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름은, 거창한 사건의 얼굴을 하고 오지 않았다. 위독하다는 비보도, 해결해야 할 급박한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아주 오래전, 그녀가 살던 서울 변두리 작은 집의 전세 계약이 만료되었음을 알리는 법무사의 건조한 등기우편 사진 한 장이 메일함에 도착했을 뿐이었다. 보증금을 돌려받기 위해선 본인이 직접 와서 서명을 해야만 하는, 지독히도 관료적이고 피할 수 없는 절차. 그것은 그녀에게 선택을 강요했다. 외면하고 그 돈을, 과거의 마지막 흔적을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 걸어 나온 그 소음의 세계로 제 발로 다시 걸어 들어갈 것인가.
클로드에게 며칠간의 휴가를 알렸을 때, 그는 담배 연기 너머로, 평소보다 조금 더 짙은 냉소를 머금고 말했다. “돌아오는 거니?” 그의 무심하고 재미없는 농담에는 그녀가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이제는 서로 묻지 않아도 되는 단단한 닻 같은 믿음이 내려져 있었다. 그는 그녀가 도망치는 것이 아님을, 자신의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길임을 이미 알고 있는 듯 했다.
인천공항의 인공적인 냉기와 재활용된 공기는, 섬의 끈적하고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과는 다른 종류의 질식감을 선사했다. 오래 전, 도망치듯 이곳을 빠져 나가던 그녀의 폐부를 찔렀던 그 불안의 냄새. 하지만 이상했다. 이번에는 그 공기가 그녀를 잠식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저, 거대한 수족관의 유리벽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듯, 분주하게 오가는 무표정한 얼굴들과 그들이 끌고 가는 욕망의 가방들을 담담하게 관찰할 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그들의 일부가 아니었다.
진짜 시험은 지하철이었다. 퇴근 시간이 겹친 2호선. 쇠와 먼지 냄새, 축축한 우산과 누군가의 저녁 메뉴였을 음식 냄새, 그리고 수많은 타인의 체취와 피로가 뒤섞인 그 익숙하고도 애달픈 피로가 공기처럼 떠도는 공간. 예전의 그녀였다면, 타인의 날숨에 숨을 도둑맞는 기분으로 호흡을 멈추고 이 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도했을 것이다. 스크린도어 너머로 밀려드는 인파를 보는 순간, 그녀는 본능적으로 숨을 멈췄다. 하지만 이내, 바닷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주 천천히, 자신의 호흡에만 집중했다. 클로드의 목소리가 파도 소리처럼 귓가를 스쳤다. ‘그냥 숨 쉬어(Just breathe).’ ‘후우- 스으읍-.’
귓가에 울리는 것은 더 이상 세상의 소음이 아니었다. 오직 그녀 자신의 생명이 만들어 내는, 가장 깊고 고요한 소리. 그녀는 더 이상 사람들의 잿빛 얼굴에서 분노나 연민을 느끼지 않았다. 그저, 저마다 다른 깊이의 심해를 유영하는 고독한 생명체들. 수압에 짓눌린 듯, 혹은 포식자를 피해 바위틈에 숨은 물고기처럼 잔뜩 움츠린 어깨들. 그녀는 깨달았다. 서울이 변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자신의 눈이, 숨 쉬는 자신의 폐가 변했다는 것을. 그녀는 더 이상 이 도시의 일부가 아니었고, 그렇기에 비로소 이 도시를 온전히, 그리고 애처롭게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집 현관문을 열자마자, 락스 냄새가 희미하게 남은 행주와 수십 년간 김치와 된장 냄새가 밴 냉장고, 그리고 낡은 아파트 복도에 떠도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뒤섞여 그녀의 폐부를 찔렀다. 그녀가 섬에서 매일같이 마시던 흙과 풀, 바다의 날것 그대로의 생명력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그녀가 벗어던진 세계의 질식감이었다. 엄마의 날 선 목소리가 그 냄새의 장막을 뚫고 비수처럼 날아와 박혔다.
“아이고, 얼굴 상한 것 봐라. 햇빛에 그을려 새까매졌네!”
