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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원입니다 Nov 17. 2018

꾸준한 사람들이 모두 가진 ‘이것’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일하기 싫은 날 보는 책 

- 꾸준한 사람들이 모두 가진 '이것'



‘로또 1등에 당첨된다면?’으로 시작되는 상상은 누구나 한번쯤 해봤을 거예요. 특히나 오늘처럼 일하기 싫은 날이라면 더더욱 로또의 꿈이 간절해집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로또 당첨자 가운데 70%가 당첨금을 받은 후에도 ‘기존 직업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혔대요. 그 이유는 명료해요. 1등의 평균 당첨금이 28억인데, 거기에 세금 33%를 제하면 실제 수령액이 약 19억인 정도래요. 노후까지 생각한다면 일을 그만 둘 정도로 크지 않기 때문이라네요. 물론 10명 중 2-3명 정도는 ‘당장 일을 그만 두겠다’는 포부를 밝혔다고 합니다. 저는 어느 쪽이냐고요? 앞서 제 이야기를 쭉 함께 해온 당신이라면 알겠지만, 제가 소심한 구석이 많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두 말 없이 일을 계속 하겠죠. 하물며 로또에 당첨 되어도 일을 계속 해야 하는 입장이다 보니, ‘꾸준히’ 자기 일을 해내는 사람들에 대한 제 관심은 커질 수밖에 없었죠.            




그러던 어느 봄날, 어느 골목길을 지나가다 라벤더 향을 맡았어요. 운명적인 기분이 들었죠. 그 날은 하늘이 맑았고 공기가 깨끗했어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반가워서 눈이 시렸고 계속해서 입술이 실룩거리는 거예요. 라벤더 향 하나가 마치 레드 썬 하듯이 최면을 걸어준 겁니다. 그 순간 내면의 울림에 집중하니 마음이 정갈하게 다듬어지는 듯 했어요. 이후로 저는 파우치에 라벤더원액을 넣어 다녔어요. 그리고 나에게 그런 효능이 있는 이것들을 발굴하고 채집하는 노력을 해왔어요. 일하는 어른으로 살면서 정해진 루틴을 따라가는 것이 버거울때마다 이것들에게 기대어 살았죠. 그렇게 짧게 기대고 나면, 나머지 시간은 온전히 내 뚝심으로 변화시킬 힘이 생겼어요. 그 결과로 저도 편안하게 꾸준함을 유지하는 사람이 되었답니다.     


            

ⓒ 일러스트 김유은



꾸준하지 못한 당신을 탓하고 있다면 잠시 기분의 안녕을 묻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아주 조그만 시간이어도 좋아요. 그때 반짝하고 이것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릅니다. 그 아이디어와 함께 당신의 이것들을 찾아 떠나세요. 이것들은 당신에게 잠깐 벗어나도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줄 겁니다. 그러면 오랫동안 방전되지 않고 나아갈 수 있어요. 더불어 이것들만 있으면 난 끝까지 해내는 사람이라는 주술적인 믿음도 생기는데, 그 믿음이 주는 용기와 낭만과 희열을 꼭 느껴보시길 바래요.              


   

본문에서 전하지 못한 저의 이것들을 짧게 그리는 시간을 끝으로, 저는 이만 인사드릴게요. 제 이야기와 끝까지 함께 해준 당신께 다정함을 느낍니다. 

 - 2019년11월. 이지원 드림 




2012.11.10. AM 06:25

 게으른 아침 체조         


ⓒ 일러스트 김유은

  

이 시각 나는 충분히 게으르고 싶어 한다. 잠에서 깨면 정확하게 눈꺼풀 근육만 끔뻑거리는 상태로 오로지 한 가지 문제에 골몰한다. ‘이불 밖으로 나가기에 가장 좋은 타이밍이 언제지? 지금? 아니야. 나른한 이 기분이 너무 좋아. 이대로 3분만. 5분만. 아니야. 조금 더 지체되면 바나나를 허겁지겁 먹게 될 거야. 그건 싫지? 그럼 지금이 딱 좋아. 일어나.’ 그래 놓고 또다시 요가매트 위에 눕는다. 모닝요가가 부르지만 실제로는 약간 난해한 기체조를 하면서 몸을 깨우는데 10분 이상을 쓴다. 이때 소비되는 시간은 출근 준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제 준비시간보다 20분 일찍 알람을 맞춰야 하지만, 내게는 무척 소중한 시간이다. 그렇게 하루 시작과 동시에 충분한 게으름을 피우고 나면 살짝 열정의 꽃이 핀다. 

