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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제대로 수업하고 싶다

by Pearl K

사서교사의 수업 준비 방식은 다른 교과 교사들과는 조금 다르다. 국가 수준의 학교급별 교육과정이나 검·인정 교과서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오히려 "정해진 틀이 없으니 자유롭게 어떤 주제든 수업할 수 있어 좋지 않냐"는 반응이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결국 사서교사의 수업은 개인의 역량에 지나치게 의존하게 되며,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같다.


처음 사서교사가 되어 수업을 맡았을 때는 준비된 자료가 거의 없어 어디서부터 무엇을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고 괴로웠다. 주어진 시간은 짧은데, 그 안에 어떤 내용을 준비해야 할지, 수업 주제는 어떻게 정할지 등 가장 기초적인 부분부터 하나하나 기반을 쌓아야 했다. 시간이 부족한 상황에서 돌을 하나씩 쌓듯 준비하다 보니 수업을 완성하지 못하고 어설프게 끝나버릴까 봐 걱정도 컸다.


어느 정도 방향이 잡히면 관련 주제의 도서들을 찾아 목차를 일일이 읽고, 그중 수업 의도에 부합하는 내용을 선별했다. 이후 책의 내용을 발췌하여 핵심만 취하고 나머지는 과감히 제외하며 큰 틀을 구성해 나갔다. 내 경우, 실제 수업에 사용할 PPT 자료를 제작하면서 전체 구성이 정리되는 방식으로 준비했다.


사서교사는 공식적으로 배정된 수업 시수가 없고, 수업을 실험해 볼 기회도 적기 때문에, 수업 기회가 주어지면 늘 최선을 다해 다양한 유형의 자료를 준비했다. 그렇게 주제 선택 활동 시간, 동아리 시간, 방과 후 수업, 교과 간 협력 수업 등을 통해 빠듯한 일정 속에서도 수업의 의미를 배워갈 수 있었다. 때로는 온 힘을 쏟아 준비한 수업이 학생들에게 외면받기도 했고, 오히려 힘을 덜 들여 준비한 수업에서 "재미있고 유익했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기도 했다.


처음엔 준비만으로도 지쳤지만, 시간이 지나며 나만의 수업 방식과 콘텐츠가 정리되자, 어떤 방식일 때 학생들의 배움이 효과적으로 일어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하지만 전달하고 싶은 내용이 많다 보니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것을 설명하게 되어, “설명충”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또, “다른 반은 동아리 시간에 노는데 왜 우리만 수업하나요?”라는 항의를 받기도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동아리 시간도 정식 교육과정의 일부이며, 사서교사가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수업 시간이라는 점을 설명했다. 물론 여전히 불만을 보이는 학생도 있었지만, 생각보다 재미있고 유익했다며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수업을 준비할수록, 사서교사에게도 교과서나 교육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특히 오늘날 학생들에게 가장 필요한 역량 중 하나는 ‘문해력’인데, 그 부분에 있어 사서교사는 분명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과 교과서가 마련되어, 이를 바탕으로 기초 문해력, 디지털 문해력, 정보 탐색 등의 다양한 수업이 운영되길 바란다.


아이들에게 실질적인 배움이 일어나는 수업을 제공하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가 요구하는 교육은 단일 교과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넘나드는 융합 수업이다. 나는 도서관이 그러한 융합 수업이 가장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있는 공간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처럼 개별 교사의 역량과 학교 여건에만 의존하는 구조로는 한계가 분명하다. 이제는 국가 차원의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기반으로, 사서교사들도 자율적이고 체계적인 수업을 운영할 수 있도록 사회적 논의와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 우리도 수업을 하고 싶다. 아니, 하는 김에 제대로 잘하고 싶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주어진 자율 시간 중 일부를 사서교사에게 배정하는 학교가 점차 늘고 있다. 지속 가능하고 질 높은 수업을 위해서는, 사서교사의 기본 시수를 확보하고,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및 교과서 개발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전국의 사서교사들이 보다 자신 있게, 그리고 즐겁게 수업을 준비하고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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