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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이 사라져 간 그녀들에게 <위로공단>

세상의 모든 노동자 엄마의 딸들에게 바치는 헌사.

by 조하나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은 한국 다큐멘터리 역사상 가장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2015년, 영화제가 아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에서 은사자상을 수상을 통해 이 작품은 사회 고발을 넘어 하나의 '예술적 증언'으로 자리했습니다. 영화는 '한강의 기적'이라는 화려한 경제 성장 신화 뒤에 가려져 있던, 그러나 그 기적을 맨손으로 일궈낸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스크린 위에 수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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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공단>은 노동의 고통을 숭고한 아름다움으로 승화합니다. 미술 작가 출신인 임흥순 감독은 인터뷰와 자료 화면을 나열하는 전형적인 다큐멘터리 문법을 거부합니다. 대신, 노동의 현장을 시적이고 추상적인 이미지로 치환하거나, 인터뷰이의 침묵과 표정을 롱테이크로 응시하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러한 영상미는 장르를 넘어 인디밴드 쏜애플과의 협업을 통해 '아지랑이'의 뮤직비디오 장면들로 구성되었습니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생의 불안을 노래한 몽환적인 사운드 위로 공중에 부유하거나 눈을 가린 채 서 있는 노동자들의 초현실적인 이미지가 겹쳐집니다. 이는 노동의 고단함의 기록을 뛰어넘어 마치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서글프고도 아름다운 예술적 체험으로 확장됩니다.






영화가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노동 착취의 연대기’입니다. 1970~80년대 구로공단에서 미싱을 돌리고 가발을 만들던 ‘여공’들의 이야기는, 21세기의 마트 계산원, 다산콜센터 상담원, 그리고 승무원들의 ‘감정 노동’으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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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과거의 육체노동이 현재의 감정노동으로 형태만 바뀌었을 뿐 여성을 향한 저임금, 고용 불안, 그리고 인격 모독의 구조는 여전히 견고함을 아프게 꼬집습니다. 더 나아가 카메라는 캄보디아의 봉제 공장으로 시선을 확장하며, 자본주의의 착취 사슬이 국경을 넘어 어떻게 반복되고 있는지를 웅변합니다.


하지만 <위로공단>은 분노만을 선동하지 않습니다. 제목인 '위로(慰勞)'가 함의하듯 이 영화는 이름 없이 사라져 간, 혹은 지금도 어딘가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을 ‘그녀들’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자 헌사입니다. 감독은 그들의 희생을 ‘국가 발전의 밑거름’이라는 거창한 말로 포장하는 대신 한 인간으로서 겪어야 했던 구체적인 아픔과 꿈을 들어주는 ‘경청’의 자세를 취합니다.





<위로공단>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풍요로운 일상이 과연 누구의 땀과 눈물 위에 서 있는지를. 쏜애플의 음악처럼 몽환적이지만 뼈아픈 현실을, 예술이라는 그릇에 담아 존엄하게 복원해 낸 이 작품은 시대를 관통하여 우리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의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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