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라는 왕관의 무게

'경계인'의 시선으로 본 '추궁'의 한국 사회

by 조하나


크랩 멘탈리티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K'라는 수식어를 달고 국가를 대표하게 된 인물들에게 쏟아지는 대중의 시선은 기이할 정도로 이중적이다. 세계 무대에서 정상을 차지했을 때는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환호하며 자아를 강하게 의탁하지만, 그들이 아주 작은 실수라도 하거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일 때는 가차 없이 비난의 화살을 쏟아낸다. 이러한 현상의 기저에는 성공한 자에게 도덕적 완벽성을 요구하는 유교적 엄숙주의가 깔려 있다고들 말하지만, 실상 그 밑바닥에서 들끓고 있는 것은 훨씬 더 원초적인 본능이자 감정이다. 바로 '크랩 멘탈리티(Crab Mentality)'다.


뚜껑이 열린 바구니 안에 갇힌 게들은 누군가 밖으로 기어 나가려 할 때마다 서로의 발목을 집게로 물어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바구니 속에서 무한 경쟁과 억압, 타인의 시선이라는 숨 막히는 스트레스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군가가 화려한 타이틀을 달고 그 바구니 밖으로 탈출하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주로 호주나 뉴질랜드, 영국 등 서구권에서 널리 쓰이는 개념인 '키 큰 양귀비 증후군'은 들판에서 유독 높이 자라난 양귀비꽃의 목을 쳐서 다른 작물들과 높이를 똑같이 맞춘다는 일화에서 유래했다. 개척 역사와 맞물려 전통적으로 평등주의를 중시하는 서구 문화권에서 눈에 띄는 성취를 이룬 개인이 특권 의식을 가지거나 우월감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는 현상이다. 누군가 성공을 빌미로 조금이라도 오만하게 굴면 대중이 가차 없이 조롱하고 비판하여 다시 모두와 똑같은 위치로 끌어내리려는 일종의 사회적 견제 장치인 셈이다.


서구권의 '키 큰 양귀비 증후군'이 평등의 가치를 깨는 오만함에 대한 의식적인 견제라면, 한국의 현상은 처절한 생존 스트레스의 투사다. 한국 사회에서 쏟아지는 비난은 '너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일 뿐이니 잘난 척하지 마라'는 수평적인 질서 유지가 아니다. 오히려 무한 경쟁이라는 닫힌 바구니 속에서 '내가 이렇게 억압받고 불행한데, 네가 감히 이 진흙탕을 벗어나 화려하게 비상해?'라는 억눌린 질투와 원한에 훨씬 더 가깝다. '나도 이렇게 억압받고 힘든데, 대중의 관심으로 부와 명성을 얻은 네가 감히 완벽하지 않아?' 라는 날 선 분노는 결국 상대방의 흠집을 기어이 찾아내어 진흙탕으로 끌어내려야만 직성이 풀리는 기괴한 카르타시스로 이어진다.


세계 정상의 위치에 선 한국인을 보며 한국 같은 나라가 절대 그 정도가 될 리 없다고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지독한 불신 역시, 타인의 발목을 잡아끌어 내리는 것으로 위안을 얻으려는 자조적인 방어 기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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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관자의 비겁한 보수주의


이러한 깎아내리기와 크랩 멘탈리티는 대중의 심리를 넘어 언론과 사회 시스템 전반에 깊게 뿌리내려 있다. 최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BTS x 넷플릭스 광화문 광장 컴백 공연을 대하는 언론의 태도가 그 적나라한 예다. 이태원 10.29 참사라는 뼈아픈 국가적 트라우마를 안고 있는 상황에서, 무려 전 세계 1,840만 명이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초대형 행사를 단 한 명의 부상자 없이 무사히 치러냈다는 것은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을 감수하고서라도 칭찬받아 마땅한 위기 관리 시스템의 쾌거다.


당초 20만 명 이상이 올 것이라 대비한 행사에 예측치를 훨씬 밑도는 인원이 모였다며, 정부와 서울시가 국민의 세금을 낭비해 과잉 대응을 했다고 맹비난하는 언론들의 행태는 아연실색할 정도다. 묻고 싶다. 아무도 안 죽었다고, 아무도 안 다쳤다고 실망이라도 했다는 것인가? 정작 이태원 참사로 수많은 생명이 스러져갈 때는 철저하게 침묵하고 방관하던 언론들이,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치러낸 안전 비용을 두고 이제 와서 혈세 낭비라며 목청을 높이는 꼴은 끔찍한 위선이다.


한국 언론들이 진정으로 이 행사를 날카롭게 비판하고, '다음'을 위한 건설적이고 비판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면 나는 그들의 보도에 박수를 보냈을 것이다. 적어도 언론이라면, 언론인이라면, 지난 10년 동안 광화문에서 열렸던 수많은 무료 공연들의 예산 통계나 관객 수 추이를 치밀하게 분석하고 객관적인 지표를 제시했어야 한다.


실제로 통신 기지국 신호를 기반으로 현장 인파를 정밀 분석하되 외국인 로밍폰 신호 등은 배제한 서울시의 '4만 8,000명'이라는 보수적인 집계와, 현장 누적 체류 인원 및 전 세계에서 몰려든 해외 팬들의 로밍 신호까지 모두 합산해 '10만 4,000명'이라는 결과를 산출한 하이브의 데이터는 두 기관이 서 있는 위치와 목적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행정적 통제력과 시민의 안전 관리가 최우선인 서울시와, 행사의 글로벌 파급력을 증명해야 하는 하이브의 시선이 맞부딪힌 결과다.


웹툰 <송곳>의 명대사처럼 "선 곳이 다르면 풍경이 달라진다"는 말은 여기서도 완벽하게 유효하다. 서울시와 하이브, 그리고 언론사들은 각자의 밥그릇과 이해관계, 혹은 수년 전부터 이어져 온 감정적 앙금에 따라 자신들에게 유리한 데이터를 취사선택하며 흠집 내기에 몰두했다.


일부 언론은 "하이브와 넷플릭스 배 불리는 일에 시민들만 희생됐다"며 경제적 효과가 미미했다는 트집 잡기에 급급했다. 나는 그들의 보도를 보며 '그렇게 배가 아프면 너희가 먼저 이런 공연 콘텐츠를 기획하지 그랬냐?'고 생각했다. 그 어떤 새로운 시도도, 그에 따른 리스크도 감당할 자신이 없으면서 남이 하는 일에 늘 훈수만 두는 한국식 방관자의 비겁함만 드러낼뿐이다.


아이돌이 악령과 싸운다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라는 기획이 넷플릭스가 아닌 한국의 투자 심사역들 손에 쥐어졌다면 어땠을까. 온갖 걱정과 눈치 보기, 책임 소재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의사 결정의 문턱조차 넘지 못하고 '킬' 당했을 것이 자명하다. 결과를 보고 나서야 모두가 열광하는 팬으로 돌변하는 모습은, 리스크를 짊어지고 과감한 시도를 하기보다 보수주의와 안전제일주의 뒤에 숨어 남을 평가하는 데만 익숙해진 우리 사회의 씁쓸한 자화상이다.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용인하는 넷플릭스의 "Why Not?(왜 안 돼?)" 마인드는 한국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뒷짐 진 선비들의 냉소주의' 속에서는 결코 피어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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