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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un Jul 17. 2017

39.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법

난 나빠, 그러나 그게 나쁜 건 아니야

 혹시 <주먹왕 랄프>라는 애니메이션 보셨어요? <주먹왕 랄프>는 몇 안 되는 저의 '인생 영화' 중 하나예요. 저는 영화를 볼 때 숨도 못 쉴 정도의 무언가가 가슴 한가운데를 '푹'하고 관통할 때가 있는데, 이게 저의 '인생 영화'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랍니다. 물론 <주먹왕 랄프>에도 그런 장면이 있었죠! 혹 영화를 보실 분들을 위해 장면 설명은 생략하고 그 장면의 대사만 인용할게요.

 "I'm bad, and that's good. I will never be good, and that's not bad."

 난 나빠. 하지만 괜찮아. 절대 착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야.

 이 대사를 듣는 순간, 숨도 못 쉴 정도의 벅찬 무언가가 가슴 한가운데를 '푸욱'하고 관통했어요. 완전 저한테 하는 얘기 같았거든요.


 우리가 흔히 아는 유명한 악역에 누가 있을까요? 신데렐라의 계모와 언니들, 다크 나이트의 조커, 슈퍼마리오의 쿠퍼, 라이언킹의 스카 정도가 떠오르네요.

 랄프도 '다 고쳐 펠릭스'라는 게임 속의 악역입니다. 주인공은 물론 '펠릭스'죠.(게임 제목을 봐요.) 랄프가 빌딩 유리창을 깨 부수면 정의의 용사 '펠릭스'가 나타나서 부서진 창문을 전부 수리하는 게임인데, 랄프가 유리창을 깨 부수는 이유는 딱히 없어요. 뭐, 굳이 따지자면 랄프는 악역이니까?

 이 작품은 거기서부터 시작을 합니다. 랄프는 왜 창문을 부숴야만 할까? 악역이라서? 그렇다면 왜 랄프는 악역이 된 걸까? 랄프도 펠릭스처럼 창문을 고쳐서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지는 않을까?

 영화는 악역이 가진 선함, 그리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욕망을 조명합니다. 그럼으로써 사실 악역도 주인공과 같은 똑같은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해요. 주목받고, 사랑받고 싶은, 우리와 같은 그저 똑같은 사람 말이에요.

 결국 <주먹왕 랄프>의 리치 무어 감독은 랄프를 통해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우리에겐 잘못이 없다. 어떤 모습으로 태어났더라도, 심지어 그 모습이 악역이더라도, 그건 나쁜 게 아니니까.

 그래서 저 대사를 듣는 순간 심장이 쿵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어요. 여태껏 전 저의 부족한, 혹은 나쁜 모습은 나쁜 것이라고 여겼거든요. 그렇지 않다고, 내겐 아무 잘못이 없다고 얘기해주는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룩 흘렀던 것도 같아요.


 세상이 되게 불완전하다는 말을 참 많이도 하죠. 세상도, 사람도, 사실 그게 너무 당연한 건데, 가끔 우린 필요 이상으로 완벽함을 쫓고 있진 않나 싶어요.

 제가 몇 년 전에 오스트리아의 그문덴에 갔을 때 일이에요. 그문덴은 굉장히 큰 호수를 낀 아름다운 마을인데, 그 아름다움에 걸맞게 호수 위로 예쁜 흰 백조들이 점점이 떠다니더라고요. 감탄을 금치 못하며 호수 근처를 돌아다녔어요. 그러다 꽤나 충격적인 장면을 하나 목격합니다. 백조 몇 마리가 호수에 얼굴을 처박은 채 엉덩이만 내놓고 있던 겁니다. 처음엔 제가 보고 있는 게 뭔지 조차 몰랐어요. 흰 비닐봉지인가? 스티로폼인가?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그 흰 덩어리가 뒤집히면서 백조 얼굴이 수면 위로 빼꼼 드러나는 것 아니겠어요? 우아함의 상징이라 생각해왔던 백조가 물속에 얼굴을 처박은 채 엉덩이만 드러낸 꼴이라니. 정말 어이가 없어 한참을 웃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백조는 우아하길 바라지 않았을 수도 있어.'

 백조에게서 우아함이나 아름다움을 기대했던 건 사실 저였다는 생각을 한 거죠. 백조 저 자신이 우아함 따위에 관심이나 있었겠어요? 그렇지 않으면 제 앞에서 몸 뒤집고 엉덩일 보여줄 리가 없죠. 아름답길 기대했던 것도, 그렇지 못해 실망했던 것도 백조가 아닌 나였구나, 싶더라고요.


