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느 보통날의 일기

by Pearl K

평소와 다름없는 보통날이었다.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도착할 때쯤 남편이 또 야근을 하게 되었다며 저녁은 먹고 들어온다고 연락이 왔다. 최소한 자정이 넘어야 도착하게 될 것 같다고. 혼자서 간단한 저녁을 차려 먹고 강아지와 산책도 하고 밀린 집안일도 끝낸 후 한숨 돌리는 중에, 예상보다 한 시간쯤 빨리 도착한다는 남편의 연락이 왔다. 이상하게도 그의 문자는 평소와는 달리 여기저기 이가 빠져 있었다.


문을 열어 맞이하자 그는 무너져 내릴 듯이 집안으로 들어와 ‘너머 힘드러’하고 그대로 거실바닥에 드러누웠다. 평소와는 표정도 발음도 너무 달랐다. 물론 지치고 힘든 날들이야 언제나 있지만 유난히 정신이 없고, 불안해 보였다. 한동안 숨을 고르던 그가 떨리는 입술로 말했다.


“나 바름이 이샹하지 아나?”

“응, 평소보다 입이 풀려있는 느낌이야.”

“오른팔이 자꼬 무겁고 힘이 빠지넌 느낌이야.”

“오른팔 어디? 주물러줄까?”

“내가 좀 차자봔는데 이거 뇌졸중 전조증상이래. 너무 무서워.”


나 역시 피곤해서 눈을 감고 듣다가 깜짝 놀라 챗GPT 검색을 했다. 뇌졸중이 의심될 때 FAST 체크 방법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F(Face) 웃을 때 얼굴이 비대칭이거나 한쪽 입꼬리가 내려가나요?

A(Arms) 두 팔을 들려올렸을 때 한쪽 팔이 떨어지거나 잘 안 올라가나요?

S(Speech) 말이 어눌하거나 발음이 이상한가요

T(Time) 세 증상 중한 가지라도 해당된다면 즉시 119를 부르거나 응급실로 가야 합니다.


--------------------------------------------------------------


세 가지 테스트를 해보니 다행히도 말이 어눌한 것 외에는 괜찮았다. 그래도 안 되겠다고, 지금 당장 병원에 가야 한다고 했는데 버스에서 에어컨을 너무 많이 쐬었거나 찬 음료를 많이 먹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기다려 보자는 거다. 증상이 조금 완화되는 것처럼 느껴져서 새벽 3시 반까지 기다리다가 드디어 남편이 잠든 것 같아서, 나도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었는데 새벽에도 여전히 상태가 안 좋았다. 기다리지 말걸, 처음에 증상을 인지했을 때 병원으로 바로 갈 걸 그랬다.


다행히 집 근처에 뇌신경외과가 있는 종합병원이 있어서 부랴부랴 준비해서 응급실로 바로 내원했다. 어떤 증상으로 내원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순간 접수처와 문진담당자의 얼굴이 긴장감으로 변해가는 것이 보였다. 예전에 나도 다른 일로 응급실에 들렀던 적이 몇 번 있었지만, 이 정도로 긴장하고 서두르는 것은 본 적이 없다. 나도 따라서 마음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응급실로 들어가 CT를 찍고 MRI를 찍고 한 시간도 못 되어 금세 병명이 나왔다.


뇌의 왼쪽 기저핵 부위에 자그마하게 뇌경색이 발생했다고 했다. 일단은 소혈관만 막힌 것인지 아니면 심장에 인지하지 못한 문제가 있는 것인지 입원한 후에 뇌졸중 집중 치료실에서 검사를 통해 파악하기로 했다. 며칠 동안 수면 부족에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장기적인 운동부족, 평소에도 높은 수준이던 혈압과 혈당 등이 다 원인이 될 수가 있다고 검색내용에 적혀있었다.


입원 당시, 어젯밤 역시 수면부족에 뇌졸중 증세로 인한 걱정까지 더해진 남편의 혈압은 230이나 되었다. 혈압이 너무도 높아 심장은 계속 두근대고 진정이 잘 안 되니 각성되어 수면을 취할 수조차 없었다. 급히 혈압강하제를 투약하고 실시간 혈압체크가 시작되었다. 관리를 통해 제2차, 제3차의 뇌경색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긴급한 치료였다. 당사자가 너무도 큰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고 있어서 나까지 동동거릴 수가 없었다. 평소 극 F인 나지만 지금은 대문자 T가 되어야만 했다.


응급실 의사 선생님과 입원실 담당 간호사 선생님, 영상의학과 과장인 친구의 도움을 받아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우선순위였다. 또 시부모님과 아가씨에게 연락하고, 섬기는 교회와 몇 명의 중보기도자들, 지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이제 고작 이틀이 지났을 뿐인데 수십 일이 흘러버린 것처럼 시간 감각이나 배고픔도 사라지고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내가 지켜내야 할 사람만 더욱 선명해졌다.


근무지에 사정을 말해 두었지만 혼자 운영해야 하는 행사가 있어 오후에 잠깐 출근을 해야 했다. 부랴부랴 달려오신 시부모님께 남편을 맡기고 무슨 정신으로 운전을 한 건지도 모르게 행사를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는 급히 입원하느라 미처 못 챙긴 짐들을 이것저것 챙겨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혼자 있을 때는 자꾸 눈물이 났지만, 병원에 들어가기 전 다시 씩씩한 얼굴이 되기로 했다.


천만 다행히도 골든타임을 넘기지 않았고, 혈압강하제가 잘 들어서 입원 첫날밤에는 120까지 혈압이 떨어졌고, 어눌했던 말투와 괴로웠던 표정도 한결 편안해졌다. 팔이 무겁게 느껴지는 증상도 호전되어 덕분에 부족했던 수면을 보충하고 쉴 수 있었다. 앞으로도 며칠간은 다양한 검사를 진행하고, 약을 챙기고, 혈압과 혈당을 체크해야 해서 당분간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할 것 같다.


출근해야 하는 날 대신해서 시아버님이 퇴원 때까지 병원 상주 보호자로 계셔주시기로 했다. 오랜만에 아들과 아버지가 오붓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는지, 아침에 병원에 가 보니 남편의 표정도 한결 더 편안해졌다. 나도 면회시간에 맞추어 병원에 있다가 잠시 필요한 것들을 챙기러 왔는데, 이틀 치의 피로가 이제야 와르르 몰려오는 것 같다.


증세를 인지할 수 있어서 더 악화되기 전에 병원에 가서 다행이고, 나이가 젊어 큰 무리 없이 어눌했던 발음이나 힘이 빠졌던 오른팔이 정상범위로 돌아왔으니 감사하다. 주변에 도움을 청하고 충분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지인이 있었던 것도 너무도 고마운 일이다. 또 여기저기서 기도해 주신 분들 덕분에 불안함을 빨리 떨칠 수 있었다.


이번 기회에 정말 건강을 신경 써서 돌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언제나 평범했던 보통의 하루가 갑작스럽게 깊은 절벽처럼 느껴지는 하루를 보내고 나니, 일상의 평범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며칠 간의 병원생활로 무사히 회복되면, 다시 평범한 일상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게 힘내볼 생각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