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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Jul 18. 2020

동상이폰(同床異phone)

안 맞아야 정상 부부


동상이폰(同床異phone)
                          

한침대에 누웠어도 교감이 없다. 환갑 넘기며 이미 방전된 사이이긴 해도. 되도록 침대 가장자리 쪽으로 자리를 잡아 독립공간 확보에 힘쓴다. 이럴 땐 침대를 캘리포니아 킹 사이즈로 사길 잘했다고 스스로 기특해한다. 각자 양끝으로 자리 잡고 핸드폰 속 나만의 세계에 빠져든다. 가끔 신기한 동영상을 만나면 몸을 한번 굴려 침대 가운데 광장에서 접선하여 보여주고 함께 놀라거나 키득댄다. 동영상이 길면 공유를 누르고 각자 원위치로 돌아간다.

남편은 주로 연주음악이나 비행기 조종에 관한 취미 영상이나 기사를 본다. 나는 주로 각처 문인들의 좋은 글을 읽는다. 집안은 대체로 조용한 도서실 분위기를 유지한다. 침묵 수행, 묵언 정진하는 도량 같기도 하다. 바야흐로 1인 미디어 시대에 도달했다.

일찍이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해인 2001년에 한국의 사이트인 한국문학도서관에 개인 서재를 열었다. "매일 글 연습을 하라."는 말씀이 유언 같아서 그걸 지키기 위해서였다. 일기처럼 글을 썼다. 모두 작품이 되는 건 아니지만,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겁나지 않았다. 완성된 글이 아니어도 인벤토리가 많은 상점 주인같이 자신이 충만했었다. 이후에 블로그를 열고 페이스북에 카카오스토리에 브런치, 인스타그램까지 하고 있으니 가히 사이버 시대에 충실한 인물이 되었다.

작품 글만 올리는 서재와는 달리, 사생활도 소소히 올리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때문에 밥 먹기 전엔 사진을 먼저 찍고 놀러 가면 간판 앞에서 인증셧을 찍은 후 경치를 감상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남에게 보여지는 삶, 남을 위한 삶을 살게 된 셈이다.

하루 종일 나를 중계하는 삶이 그리 좋은 것 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사건이 있었다. 열심히 사이버 인생을 살던 지인의 아들이 피지로 휴가를 간다고 대대적으로 광고를 하고 다녀오니, 집안을 몽땅 털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보석 도매상이던 그가 장사 밑천이던 보석류까지 다 도난을 당한 것이다. 아는 도둑님일 것으로 추측한단다.

그런 일을 몰랐다면 컴과 가까운 생활을 하는 나도, 눈알과 손가락이 컴퓨터와 합체된 (이미 인공관절도 넣은지라) 사이보그로 재탄생할 뻔했다. 남의 불행을 보고 내 삶을 간수하는 모양이 미안하긴 해도 사이버 중독을 경계하는 반면교사로 삼고, 지나친 사생활 노출도 조심하려 한다.

젊은 날 눈멀어 결혼한 후, 맞는걸 눈 씻고 찾아도 없던 우리 부부가 막판에 맞은 콩팥(신장)으로 인해 부부 일심동체라는 어색한 칭송을 받은 지 5년이 넘었다. 동상 이폰으로 그 어색함을 떨칠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역시 부부는 안 맞아야 정상이다.


07172020 일부수정

 [이 아침에]
 이정아/수필가
 [LA중앙일보] 08.03.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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