그럼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 볼까나?                   




2012.11.15. AM 08:37

 디올 레드 립스틱           


ⓒ 일러스트 김유은


아쉬운 기분이 극에 달했다. 8시 50분부터는 팀원들이 하나둘씩 도착할 것이다. 그때부터 좀 전과 같은 여유는 사치다. 매 시분마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으는 기분으로 일해야 한다(창업은 극한 직업이다). ‘오늘은 너에게 매우 중요한 여정이야. 너는 해낼 수 있어. 너는 꼭 그럴 거야.’ 파우치에서 ‘디올 루즈 848’을 꺼내 들고 거울 앞에 비장하게 섰다. 나의 립 사전에 그라데이션은 없다. 단번에 꾹 눌러 입술 선을 따라 그어버렸다. 눈빛은 부드럽게(아이메이크업은 한 듯 안 한 듯) 말투는 단단하게(립 메이크업은 강렬하게) 그것은 하나의 각오였다.                     



  책상 앞에 앉아서 가장 먼저 하는 업무는 새로운 회원 리스트를 확인하고, 그 회원들이 남긴 문장을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다. 목소리에 묻어나는 말투로 다정한 사람인지, 시크한 사람인지, 묵묵한 사람인지, 활발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가 보게 될 것을 알고 쓴 문장 속에도 그 사람의 성향이 느껴진다. 문장 가득 사랑스러움을 머금은 회원도 있고, 아직은 너에게 나를 보여도 될지 모르겠다는 의심이 엿보이는 회원도 있고, “나는 이러이러하니 이런 부분이 필요해요”하며 똑 부러진 회원도 있다. 그런 다양함 속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았는데, 그것은 간절함이었다. 원하는 음식을 원하는 만큼만 먹는 자유를 누리고 싶은 간절함이 모두에게 빠짐없이 느껴졌다.         




그 마음을 진하게 전달받고 나면 깊은 한숨이 났다. 무겁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서. 그럴 땐 손거울을 꺼내어 립스틱을 빨갛게 고쳐 발랐다. 

할 수 있어」           




2012.11.23. PM 01:23

 카페 라떼 한 잔          


ⓒ 일러스트 김유은


 

창밖으로 계란장수의 녹음 음성이 들렸다. 금요일 점심시간을 알리는 알람 같은 소리였다. “맛있게 드세요.”간단히 인사를 남기고 혼자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금요일 저녁식사는 과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점심식사는 건너뛰는 패턴을 지켰다. 대신 맛이 기가 막힌 커피 트럭에 갔다. 인근 대학교 정문까지 15분 정도 빠르게 걷는 동안 앞사람 따라잡기 놀이를 했다. 창업 이후에 내 생각대로 되는 일보다 그렇지 않은 일이 많은 나날이었기에 내 맘대로 사람들을 따라잡으며 몰래 쾌감을 즐겼다. 적게는 열 명, 많게는 서른 명의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나에게 졌다. 그리고 마지막 정거장, 알록달록한 커피 트럭 천막 안으로 승리자의 얼굴을 들이밀며 “라떼 한 잔이요!”했다. 그렇게 금요일 점심시간에 하얀 서리 입김으로 호호 불며 먹는 라떼 한 잔이 밥보다 빵보다 떡보다 맛있었다.




