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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아 Sep 15. 2017

가을 속에

떨어지다


Fall in love with Fall
                                                                                                                  이정아 수필가
  
장맛비도 걸리고 달빛도 걸렸던 방충망에 매미가 달려있다. 건드려도 꼼짝없다. 너무 우느라 기운이 쇠한 모양이다. 15년 정도의 생애에서 단 2주간 동안의 짝짓기를 마치면 생을 마감하는 매미는 구애를 위해 치열하게 울어댄다. 사생결단으로 우는 매미소리는 예전처럼 낭만적으로 들리질 않고 처절하기도하다. 떨어져 누워있는 박제같은 매미는, 매미의 계절이 끝나고 가을이 머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떨어지는 것이 어디 매미뿐이겠는가? 사람도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이다. 누군가에게 한 순간에 반하기도 하고 fall for someone, 사랑에 빠지기도 fall in love 한다. 그것이 도덕에서 벗어나면 낭만적인 일이 아니라 체면을 구기는 fall on one’s face 가 되기도 한다.
 
떨어질 때 우리는 애써 쌓아올린 평판과 자아와 일시적으로는 이성을 내버린다. 떨어질 때 열정 속으로 떨어지고 터무니없는 기쁨 속으로 떨어지는 것 같아도 궁극엔 불안과 공허를 동반한 결과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이 남들은 ‘불륜’이라하는데 당사자들은 굳이 사랑이라 말하고픈 ‘내로남불’의 실체가 아닐까?
 
기침과 연기와 사랑은 감출수 없기에,  그 사랑은 들키기 마련이다. 주변의 입에 오르내린다고 해서 남을 향해 험담을 퍼부을 필요는 없다. 원인 제공자는 본인이 아니던가. 소문조차도 본인들이 책임을 질 일이다. 그 정도의 책임도 없이 사랑을 논한다면 사랑이 불쾌해 하지 않겠는가.
 
가십거리의 가장 좋은 소재인 남녀상열지사는 동서고금, 남녀노소를 막론하여 가장 흥미롭다. 말 하는 이와 듣는 이의 감춰진 욕망을 자극하기도하며, 구경꾼인 나는 적어도 도덕적 평가에서 자유롭다는 안도감에 대리만족의 스릴을 즐길 수도 있는 것이다.
 
fall in love 의 계절인 가을이 왔다. 봄엔 여자가 바람나고 가을엔 남자가 외로움을 탄다는 건 우스운 말이다. 바람엔 늘 상대가 있기 마련이니 봄 가을 없이 모두가 흔들리며 사는 것이 인생이지 싶다.
 
사람이 사람의 마음을 얻는 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렵다고 들었다. 각각의 얼굴만큼이나 다양한 마음들. 순간에도 오만가지 생각을 하는 그 바람 같은 마음을 내게 머물게 한다는 것은 진정 어려운 일이다. 그걸 성취했다면 장한 일 이긴 하다. 그 장한 일을 가까이 있는 가족에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구식이라 놀릴것인가. 나는 부도덕보단 고루함을 택하겠다.
 
아무리 글 소재가 궁하기로서니 글을 위한 체험이라고 미화하는 것은 변명이다. 문인들에게 그런 낭만적인 경험은 용납되는 것이라는 부추김에 넘어가지 말지니. (실제로 한국에서 세미나차 오신 원로 평론가가 그런 이야기를 하셨다.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 fall 에 정신줄 떨어트리지 않기를, fall 에 마음 잘 가다듬고 글 앞에 옷깃을 여미길 기원한다.
 

매미소리 그치자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다.



재미수필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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