 가만 보면 우린 백조에게 기대하듯 자신에게도 완벽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부족한 내 모습을 도저히 참지 못하는 거죠.

 이색적이었던 백조의 그 행동은 그간 발견하지 못한 백조의 진짜 모습이었는지 모릅니다. 아니, 진짜, 가짜 모습이 어딨겠어요. 그저 모든 모습이 백조일 뿐인데. 우리가 백조에게 완벽한 우아함을 기대했던 것뿐인 거죠.

 비단 백조뿐만인가요? 제 인스타그램만 봐도 잘 나온, 잘 먹는, 잘 사는 사진뿐이에요. 제 인생에서 가장 '괜찮은 부분'만 오려낸 꼴라쥬인 거죠. 그 속의 제 모습이 제가 아닌 건 아녜요. 다만, 부족하고 나쁜 부분은 완벽하게 제거한, 비유하자면 a컷만 모아 놓은 화보집이랄까. b컷, c컷도 분명 제 모습이지만 마치 내 인생엔 a컷만 있는 것 마냥 완벽하게 장식해놓는 겁니다.

 얼마 전에 컴백한 가수 이효리 씨도 본인 자작곡에 그런 가사를 썼죠. 화려하게 물들인 머리칼, 컬러렌즈 뒤에 숨어 흔들렸던 자신은 내가 아니고픈 나였다고. 우리가 쫓는 완벽이란 게 그런 건가요? 내가 아닌 내 모습?

 결국 나는, 부족한 모습까지 전부 포함해야 비로소 진짜 나라고 생각해요. 물론 싫을 수도 있어요. 아니, 싫어요. 저는 삐져나온 제 옆구리살이나 심하게 낯을 가리는 성격, 땀이 줄줄 흐르는 다한증을 가진 손발이 너무너무 너무 싫어요. 그러나 어쩌겠어요. 그것도 제 모습인걸요.

 어차피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거, 너무 잘 알면서도 우린 계속해서 스스로가 완벽하길 기대합니다. 그러나 적어도 한 명은 진짜 사실을 알고 있잖아요? 나 자신이요. 나는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아요. 그리고 그것은 영원히 바꿀 수 없을 수도 있어요. 랄프의 대사처럼요.

 바꿀 수 없다면? 사랑해야죠, 뭐 어쩌겠어요. 사랑한다는 것, 그것만이 혐오를 이길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옆에 있는 애인만 '콩깍지' 쓰고 바라보지 말고 저 자신을 볼 때도 '콩깍지'좀 써주자는 겁니다. 부족한 면도, 나쁜 면도, 사랑을 하면, 사랑하니까 괜찮잖아요. 그게 사랑이잖아요?


 그래서 말이죠, 우리 모두 랄프의 대사를 한 번씩은 읊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I'm bad, and that's good. I will never be good, and that's not bad."

 bad에는 '나쁘다' 뿐만이 아니라, '부족하다', '서툴다'는 의미도 담겨있다고 해요. 그렇다면 랄프의 대사를 이렇게 할 수도 있어요.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그래도 괜찮아. 절대 완벽해질 수는 없겠지만, 그게 나쁜 건 아니니까.

 부족한 건 나쁜 게 아녜요. 우린 모두 서툴고 부족한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조금 더 솔직해지고, 조금 더 당당해져도 괜찮아요.

 솔직히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딨어요? 우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 제 인스타그램 같은 사람들일 거예요. 인생에 a컷만 주르륵 나열해놓은. 그러니까 우리, 남과 나를 비교하지 말아요. SNS 보고 있자면 나 빼고 새삼 다 행복하고 완벽해 보이죠? 그거 다 조작이에요. 그 사람들이라고 부족한 면이 없겠어요? 하다 못해 궁둥이에 엄청 큰 점이라도 있을 거라구요.

 저 역시 아직까진 남들에게 b, c컷을 드러내는 일이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러고 싶어요. 그리고 그럴 거예요.


 나로 사는 건 어렵지 않아요. 보여주고 싶은 면만 보여주며 살아도, 솔직한 감정을 숨긴 채 억지 표정을 지어 보여도 사람들은 그게 진짜 내 모습인 줄 아니까요. 하지만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는 건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어떤 불이익이 생길까 두렵잖아요.

 그럼에도 결국 나는 나예요. 남들이 어떻게 보든 어때요. 이게 진짜 내 모습인걸요. 그러니 조금은 예쁘게 봐줄 수 있지 않을까요? 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라는 시도 있잖아요. 나의 부족한 면, 나쁜 면도 자세히 보다 보면 어딘가 귀여운 구석이 분명 있을 거예요. 분명히요. 아마 그런 게 사랑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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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instagram.com/bpmb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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