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온 세상에 ‘잠’이라는 개념이 아예 사라진 것처럼 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며칠째 잠에 들지 않았다. 집에도 가지 않고, 바닷속에도 가지 않고, 마치 그들은 남극의 펭귄 떼가 혹한을 견디기 위해 서로의 체온에 기대듯 다이빙 센터의 낡은 나무 의자와 모래사장 위에 몸을 붙인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살을 태울 듯 후덥지근하고 습기 가득한 열대의 섬 한가운데서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은 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지독한 한기에 떨고 있었다. 마음이 시렸다. 말 한마디 없이 클로드 스스로 정하고 떠난 작별이 그들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들은 잠드는 것이 두려웠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야 하는 그 순간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다. 클로드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는 걸 막으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처럼 모두 잠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은 깨어 있기 위해 마셨다. 밤새도록 맥주병이 비워졌고, 테이블 위에는 담배꽁초가 산을 이뤘다. 그들은 클로드를 이야기했다. 그가 첼시 때문에 얼마나 유치하게 화를 내곤 했는지, 그가 가끔씩 얼마나 무모한 장난을 쳤는지, 그가 가르친 최악의 다이빙 교육생이 누구였는지, 그가 얼마나 지독한 냉소로 사람들의 속을 뒤집어 놓았는지, 그가 다이빙을 가르치면서 생긴 기상천외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이야기는 낄낄거리는 웃음으로 시작되었다가, 이내 누구랄 것도 없이 자지러지는 광적인 웃음으로 번졌다. 그러다 그 웃음의 끝은 약속이나 한 듯 서러운 통곡으로 곤두박질쳤다. 케빈이 늙은 사자처럼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고, 줄리앙은 욕설을 뱉으며 울었다. 그들은 미친 사람들처럼 굴었다. 누군가는 낡은 기타를 가져와 목이 쉬어라 노래를 불렀고, 누군가는 그에 맞춰 모래사장 위에서 비틀거리며 춤을 추었다. 클로드가 그들에게 선사하고 떠난 당혹감, 분노, 배신감, 그리움 같은 세상에서 이름 붙인 감정들이 뜨끈한 바닷물에 가득한 해파리 떼처럼 엉겨 붙었지만, 대부분은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감정들이었다. 그들은 그 감정 속에서 완전히 길을 잃었다.
그녀는 그 기괴하고도 성스러운 광경의 한가운데, 그들의 울음과 웃음소리 한가운데에 앉아 있었다. 그녀 역시 마시고, 웃고, 울었지만, 그녀의 슬픔은 그들의 뜨거운 방출과는 결이 달랐다. 그녀는 계속해서 ‘어제’와 ‘오늘’ 사이의 경계에 대해 생각했다. 인간이 그어 놓은 자정이라는 무의미한 선. 스무 시간 전에는 클로드가 ‘있었고’, 지금은 클로드가 ‘없다’. 이 거대한 우주와 섬의 바다에는 무엇 하나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지금 이 순간에도 어김없이 수탉이 울고, 저 어둠 너머에서는 해가 떠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제 아침처럼 배신을 모르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말간 얼굴을 하고. 그 변함없는 일상의 성실함이, 어제 그녀의 눈앞에 펼쳐졌던 그 완벽한 사파이어 빛 하늘이, 이제는 견딜 수 없는 모욕처럼 느껴졌다.
이것이 그녀가 생의 첫 번째로 직접 마주한 ‘죽음’의 실체였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린 자리에는 시커멓고 깊은 구멍만이 남았다. 상실감이나 허무함이라는 말은 너무 세련됐다. 그저 존재가 사라진 자리의 공백은 뻥-, 구멍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모래사장에 놓인 자신의 새까만 맨발을 지나 어제 교육생들과 함께 클로드를 기다리며 결합해 둔 다이빙 장비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녀는 손바닥에 박인 굳은살을 엄지로 밀어냈다. 바닷속에 있었던 게 아득하게 먼 일처럼 느껴졌다. 그녀를 이 섬에 붙잡아 주었던 가장 무거운 닻은 이제 그녀가 헤어 나와야 할, 재로 뒤덮인 가장 깊은 수심이 되었다.
애도는 섬에만 머물지 않았다. 클로드의 페이스북은 추모의 벽이 되어 그가 지난 15년 넘게 가르친 전 세계 수천 명의 다이버들이 그들의 첫 바다를 열어준 스승의 마지막 길에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들은 클로드와의 추억을, 그의 퉁명스러운 농담과 무심한 듯 다정한 보살핌을 이야기했다.
