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버님.
미래의 며느리 인사드립니다 ㅎㅎ
편지를 써야지!라고 생각은 했으나,
막상 쓰기 시작하니 무척 어색하네요.
아버님이 저를 보신 적이 없고,
저도 아버님을 사진으로만 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한 번 마음을 담아 잘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제 소개를 드릴게요.
저는 아버님 첫째 아들과 결혼한 큰며느리랍니다.
아직 '며느리'라는 말이 어색한 새내기이기도 해요.
제가 T와 연애하기 전에, 재미 삼아 사주카페에 간 적이 있었어요.
다음 해 사주를 보았는데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맏며느리가 될 수도 있겠다고요.
제 입으로 말하기 그렇지만, 저는 MZ세대예요. 그러니 그런 말에 발끈할 수밖에 없었답니다.
아니 내가 왜? 싫은데?ㅋㅋ 하고 말이에요.
요즘 세대에는 그 말이 욕처럼 들렸거든요.
어쨌든 첫째만 아니면 된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다음 해 T와 만나고 T가 큰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에서야
아.. 그때 그 말이....? 하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하지만 연애와 결혼은 별개 ( 아버님도 아시죠? ㅋㅋ )
저는 결혼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그냥 넘겼습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젠 정말 직함으로 보자면 맏며느리가 되었네요.
물론 맏며느리다운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지만요..
T가 가끔 말하는 가족이야기에서, 항상 엄마만 나왔기 때문에.
아버지의 그늘이 전혀,라고 할 만큼 느껴지지 않아서..
그가 말하기 전에 어림짐작은 하고 있었답니다.
그는 숨길 생각은 없었지만 딱히 말할 기회가 없었다며,
사귄 지 세 달 정도가 되었을 때 말해줬어요.
그리고 나는 행복하게 살고 있었고 불행하지 않았다 말하더군요.
그래서 요즘은 흠도 아니라는 돌싱....인 줄 알았는데..(?!)
그냥 아버님이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그제야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T는 어머님이 잘해주셨고, 부족함 없이 자랐다 재차 강조했지만 저는 그 말을 들으며 슬퍼졌어요.
그냥.. 슬픈 거죠.
그건 그냥 슬픈 거예요.
그 뒤로 많은 일이 있었네요. 저는 T와 많은 추억을 쌓았고, 그와 남은 인생을 함께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처음 봤을 때 어머님은 차분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어머님을 볼 때마다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을까, 생각하고는 한답니다.
T에게도 자주 물어봤는데, 그럴 때마다 잘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말을 들으면 다시 조금 서글퍼지곤 했습니다.
어머님한테 물어본 적이 없냐고도 물었는데, 별로 물어본 적 없다고 하더라구요. (이래서 아들녀석들이란..)
어머님은 아버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일종의 확신도 있어요.
왜냐면.. 아버님이 어머님에게 있어, 저한테 T와 같은 의미라면.. 정말 보고 싶을 테니까요.
그와의 추억을 시간이 된다면 정말이지 계속해서, 말하고 싶을 테니까요.
하지만 그 의중을 모르는 이상, 제가 너무 개입하는 게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 조용히 있습니다. (사실 물어볼 만큼 능글맞지 못한 소심쟁이라 그러기도 해요)
그래도 말씀해 주신다면 귀 기울일 자신이 있습니다.
아버님은 어떤 사람이셨나요?
T의 집에서 어린 시절 T를 본 적이 있습니다. 아버님의 사진도 그때 보았어요.
저는 많이 젊은 어머님을 보며 신기해했고, 많이 어린 T를 보며 귀엽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한 사진을 보게 되었어요.
이제 막 걷기 시작한 T를 붙잡고, 아버님이 쭈그려 앉은 채 움직이려는 순간 찍은 사진을요.
사진 속 아버님의 표정은 밝았습니다. T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데도, 화질이 좋지 않은데도, 그 시선에 가득 찬 사랑이 느껴졌어요.
얼마나 이뻤을까. 얼마나 사랑스러웠을까.
극 F인 저는 아버님의 마음에 공감해 버려서 또다시 슬퍼졌어요.
사진이 너무 찬란하고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T는 너무 어려서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는 그 시절에, 아이들이 커가는 걸 보지 못한 채 떠나는 게 얼마나 애석했을까 싶습니다.
저는 어머님이 그 힘든 시기를 지나와서도 단단하게 서 있는 모습이 멋있어요.
아들 둘은 엄마의 마음을 헤아릴 만큼 크지 않았는데. 어떻게 견디셨을까요.
어느 늦은 밤, 아버님이 생각날 때는 어떻게 버티셨을까요.
차마 제가 상상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살아계셨다면 좋아하셨겠지요?
저 같은 며느리가 생겨서요ㅎㅎㅎ
장난입니다. 어쨌든 가끔 그런 생각을 해요. 어머님 옆에 있는 나이 든 아버님의 모습을요.
제가 상상력 하나는 또 기가 막히거든요.
그런 상상을 하면, 아무도 모르지만 괜스레 기분이 좋아집니다.
아버님의 두 아들 모두 장가 잘 갔습니다.
걱정 마시구요, 그곳에선 평안하시길 항상 기도할게요.
혹시 저희를 보고 계신다면
어느 날 힌트 한 번만 주세요. 제가 꼭 알아보겠습니다.
- 아버님의 자랑스런(?) 작가 며느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