엄마의 시선은 그녀의 검게 그을린 피부와 마른 몸, 투박한 옷차림 위를 경멸처럼 배회했다. 늘 듣던, 이제는 어떤 상처도 남기지 못할 거라 믿었던 무딘 칼날.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그 칼날은 굳은살이 박이지 않은, 그녀의 가장 연한 속살을 정확히 기억하고 후벼 팠다.
“남들은 시집가서 애 낳고 잘만 살더라. 엄마 친구 딸은 승진해서 아파트도 샀다던데. 너는 대체 그 나이 먹도록 모아놓은 돈도 없어, 결혼도 안 해, 그 섬 구석에서 대체 언제까지 있을 거야?”
짐은 아직 풀지도 못했다. 그녀는 그저 물 한 잔이 절실했다.
엄마가 던지는 말들은 그녀가 섬에서 애써 외면하고 잊으려 했던 모든 현실의 채찍질이었다. 저녁 식사를 준비하던 순간, 엄마는 무심코 설거지를 돕는 그녀의 손을 보고 기가 막힌다는 듯 혀를 찼다. 탱크 밸브를 여닫고, 무거운 장비를 옮기며 단단하게 자리 잡은, 노르스름한 굳은살. 엄마는 평생을 부엌일에 공장일에 자신보다 더 거칠어진 손으로, 딸의 그 낯선 굳은살을 경멸하듯 쳐다봤다. 그리고는 자신의 손을 들어 그녀의 손 옆에 나란히 놓아 보였다. 마디는 굵어졌고, 피부는 종이처럼 얇아져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내가 너 이러는 거 보려고 대학 보낸 줄 알아? 손이 이게 뭐야, 손이! 어디 막노동꾼도 아니고. 이 애미 손 닮은 거 보려고 내가 그 고생 한 줄 아냐고! 남들 다 편하게 앉아서 돈 벌 때, 너는 그 땡볕에서 무슨 고생을 사서 하는 거냐고!”
엄마의 분노는 단순한 비난이 아니었다. 딸이 자신의 실패한 삶을, 피하고 싶었던 고생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대한 절망이자, 뒤틀린 사랑의 절규였다. 엄마의 칼 같은 말은, 애써 단단하게 얼려놓은 그녀의 심장을 이번에도 여지없이 파고들었다. 단 한 번도 빗겨가지 않는다. 엄마는 딸이 선택한 삶의 방식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의 기대를 배신한, 실패한 결과물로 낙인찍었다. 그녀가 몸으로 써 내려간 정직한 역사는, 엄마의 세계에서는 그저 천박한 노동의 흔적이자 부끄러운 낙오의 증거일 뿐이었다. 수십 년간의 오해와 원망이, 하수구의 썩은 물처럼 역류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욕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갈 곳이 거기밖에 없었다. 차가운 타일에 등을 기댄 채, 그녀는 소리 없이 울었다. 엄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며칠 후, 옛 직장 동료들을 만난 자리는 화려하게 위장된 고문실과도 같았다. 피곤에 절어 있었지만 잘 다려진 셔츠와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할부로 장만한 명품 가방을 든 그들. 대화는 온통 그녀가 도망쳐 온 세계의 언어들로 가득했다. ‘영끌’해서 마련한 경기도 신축 아파트의 대출 이자, 끝없이 오르는 아이의 어린이집 비용, 다음 인사 시즌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상사에 대한 지긋지긋한 뒷담화. 그들의 대화는 이제 그녀에게 온전히 해독 불가능한 외국어였다. 그녀가 섬에서 조류의 흐름과 수압의 변화, 바다의 언어를 배우는 동안, 친구들은 ‘자본주의적 생존’이라는 또 다른 언어를 완벽하게 습득한 것이다. 그녀는 그 대화에 끼어들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끼어들고 싶지도 않은 자신을 발견했다.
한 친구가 반짝이는 눈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 “우리 아들 좀 봐. 너무 예쁘지?” 화면 속에는 포동포동한 아기의 백일 사진이, 그 뒤로는 이제 막 입주했다는 아파트의 깔끔한 거실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이거 대출 갚으려면 앞으로 30년은 회사 더 다녀야 해.” 친구는 웃으며 말했지만, 그 웃음 속에는 포기와 체념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또 다른 동료는 새로 뽑은 국산 SUV의 스마트키를 테이블 위에서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주말마다 애 데리고 캠핑이라도 가려면 이 정도는 있어야지. 인생, 뭐 있냐. 이렇게 빚 갚다 가는 거지.”