얼굴도 모르는,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이들이 그녀에게도 메시지를 보냈다. “도대체 왜, 어떻게 죽었나요?” 날카로운 갈고리 같은 질문들은 잔뜩 예민해진 그녀의 신경을 찢었다. 그녀는 그 질문들 앞에서 고슴도치처럼 가시를 세운 채 “그런 게 대체 왜 궁금하죠?”라고 반문했다. ‘Fu*k! 예의를 좀 지키라고!’ 그녀는 혼자서 작게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들이 자신에게 예의를 지키지 않아서 화가 났다. 어차피 세상을 떠난 클로드는 이곳에 살아 있을 때도 예의 따윈 챙기지도, 따지지도 않던 사람이었다. 그저 그녀의 욕심이었다. 그의 단정한 마침표가 사람들이 며칠 유희로 즐기다 말 가십거리가 되지 않길 바라는, 그에 대한 그녀의 마지막 예의이자 의무였다.
아무리 피하려 버텨 봐도 무자비한 현실은 결국 다가왔다. 섬에 하나뿐인 작은 경찰서는 분주해졌다. 그녀는 유일한 목격자로서 모든 절차의 중심에 서 있어야 했다. 며칠째 잠들지 못한 그녀의 감각은 마치 얇은 막이라도 한 겹 씌운 듯 무뎌져 있었다.
경찰서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후질그레한 내부가 시야에 들어왔다. 칠이 벗겨진 벽, 삐걱거리는 나무 책상, 천장에서 느릿하게 돌아가는 낡은 선풍기까지. 알아들을 수 없는 태국어가 나른한 선풍기 바람에 섞여 웅웅거렸고, 낯선 향신료 냄새와 눅눅한 곰팡내가 뒤엉켜 있었다. 그녀는 이 모든 풍경이 꼭 70년대나 80년대 한국 드라마 속에서나 본 듯한 세트장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띤 채로 경찰서 테이블에 앉았다. 정말이지 자신이 그 드라마 속 비련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다는 엉뚱한 상상을 했다. 바로 그때, 낡은 선풍기가 ‘끽-’ 하고 신경질적인 쇠 소리를 냈다. 그 날카로운 소리에 그녀의 흐릿한 상상은 잠시 깨졌다. 테이블 아래, 그녀의 무릎 위에 놓인 두 손은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미세하게 떨려오고 있었다.
그녀의 몇 마디로 한 사람의 일생이 ‘자살’ 두 글자로 마무리되는 찰나였다. “삶이란 게 참…” 하고 혼잣말을 하며 그녀는 앞에 앉은 젊은 경찰관을 한 번 쳐다봤다. 그러자 그는 조용히 두 손을 모아 코끝에 갖다 대고는 눈을 감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녀는 짐작만 할 뿐이었다. 이 후질그레한 관공서의 습하고 탁한 공기 속에서 자신을 향한 의례적인 인사가 아닌,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방인 클로드를 위해 낯선 이국의 신에게 보내는 저 조용한 축복. 그녀는 어쩌면 그것이, 클로드에게 그리 나쁜 마지막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멍하니 생각했다.
클로드의 유일한 혈육은 런던 근교에 사는 노모뿐이었다. 케빈이 밤새 전화를 붙들고 있었지만, 그녀는 이 먼 섬으로 아들의 마지막을 수습하러 긴 비행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장례는 오롯이 남겨진 자들의 몫이 되었다. 누가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 이 섬은 뜨내기들의 정거장이었지만, 클로드처럼 15년 넘게 뿌리내린 ‘파랑’은 섬의 역사 그 자체였다. 케빈은 다이빙 센터 바 위에 다이빙 마스크를 넣는 플라스틱 박스를 놓아두었다. 섬의 오래된 이방인들과 강사들이 말없이 다가와 그 박스 안에 구겨진 바트 지폐를 묵묵히 밀어 넣었다.
그들은 이 섬에 역시 유일한 작은 불교 사원에서 클로드의 장례를 치르고 화장하기로 했다. 그녀는 그 모든 과정을 기계처럼, 마치 남의 일을 처리하듯 무감각하게 도왔다. 장례식에는 섬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대부분 낯이 익었다. 식당에서, 바에서, 해변에서, 하다못해 바닷속에서라도 한 번은 스치며 가벼운 인사를 주고 받은 사람들이었다. 태국 현지인들과 항구에서 리조트까지 손님을 실어 나르는 택시 드라이버, 리조트 리셉션부터 청소, 정원일을 하는 미얀마인들까지. 그들은 모두 클로드를 알았다.
주황색 승복을 입은 태국 승려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염불을 하고, 낯선 향 냄새가 열대의 눅눅한 공기와 뒤섞여 기묘한 장막을 쳤다. 자신이 태어나 자란 곳에서 멀리 떨어진 이 이질적인 풍경 속에서 첼시 유니폼을 입고 냉소적인 농담을 던지던 영국인 무신론자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건 결국 승려들과 부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