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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Aug 30. 2017

한 여름에 민폐손님이 되다

달라진 엄마




이정아
 
남들은 한국을 탈출하여 휴가를 떠나는데, 나는 한증막을 찾아 온 셈이 되었다. 인천공항에 당도해 밖으로 나서는데 안경에 부옇게 김이 서리는 것이다. 마치 찜질방에 들어서듯이.

사상 최고로 더운 여름이라며 연일 기록행진을 하는 한국의 여름이다. 전력난으로 블랙아웃이 될 거라며 비상이 걸리고 더위를 피해서 가던 은행도 쇼핑 센타도 시원하지 않다. 올해 역대 초유의 더위라니 지구온난화로 더위는 해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나보다. 이런 여름철엔 남의 집에 방문하는 것도 실례가 된다. 손님이 오면 집주인도 옷을 갖춰 입어야하고 손을 대접하려면 더운 부엌을 서성거려야하니 말이다.

그래서 옛말에 ‘여름 손님은 3일이면 냄새난다.’ 하고 ‘여름에 오는 손님은 호랑이보다 무섭다.’는 속담도 생겼지 싶다. 이런 환영받지 못할 여름손님 노릇을 몇년째 연속 하고 있다. 난들 날씨 좋은 캘리포니아를 떠나 습한 더위 속으로 오고 싶었겠는가? 한국에서 수술을 하였기에, 그 후의 경과를 살피러 한 여름을 무릅쓰고 다시 나오게 된 것이다.

가장 만만한 곳이 친정집이었다. 한국에 오래 머물려면, 친정집에 머무는 것이 당연하다싶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엄마와 그동안 밀린 이야기도 많이 나누리라 생각했다. 엄마도 같은 마음으로 나를 반길 줄 알았다. 엄마와의 밀월은 며칠 가지 못했다. 엄마는 내가 알던 예전의 엄마가 아니었다. 팥쥐 엄마가 콩쥐 대하듯 해서 내 엄마가 생모가 맞나? 잠시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동생들이 아픈 누이를 보러 방문을 하면, “얘 나도 암 환자다.”하며 자신도 보호받아야 하는 환자라는 사실을 수시로 확인 시키곤 했다. 자식들의 관심이 멀어질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안쓰러울 정도였다. 노인 되면 아이 된다더니 순수한 아이가 아니라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못된 아이로 퇴행된 듯 보였다. 동생들 말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많이 변했다고 했다. 홀로된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어를 철통같이 하는 것일까?

신장이식에 암까지 겹쳤던 중환자인 외동딸에게 묘한 경쟁심마저 가진 듯 보여 무척이나 섭섭했다. 활발하고 머리가 좋던 예전의 엄마모습은 간데없었다. 저렇게 늙진 말아야지. 늙음이 서글펐다.

한국을 떠나 30년 넘게 미국에 나와 살면서 그동안의 가족사에 참여하지 못했다. 갑자기 변한 게 아니라 시나브로 변했을 터인데 그 과정을 건너뛰었기에 낯설어 보인다. 무척 늙어버린 엄마도 어른들이 다된 조카들도 중년의 동생들도 세월의 간격을 보여준다.

엄마 때문에 낙담한 내게, 여고 동창들은 저마다 자신의 부모가 변한 에피소드를 쏟아낸다. 정말 기상천외한 사례가 많기도 했다. 그런 일들이 특별하지 않은 노인들의 모습이라니 우리도 머잖아 겪는다는 예고이기도 해서 씁쓸하다. 늙음이 단순한 낡음이 아니길 바래본다. 늘어가는 나이테만큼 원숙하다는 말을 듣고픈 마음은 나만의 마음이 아닐 것이다.

나였더라도 귀찮은 여름손님을 반기지 못했을 것이다. 대장암의 아픈 엄마에겐 더 부담스러웠을 병든 자식의 여름손님 노릇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한다. 늙고 병든 몸으로 속 시원히 자식 수발을 못해주는 엄마의 답답한 마음을 이해할 것도 같다. 역지사지를 일깨워준 이 여름의 고국방문. 이젠 나도 ‘곱게 늙기’가 당면한 숙제임을 알려주었다.

돌아오니 더위도 한풀 꺾였단다. 내가 더위를 몰고 갔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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