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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을 찾아 떠난 이른 출발

일부러 찾아야 하는 이유와 평안

오전 7시, 예천으로 가는 길에 멈춰 선 나를 발견했다.

차로 넉넉히 3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

오후 3시에 출발해도 충분한데 왜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섰을까?

나도 내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사실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서둘러 길을 나섰는지.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들

"요즘 저는 불행하지 않습니다."

이 문장을 누군가에게 말할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일도, 관계도 불만족스러운 것이 없다.

'불'이라는 글자만 지우면 나는 행복하고 만족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


행복도 불행도 아닌 그 어딘가에 나는 서 있다.

불안하냐고 물으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내 감정이 어딘가 미끄러져 정확한 이름을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최근 생성형 AI 강의에서 나는 "표현할 수 있어야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정작 나 자신은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다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서둘러 집을 나왔다.

고요한 시간이 필요했다.

멍하니 있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간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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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작사부작, 손끝으로 찾는 평안

조용한 카페에 들어섰다.

하지만 여기서도 무언가 부산스럽게 움직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커피를 주문하고, 노트북을 꺼내고, 펜으로 무언가를 끄적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그런데 문득 깨달았다.

내게 필요한 건 이 '사부작사부작'이었다는 것을.

나는 손끝으로 평안을 찾고 있었다.

뜨거운 머그잔을 쥐는 감각, 펜이 종이 위를 지나갈 때 느껴지는 미세한 마찰, 키보드를 두드리는 리듬.

그 작은 움직임들이 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혀 주고 있었다.


'행복'과 '평안' 사이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평안한 상태에 있고 싶습니다."

요즘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는 '평안'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는 너무 크고 무겁게 느껴진다.

늘 행복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숨어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평안은 다르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처럼, 소리 없이 내리는 봄비처럼 조용히 내 곁에 머무른다.

평안은 어떤 거창한 감정이 아니라 그저 '지금 이대로 괜찮다'는 작은 인정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행복보다 평안을 더 자주 생각한다.

행복은 가끔 찾아오는 손님이지만, 평안은 함께 살아가는 룸메이트 같은 존재다.

매일의 일상에서 함께 숨쉬고, 때로는 서로의 존재를 잊을 만큼 자연스러운 동반자.


말로 할 수 없는 감정의 가치

가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가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내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한다고 해서 그 감정이 덜 중요하거나 덜 진실되지는 않다.

오히려 명확히 정의할 수 없는 감정들이 우리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건 아닐까.

정확한 알고리즘으로 계산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그 무엇이 우리 삶에 깊이를 더해준다.


한 시간 뒤, 카페를 나서며 문득 깨달았다.

나는 이미 평안을 찾아가고 있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내 감정은 여전히 모호하다.

그러나 그 모호함을 인정하는 순간, 묘한 안정감이 찾아왔다.

어쩌면 평안이란 모든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질문 속에서도 편안함을 느끼는 능력인지도 모른다.


오늘 예천에서 강의할 내용 중에는 '표현의 중요성'이 있다.

나는 내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 표현하지 못함에 대해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아침이었다.



여러분은 어떤가요? 행복과 평안 중 어떤 감정이 더 소중한가요?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을 어떻게 마주하시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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