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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자루 Nov 01. 2024

32화 2호가 나타났습니다

아버지와 날다람쥐1호는 반 년 뒤에 재회했다. 그 기간 동안 그는 그녀와 살았다.




날다람쥐1호는 그녀를 선생님이라 불렀다.

그녀는 덤덤히 열 살 난 어린아이를 데리고 있었다. 이게 또 의아한 점인데, 당시에 날다람쥐1호 자신도 별생각없이 넘겼지만 그녀의 나이는 스물여섯이고 투룸에서 자취하며 직장생활을 시작한지 채 5년도 되지 않은 시기였다. 아버지는 꼬박꼬박 그의 양육비 겸 생활비를 보조해주었지만 그 이유 때문에 아이를 받아들였다기에 그녀는 너무 젊고, 또 어렸다.


날다람쥐1호는 그녀와 밥을 먹고 책을 읽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거나 때론 그녀가 그의 수준에 맞췄을 것이 분명한 받아쓰기나 끝말잇기 따위를 하며 보냈다.


그는 그녀와 나란히 서서 이를 닦았다. 거울을 보며 웃다가 서로를 보고 치약을 뿜었다. 

가끔 장난스런 얼굴로 그녀는 우리 오늘은 불량식품을 먹자고 그를 꼬드겼다. 겨우 두 사람이 전부인 집에서 몰래 먹는 것처럼 늦게까지 과자를 먹었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은 맛이 있거나 없었다. 과자의 맛보다는 그 순간의 분위기가 기억에 긴 잔상을 남겼다. 영화를 볼 때면 치호를 쿠션처럼 안고 있는 덕에, 웃으면 퉁퉁 울리는 그녀의 몸통이 온전히 느껴지는 순간마다 기분이 좋아졌다.  


놀다가 그냥 벌러덩 늘어져 있었다. 해가 들어오는 창가를 바라보다 또 스르르 잠이 드는 그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더없이 소중한 추억이 될거라는 건 모를 어린시절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오감을 활짝 열고 이 기억이 변색되거나 퇴화되지 않도록, 체하지 않도록 꼭꼭 씹어 가슴에 새기는 일이었다.


어떻게 그런 식으로 그녀와 친밀한 시간을 공유할 수 있었는지 날다람쥐1호는 설명할 수 없다고 했다. 생판 남인 자신에게 그런 애정을 준 그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일이란 걸 모르지 않아서 날다람쥐1호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는 꿈을 꾼 것이 아니었다. 그는 선생님과 반년을 보냈고, 그것이 세상의 중심이었다. 단지 그 시기만이라고 하기엔 너무 길고 큰 줄기였다. 


그녀가 날다람쥐1호의 중심인건 처음만난 그날부터 그랬다. 지금껏 변한 게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세밀하고 견고한 감정을 대체 누구한테 설명하고, 이해받을 수 있을까.

그래서였을까. 9년 전의 어린 그가, 그녀에게 말한 문장은. 어쩌면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한다고 날다람쥐1호는 그렇게 회고했다. 


자꾸만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날다람쥐1호에게 어느 날 그녀가 물었다. 


'내가 왜 선생님이야?'


그 물음에 그는 아무런 생각도 없이,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그 말은 그에게서 나왔으되, 그의 말이 아니었다.


'나를 이끌어줄 것 같으니까요.'


날다람쥐1호는 어쩐지 깊어진 눈을 한 그녀를 기억했다. 열 살인 그가 입에 담은 말은 두고두고 그를 따라왔다. 그를 이끌어줄 선생님은 이미 한참 전에 잃었다. 그녀는 과거에, 그는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 이게 정말 옳은 일일까, 그는 자주 생각했다.      


날다람쥐1호가 돌아간 집에 어머니는 없었다. 멀리 외국에서 그에게 온 편지가 몇 통 있었지만, 어느 순간 그것도 없어졌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손에 자랐고, 그들은 적당한 온기와 사랑으로 그를 키웠다. 그는 그녀의 죽음을 알지 못했다. 철없는 아이답게 새로 쌓이는 기억 너머로 그녀를 지웠다가 다시 떠올리고 말았다. 그 후로 그의 사춘기는 그녀가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뒤늦게인지, 때마침인지 한 남자가 생각났다. 그는 그녀가 유일하게 날다람쥐1호에게 소개시켜준 그녀의 지인이었고 쓸데없이 성실해보이는 인상과, 숨길 의도가 없는 건지 숨기지 못하는 건지 대놓고 그녀를 좋아하는 게 보이는-나는 여기서 인상을 찌푸렸다-사람이었다. 


날다람쥐1호는 그 남자가 선생님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추측성 멘트로 글을 마무리 지었다.      




 날다람쥐1호의 글을 조회 수가 꽤 높았지만 점점 낮아져 종래에는 두 자릿수도 되지 않은 기록을 남겼다.

'힘내세요' '와 너무 슬퍼요' '정말 사람들이 잔인하네요' '?' '이거 소설인가요?' 등 여러 사람의 가지각색 반응이 뒤따랐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듯 덤덤히 글을 이어나갔고, 


'그 남자'를 찾겠다는 다섯 번째 게시물을 끝으로 더 이상 아무 글도 올리지 않았다. 마지막 글에는 단 한 건의 댓글이 달려있었는데, 이전 글들에서 댓글로 쓰인 적이 전혀 없는 새로운 ID였다. 이름이 '날다람쥐2호'였다. 


정말 2호가 있었다. 그 댓글엔 이렇게 쓰여있었다.


'잘 읽었습니다. 나중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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