거만하게도, 그동안 내 인생에 실패란 없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다시 돌아보니 실패하지 않은 것은 딱 가능한 만큼의 목표를 세워왔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패배감’이나 ‘거절감’의 기분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딱 한 가지 내 마음 같지 않았던 문제가 다이어트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으로 창업했다. 열망의 온도만큼 뜨겁게 데었다. 넘어지고 부서지고 거절당할 때마다, 아프고 괴롭고 창피했다. 그 실패의 기록들은 나의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특히 혼자 있을 때 적나라하게 재생되었다. 어쩜 그리 디테일한지 다리가 17개씩 달린 벌레를 본 것처럼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그때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이기는 기분’이었다. 일주일의 끝. 금요일 오후에는 그 기분을 충전을 하지 않으면 못 견딜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따라잡았다. 그 순간만큼은 앞만 보고 빠르게 걸었다. 앞으로- 앞으로- 껑충껑충 나아갈수록 심장이 콩닥거렸다. 이때다 하며 카페인에 약한 내 몸에게 커피 한 모금을 넣어주면, 이번엔 심장이 쫄깃했다. 

살아 있네살아 있어!




2013.03.25. PM 07:50

 꼬치구이와 맥주 한 잔            


ⓒ 일러스트 김유은


초봄. 말랑하고 나른한 기분이 선물처럼 도착했다. 설렘이라는 감정을 날씨만으로 누릴 수 있는 아주 멋진 계절이다. 그즈음부터 업무체계가 잡힌 덕분에 일과시간이 톱니바퀴처럼 착착착 지나갔다. 아침식사, 콘텐츠 회의, 글쓰기, 점심식사(건너뛰는 날도 종종), 전화업무, 회원 DB정리, 개발회의, 녹음실 일정, 회의록 공유 – 계획한 만큼 꼬박꼬박 해내는 팀원들에게 감동받던 나날들이었다. 어떤 날에는 집중하는 그들을 가만가만히 바라보다가 10분이 훌쩍 흘러버리는 때도 있었다. 그렇게 날씨가, 사무실 분위기가, 계속 충전해준 덕분에 에너지가 남아돌아 저녁시간에도 팔팔했다. 뭘 먹으면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날까, 이런 유치한 생각을 하면서 골목골목을 뒤집고 다녔다. 매콤한 비빔국수를 먹을까. 노릇한 생선구이 정식을 먹을까. 지글지글하게 튀겨낸 돈카츠 정식을 먹을까. 식당 간판과 내부를 살피며 발랄한 걸음을 내딛고 다녔다.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꽤나 진지하게 다음과 같은 의식을 흐름을 타고 있었다.          



- 앞으로 10분 안에 메뉴 선정을 마쳐야 한다.

- 왜냐하면 늦어도 8시 30분에는 저녁식사를 끝내야 되기 때문이다.

- 그건 또 왜냐하면 식사 후 최소 4시간이 지나야 잠자리에 들 수 있기 때문이며

- 그래야 8시간 정도 충분히 잠을 자고

- 내일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미팅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어떤 행복한 향기 앞에서 발길이 멈춰졌다. 그것은 활활 타오르는 숯불화로 위에서 몸을 베베 꼬며 타들어가는 꼬치 구이었다. 저긴 술집인데 혼자 들어가도 괜찮을까? 잠시 망설였다. 슬쩍 안을 훔쳐봤다. 다들 삼삼오오였다. 용기란 이럴 때 필요한 것이라고 속엣말 하며 덜컥 출입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그 순간 나는 무거운 입을 떼지 못하고 남의 영업장에 출입문을 막고서 똥 마려운 강아지 행세를 하고 섰다(왜 당당하게 혼자라고 말을 못 해).                      




결국 4인용 테이블 한 자리를 떡하니 차지하고 앉았다. 이 테이블은 어차피 비어 있었고, 나는 어차피 30분 안에 식사를 마칠 테니까, 그 사이에 손님만 들어오지 않는다면 괜찮은 거 아니냐고, 또 한 번 속엣말로 민망함을 달랬다. 곧이어 불 맛이 나는 꼬치구이를 한입 베어 물었을 때는 조금 전 뻔뻔한 내가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정말 맛있다. 참 잘했다. 하면서 꼬치들을 꼭꼭 야무지게 씹었다. 그리고 목소리를 크게 높였다. “생맥주 한 잔 주세요.” 봄밤. 벚꽃이 예뻤다. 기분이 좋았다.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                  




                                                                         -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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