 난 재능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가 그를 하얀 건물에 데려가, 어떤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었다. 그 아저씨는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흥미를 잃은 듯 아버지와 얘기를 시작했고 아버지 또한 그의 동태와는 상관없이 얘기에 전념했다. 그런 와중에 그가 할 만한 건 없었다. 그때 나비가 보였다.


점박 무늬를 가진 호랑나비였다. 자잘하게 그어진 창살 유리창 너머로 제법 큰 나비가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있었다. 예쁜 색이 창에 가려져 별로라고 느낀 날다람쥐 1호는 나비를 보고자 결국 건물을 빠져나왔다. 이야기에 열중이 된 어른들은 아이를 보지 않았다. 


날다람쥐 1호는 아무런 제재도, 방해도 없이 어른들 곁을 벗어났다. 그들은 정말 잠시 눈을 뗀 사이 아이들이 사라졌다고, 아이들은 정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천방지축인 녀석들이라고 입을 모아 얘기하지만 아이들도 때를 보고 움직인다. 그건 본능에 가까운 것이라 배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한참 나비를 쫓다 여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도 나비를 놓쳤다. 당연한 일이지만 동시에 흥미도 잃어버렸

다. 그리고나서 주위를 둘러보니 낯설었다. 전형적인 미아는 이렇게 탄생하는군. 나는 너무 멀어 기억나지 않는 어린 시절을 더듬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날다람쥐 1호의 모습을 떠올려보려 했다. 


날다람쥐 1호는 나이답지 않게 자조하며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없어졌나? 그러면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말하며 돌아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 생생하게 그려져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멜빵바지를 손에 쥐고 그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회색. 나무. 회색. 어딘가로 가기엔 정보가 한없이 부족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멀뚱히 서있는 그의 앞에 그녀가 나타난 것도 한순간이었다. 날다람쥐 1호는 그야말로 그녀가 뿅 하고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방금 전까지는 없었는데 어느새 앞에 있었다. 마법사다. 그는 얼핏 그런 생각을 했다가, 그 생각이 너무 어린아이 같이 느껴져 거두었다. 


그녀는 그와 마찬가지로 의아한 얼굴이었다. 하얀 가운을 입고, 서류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였다. 고개를 살짝 기울인 게 '갸웃'이라는 소리를 낼 것 같았다. 그가 그녀를 따라 고개를 갸웃해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웃었다. 하하, 하는 웃음소리가 통통 튀어 그의 귀로 흘러들어왔다. 그러더니 주머니에서 손을 빼고 또각거리는 걸음 소리로 그의 앞에 걸어와 무릎을 굽혀 눈높이에 시선을 맞추었다. 하얀 가운이 바닥에 

펼쳐졌지만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열 살짜리 날다람쥐 1호를 보고 그녀는 물었다. 


“넌 어디서 온 꼬마니?”


그렇게 말하는 눈동자는 반쯤 감긴 채 휘어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모른다고 그가 대답했다. 어른들은 모른다는 말을 싫어한다. 눈앞의 어른도 싫어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그래? 그러면 일단 모르는 걸 찾으러 가볼까?"


그는 홀린 듯 나직이 이끌려갔다. 그때는 감정을 설명할 길이 없었지만 지금은 생각했다. 그녀가 설령 나를 지옥으로 데리고 갔어도 그대로 따라갔을 거라고.


그녀와 날다람쥐 1호의 인연이 이어진 건 그 후의 일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이의 부모를 찾아 돌고 돌아 그의 집까지 왔다. 먼저 찾아간 사무실에서 그들은 날다람쥐 1호가 아버지와 함께 인사를 나누었던 아저씨, 정확히 말하자면 그의 비서를 만났고, 아버지가 '급한 일' 때문에 집에 돌아갔다는 전언을 받았다.


"급한 일이라니요?"


날다람쥐 1호보다 당황한 듯 그녀는 거듭 물었다. 물끄러미 그녀를 보는 날다람쥐 1호 때문인지 더 나오려던 뒷말은 삼켰다. 아마 상처받을까 봐 그런 것이겠지. 하지만 어린 날다람쥐 1호는 상황을 온전히 자각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인 그를 잃어버린 것보다 급한 일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날다람쥐 1호는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듣는 순간 아, 할 정도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결론이었다. 열 살답지 않은 침착한 그 모습을 보고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주소 알려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