그 순간, 그녀가 섬에서 지켜온 모든 것들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져 내렸다. 그들이 짊어진 대출 이자와 육아의 무게가, 오히려 안정된 삶의 증거처럼, 어른의 책임감처럼 그녀를 짓눌렀다. 그녀가 섬에서 온몸으로 지켜낸 바다의 소금기 어린 자유는, 친구들이 짊어진 현실의 무게 앞에서 철없는 도피나 무책임한 자기만족으로 증발해 버렸다. 그들이 풍기는 새 차의 인공적인 가죽 냄새와 희미한 분유의 단내가, 그녀의 자유가 품은 날것의 냄새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나만 이렇게, 아무런 책임도 없이, 하루살이처럼 부유하며 사는 것이 과연 옳은 길일까.
해일처럼 밀려온 불안과 함께,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또 다른 감정이 수면 아래에서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질투였다. 대출의 무게에 짓눌려 있으면서도 가정을 이루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는 친구들의 ‘안정감’. 그 지긋지긋해 보이는 속박이 주는 역설적인 안정감에 대한 아주 희미한, 그러나 분명한 질투. 그녀는 자신의 하루살이 같은 자유가 주는 해방감과 동시에, 그 무책임함에 대한 깊은 죄책감에 휩싸였다. 이 감정이야말로, 그녀가 이 여행에서 마주해야 할 가장 정직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 몇 년 전, 도망치듯 이곳을 떠나던 그녀가 아니었다. 그녀는 상처 입고 너덜너덜해진 채, 다시 도망치고 있었다.
비행기가 육중한 몸을 일으켜 활주로를 박차고 오르자, 서울의 야경이 발아래 거대한 보석 상자처럼 펼쳐졌다. 한때는 저 불빛의 일부가 되기 위해 발버둥 쳤고, 그 후에는 저 불빛으로부터 달아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상처 입었다. 저 불빛들은 그녀가 가지지 못한 삶의 증거였고, 그녀를 비웃는 심판의 눈빛이었다.
그녀는 창밖을 보지 않았다. 대신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귓가에 울리던 비행기의 거대한 소음이 서서히 멀어지고, 그 자리에 아주 익숙한 소리가 차올랐다.
‘후우- 스으읍-.’
호흡기를 통해 들려오는, 깊고 푸른 바닷속에서의 그 숨소리. 모든 소음이 차단된 채 오직 자신의 생명과 고요히 마주하던 그 순간의 소리.
그녀는 비로소 깨달았다. 엄마의 잔소리도, 친구들의 삶도, 결국 다른 깊이의 바다에서 각자의 수압을 견디는 방식일 뿐이라는 것을. 그들의 세계에서 그녀는 길 잃은 난파선일지 몰라도, 그녀의 바다에서는, 그녀만의 깊이에서, 그녀는 온전히 숨 쉬고 있었다. 그리고 클로드의 말을 떠올렸다. 거창한 계획 따위는 집어치우고, 그저 욕심내지 말고, 한번에 하루씩만 살아내면 된다던 그의 무심한 목소리.
그녀의 친구들은 30년의 대출을 한꺼번에 걱정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저 내일 아침의 다이빙만을 생각하면 되었다. 그것이 그녀의 생존 방식이었다. 그녀의 섬은 특정 장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지도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 오직 그녀의 숨결이 닿는 모든 곳에, 그녀의 내면 가장 깊숙한 곳에 존재하는 영원한 좌표였다. 그녀는 어디에 있든, 눈을 감고 자신의 호흡에 집중하기만 하면, 언제든 자신의 섬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서울의 가장 소란스러운 파도를, 그녀는 온몸으로 맞으며 건너왔다. 그리고 이제 자신만의 수평선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비행기는 구름 위로 솟아올라, 지상의 모든 불빛을 아득한 기억으로 밀어냈다. 어둠 속에서, 그녀는 아주 나지막이, 오직 자신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숨 쉬면, 살아져(사라져).”
체념도 포기도 아니었다. 자신의 모든 과거와 현재를 끌어안은 자만이 내뱉을 수 있는, 가장 단단하고 고요한 존재의 증명이자, 자신만의 항해를 위한 선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