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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아가미 없는 물고기

by 조하나


사원 굴뚝이 마침내 기이한 연기를 토해냈다. 영국인 무신론자이자 영원한 이방인 클로드의 영혼은 하늘로 승천하는 신성한 백색도, 다 타버린 장작이 남기는 허무한 회색도 아닌 진한 황록색이었다. 마치 곪은 상처가 터져 나올 때의 고름 같기도 하고, 오랜 시간 빛이 닿지 않는 심해의 이끼 낀 바닥 색 같기도 한, 불길하고도 애처롭고 몽환적인 색이었다. 한 인간의 생애가, 이 섬에서 버텨온 짠내 나는 세월이, 고작 저 한 줄기 짙은 황록색 기체가 되어 허공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육신을 태우는 불길조차 그가 평생 품어온 냉소와 고독을 다 태우지 못한 것일까. 굴뚝에서 뿜어져 나온 연기는 매캐한 냄새 대신 비릿한 쇠 맛을 공기 중에 흩뿌리며 야자수 잎사귀 사이로, 사람들의 폐부로 스며들었다. 태워짐으로써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체로 변하여 섬 전체를 질식시킬 듯 덮어 누르는 그의 존재감에 그녀는 압도됐다.

화장이 끝나고 수습된 것은 한 줌의 뼈, 짙은 황록색 가루였다. 뼈가 타고 남은 재마저도 그는 끝까지 이질적인 색채로 남았다. 그가 이 세상에 남긴 마지막 고집이자, 끝내 이해받기를 거부한 자의 서글픈 침묵이었다.


섬사람들은 클로드의 연기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그가 ‘왜’ 그랬는지 궁금해했다. 마치 그 이유를 알아내고 결론을 지어야만 그의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납득 가능한 사건으로 분류되어 깔끔하게 서류철 속에 꽂히기라도 할 것처럼.

“도대체 왜? 유서도 없었어? 우울증이라도 있었대?”

그 의미 없는 질문들은 클로드를 위한 애도도, 그와 가까웠던 사람들을 향한 위로도 아니었다. 그저 살아남은 자들이 자신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무례한 폭력이었다. 그들은 인과관계를 명확히 함으로써 자신들의 삶은 그와 다르다는 것을, 자신들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했다.

그녀는 한동안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등 뒤로 느꼈다. 섬의 좁은 골목, 편의점 앞, 심지어 스쿠터를 타고 달리는 도로 위에서도 작고 외딴 섬 사람들의 시선은 끈적하게 그녀의 뒤통수에 달라붙었다.

“저 여자가 발견했다던데.” “둘이 무슨 사이였을까?” “죽기 전날 밤 그와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대… 둘이 싸우기라도 한 거 아냐?” 익명의 얼굴들은 잔인했다. 그들은 그녀가 ‘비극을 가장 먼저 발견한 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녀에게 어떤 책임이 있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야만 이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제나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무력감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는 걸 선호했다.

그녀는 아무런 죄 없이, 아니 단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죄인이 되었다. 그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은 그녀의 살갗을 파고들어 그녀가 느끼는 자책과 죄책감의 가장 연한 부분을 헤집어 놓았다. ‘내가 더 일찍 갔더라면’, ‘그날 밤 그를 혼자 두지 않았더라면’. 그녀 스스로를 찌르던 칼날을 타인들은 더 깊숙이 밀어 넣고 있었다. 그녀는 이방인 중의 이방인, ‘재수 없는 사건’의 목격자라는 주홍 글씨를 달고 물에 떠다니는 기름 한 방울처럼 섬을 부유했다.

며칠 후, 사람들은 다이빙 보트를 타고 ‘그린 락’으로 향했다. 클로드가 생전 가장 사랑했던 다이브 사이트였다. 조류가 세고 지형이 복잡해 초보자들은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그가 콧노래를 부르며 다이버들을 난폭하게 괴롭히기로 악명이 높은 트리거피쉬를 쫓아다니던 그곳.

케빈이 천천히 보자기를 열었고, 허름한 나무 상자 안에 짙은 황록색의 클로드가 담겨 있었다. 15년 넘게 이 섬의 바다를 호령하던 사내의 무게는 고작 한 줌의 이질적인 가루가 되었다. 케빈이 바람을 등지고, 천천히 바다에 그를 뿌렸다.

영화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황록색 가루는 곧바로 물에 녹아들지 않고 수면 위에 끈적하게 머물렀다. 바다가 뱉어낸 오물처럼 누렇고 푸른 띠가 맑은 바다 위에 이질적인 얼룩을 그렸다. 그녀는 숨이 막혔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였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지워주던 그녀의 안식처였다. 그런데 이제 그곳에 클로드의 죽음이 뿌려지고 있었다. 파란 바다 위를 떠도는 저 황록색 덩어리는 그가 “나 아직 안 갔어, 이 멍청이들아”라고 질척하게 매달리는 것만 같았다.

그때였다. 기름띠처럼 번진 황록색 얼룩 위로 눈치 없는 작은 돔 떼가 몰려들었다. 녀석들은 수면을 톡톡 쪼아대며 클로드의 마지막 육신을 먹이인 양 삼켰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 생물들이, 이제 그를 뜯어먹고 있었다. 자연은 애도하지 않는다. 그저 섭취할 뿐이다. 그 처참한 광경을 보며 그녀는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그녀에겐 그 모든 장면들이 한 인간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회귀가 아니라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장소에 가장 끔찍한 기억을 덧칠하는 걸 지켜보는 것처럼 괴로웠다. 이내 조금씩 조류가 그 얼룩을 낚아채 갔고, 그는 푸른 바다의 일부로, 아니 바다를 오염시키는 슬픔으로 흩어졌다.

“So Long, and Thanks for All the Fish.”

줄리앙이 그녀 옆에서 나직하게 읊조렸다. 붉어진 눈시울과 어울리지 않는 그 건조한 문장. 하지만 그보다 더 그다운 송별사는 없었다. 그는 이제 정말, 물고기들에게로 돌아갔다.

그날 밤, 모든 것이 끝난 섬에 다시 적막이 찾아오자 비로소 그녀는 무너졌다. 발코니에 홀로 앉아 그녀는 금기처럼 여겼던 엄마의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 그 익숙한 파동이 닿는 순간, 억눌렀던 댐이 터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끄억끄억 새어 나오는 울음소리를 막지 못한 채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 손바닥 위로 눈물이 흘러넘치고 목으로 흘러 가슴에 닿았다. 심장이 겹겹이 찢어지는 것처럼 가느다랗고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졌다.

“하나야, 너 우니? 무슨 일이야?”

본능적으로 딸의 고통을 느낀 엄마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그녀는 한참을 울다 클로드의 이름을 더듬으며 겨우 뱉어냈지만, 엄마는 그런 이름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죽었어.”

마지막 세 글자가 세상에 소리가 되었다. 그제야 그녀는 클로드의 죽음이 이 세상의 공식적인 사실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곡 소리는 더 크게, 구슬프게 이어졌다.

“뭐라고? 누가 죽었어? 너, 지금 당장 돌아와! 너 지금 어디야? 당장 돌아와! 돌아와서 심리 치료 받아야 해!”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를 뚫고 나와 그녀의 좁은 발코니를 채웠다. 그 목소리에서, 그녀는 잊고 있던 서울의 냄새를 맡았다. 지하철의 퀴퀴한 먼지 냄새, 경쟁의 비린내, 그리고 지독한 애증의 김치 냄새. 그녀는 알고 있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것, 엄마에게로 돌아가는 것은 결코 구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그곳엔 그녀의 자리가 없었다. 엄마의 그 절박한 중력은 위로가 아니라 또 다른 구속이었다. 그녀는 엄마의 사랑을 신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엄마의 치유를 경험해 본 적이 없었다.

“난 괜찮아. 끊을게.”

결국 그녀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가 뭍으로 보낸, 그러나 닿지 못한 마지막 구조 신호였다.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안절부절하던 그녀는 결국 다시 다이빙 센터로 향했다. 그곳엔 그녀처럼 갈 곳 없는 이들이 모여 있었다. 케빈, 줄리앙, 안드레, 그리고 클로드를 사랑했던 섬의 몇몇 친구들. 그들은 며칠 밤낮을 그곳에서 먹고 자며 취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빈 맥주병과 담배꽁초, 그리고 클로드에게 쓴 편지들이 널려 있었다. 누군가 편지를 읽으면,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욕설을 섞어 소리를 질렀다. “이 나쁜 자식, 제멋대로인 이기적인 새끼.” 그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짐승처럼 울부짖다가, 클로드의 냉소로 가득한 시시껄렁한 농담을 흉내 내며 미친 사람들처럼 자지러지게 웃었다.

하지만 그녀의 귀에는 그 모든 소리가 뒤틀려 들렸다. 케빈의 통곡 소리, 안드레의 욕설, 줄리앙의 찢어지는 웃음소리. 그 모든 것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쇠 긁는 소리가 되었다. 그것은 위로가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들이 내뿜는 비릿하고 질척한 생명의 소음이었다. 그 소음이 그녀의 고막을 난도질했다. 그녀는 귀를 막고 싶었다. 저 소리의 세계, 삶의 세계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그녀는 며칠을 더 앓았다. 고열에 시달리며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갔다. 꿈속에서 그녀는 짙은 황록색 바다를 헤엄쳤다. 하지만 섬의 시간은 그녀의 슬픔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슬픔조차 사치였다. 먹고살기 위해, 그녀는 다시 일을 해야 했다.

스웨덴에서 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하는 한 커플 다이버를 만났다. 열대 섬의 자비 없는 햇빛을 조금만 받아도 피부가 시뻘겋게 화상 입은 듯 안쓰러울 정도로 달아올랐지만, 그들의 눈빛은 기대와 설렘으로 반짝였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죽은 물고기처럼 탁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장비를 챙겼다. 젖은 수트를 입는 감촉이 유난히 차갑게, 시체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다이버들과 함께 물속으로 들어갔다. 모든 것이 달라져 있었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바다의 고요는 이제 없었다. 물은 따뜻하지 않았다. 춥고, 어둡고, 무서웠다. 이곳은 더 이상 그녀의 안식처나 자궁이 아니었다. 이곳은 클로드의 무덤이었다. 그가 뿌려진 ‘그린 락’이 아니더라도 이 섬의 모든 바다는, 모든 물방울은 이제 그의 황록색 재로 뒤덮인 거대한 묘지였다. 그녀는 여전히 장송곡이 흐르는 가운데 무덤 속을 유영하고 있었다.

수심 30미터. 그녀는 물속에 가만히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녀가 안내하는 커플 다이버는 수중 촬영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어둡고 깊고 공허했다. 오직 그녀의 숨소리, ‘슈욱- 후우-’ 하는 기계적인 소음만이 이 무덤의 정적을 방해하고 있었다. 그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세상에서 함께 숨 쉬고, 눈을 맞추고, 오케이 사인을 보내던 그가 없다. 단 하루 차이로, 한 사람은 기이한 색의 재가 되어 사라지고, 다른 한 사람은 여전히 기계에 의존해 물속에서도 숨을 쉬고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고작 이 호흡기 하나 차이라는 것이, 이토록 허무하고 가벼운 것이라는 사실이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천천히, 호흡기를 입에서 떼지 않은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폐가 터질 듯이 공기가 가득 찼다. 이대로. 이대로 숨을 멈추고 상승한다면.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다이버라면 누구나 가장 먼저 배우는 절대적인 금기. ‘절대로 숨을 참지 말 것.’ 수심이 얕아질수록 압력은 낮아지고, 폐 속에 가득 찬 공기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폐포가 견디지 못하고 ‘펑’ 하고 터져버릴 것이다. 폐 과팽창 상해. 가장 확실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

그녀는 고개를 들어 수면을 올려다보았다. 수면은 아득하게 멀었다. 햇빛이 부서지며 수면 위에서 일렁였다. 그 빛은 잔인할 정도로 찬란했다. 이 춥고 어두운 무덤 속에서 그녀가 느끼는 공포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는 듯 저 위는 무심하고도 명랑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저 빛 너머가 ‘삶’의 세계였다. 돈을 벌어야 하고, 사람들의 시선을 견뎌야 하고, 남겨진 자의 슬픔을 감당해야 하는 소란스러운 곳. 하지만 여기, 이 깊은 무덤 속은 고요했다. 지금 폐 속에 가득 찬 이 공기를 뱉지 않고, 핀을 차고 위로 솟구치기만 하면 된다. 단 몇 초면 끝난다. 클로드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그도 이 유혹을 느꼈을까? 죽음이 이토록 가까이, 이토록 쉬운 물리 법칙으로 그녀의 몸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녀의 ‘삶’이었던 바다가 이제는 그녀에게 ‘죽음’을 속삭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 빛을, 그 탈출구를, 그 ‘뭍’을 가만히 응시했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갔다. 핀을 차고 위로 솟구치고 싶은 충동이, 사이렌의 노래처럼 그녀를 유혹했다. 폐 속의 공기가 팽창하려 꿈틀거렸다. 그녀의 생명이, 그녀의 의지 하나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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