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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un 24. 2016

아침 일곱시, 남대문 시장에는

각자의 하루를 살아내는 모두를 위해 

새봄의 직장생활 생존기-2


평소보다 30분 일찍 일어나 오랜만에 서두르지 않고 출근길에 나섰다.

뒤적뒤적 이어폰을 찾아 귀에 꽂고는 라디오 앱을 실행해 ’ 30대 여성들이 좋아하는 노래’들을 들으며 꽤 마음 촉촉한 출근을 했다. 내가 고른 노래가 아님에도 근사하게 마음에 들었다. ‘역시, 난 특별하지 않구나’. 무난한 취향을 가진 나에게 새삼 감사.

이날 나의 목적지는 명동이었는데, 노래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다 마음이 달떴는지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전에서 내렸다. 덕분에 숭례문 앞에서부터 남대문 시장을 거쳐 짧지 않은 거리를 걸었다. 익숙하지 않은 시장길, 평소라면 온갖 소음과 썩 기분 좋지 않은 냄새 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했을 테지만 이어폰으로 들리는 근사한 노래들 탓인가? 아니면 이른 출근길 서두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활기를 찾아갈 무렵의 시장을 찬찬히 살피며 지났다.

 
 

아침 일곱 시의 남대문 시장에는

아침 일곱 시의 남대문 시장에는 쪼그리고 앉아 마약김밥을 가지런히 정리하는 노점상 할머니가 있다. 우글우글해진 투박한 양은 쟁반이 세월을 짐작케 한다. 참기름을 발라 맨들 거리는 김밥들이 유독 반짝인다.

아마도 할머니는 출근길을 재촉하는 사람들에게 이 김밥을 내놓으려 못해도 두 시간 전부터 몸과 마음이 분주했을 것이다. 쟁반보다 더 우글우글 주름진 얼굴의 할머니가 만든 김밥은 날씬하고 반듯하다.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숨죽여 김밥을 싸면서 그녀는 아들과 딸이 김밥처럼 반듯하길 남모르게 기도했을지도 모른다.

점심부터 손님을 받는 식당은 불을 켜지 않아 컴컴했지만 문이 활짝 열렸다. 열린 문 사이로 덜커덕덜커덕 바쁜 소리가 들린다. 복작대는 움직임 사이 간간히 들리는 옆 나라 말들, 알아들을 수 없지만 웃음기가 섞여 경쾌하다. 불이 꺼진 시간 동안 이 곳은 그들에게 하루 종일 잊고 살아야 하는 고향 말을 꺼내보는 방앗간이다. 당근과 양파가 가득 담긴 광주리가 도란대는 이야기 사이로 쉴 새 없이 들어간다.

수개월 동안 팔리지 않은 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방들은 아침맞이 새 단장 중이다. 가방가게 주인이 가게 앞에 진열해 놓은 가방에 밤새 쌓인 먼지를 꼼꼼히 털고 있다. 나 역시 여러 번 못 본채 하면서 지나갔으면서도, 언젠가는 새 주인을 찾겠지 속으로 응원을 해 본다.

고소한 빵 냄새를 풍기는 빵집이, 아직 가판에 펼쳐지지 않은 물건들이 가득 담긴 가방이, 서로 아침 인사를 나누는 시장 상인들의 목소리가 그 아침 그곳에 있었다. 그저 묵묵한 풍경이다. 누군가의 시선에 신경을 쓸 새 없이 매일을 보내는 그들에겐 특별할 것 없는 하루다.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모두의 하루를 위해

곧 자리를 찾아올 주인을 기다리는 가판대 앞 의자 위에 ‘돈 빌려드립니다’라고 쓰여있는 명함이 나뒹군다. 급전이 필요한, 하지만 은행에서는 돈을 빌려주지 않아 괴로운 누군가가 아무래도 이 시장 안에 조금 더 많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게 만든다. 곳곳이 테이프로 둘둘 말려있는 딱딱한 의자가 왜인지 서글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침마다 나뒹구는 대출 알선 명함을 치우고 그 의자에 앉아 하루를 시작하는 이유는, 곱은 손으로 새벽부터 김밥을 싸고 고향 말을 감춘 채 어눌한 한국말로 손님을 맞는 이유는, 아마도 그들이 책임져야 할 가족이다. 내일은 조금 더 나아지겠지 하는 희망이다. 이 모든 것을 위해 다만 오늘 하루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그들의 염원이다. 그래서, 안쓰럽고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 조차 불청객이다.

사무실에 가까워질수록 자꾸만 무거워지는 내 마음이 나름대로의 하루를 시작하는 그들을 바라본다고 해서 결코 가벼워지지는 않는다. 그것은 나의 몫이고 내 밥그릇을 채우기 위함이다. 내가 책임져야 할 나의 하루다.

다만, 일 하기 싫은 어느 날의 내가 ‘다 때려치우고 장사나 하고 싶다’라며 푸념했던 그 말을 가능하다면 주워 삼키고 싶었다. 나와 조금은 다른 세상의 조각을 맞춰가는 그들의 삶을 잘 알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여겼던 내 나날들이 부끄러웠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아니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게 신사’라고 말했다. 소설 속 인물은 해야 할 일을 하는 사람이야 말로 마치 신사처럼 ‘품격’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 배경과 상황은 전혀 다르지만 그런 의미에서 내가 아침에 만난 모든 사람은 신사다.

그래, 이른 아침 엿본 이들의 품격에 경의를 표하며 나는 품격을 지키기 위해 하루를 시작한다. 쉽지도, 단순하지도, (대부분은) 재미있지도 않은,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나의 일을 해 내면서 말이다.



덧,

 이 글은 신세계 기업 블로그에도 실린 적이 있습니다.(원문) 글쓰기 좋아하는 동생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오라버니가(물론 친남매는 아니고요) 각자의 꿈을 응원하며 함께 만든 '작품'이자 프로젝트입니다. 제가 생각을 담아 글을 쓰면, 김시환 씨는 이에 맞춰 그림을 그립니다. 이번 화는 저의 코워커의 개인 사정으로, 다른 일러스트레이터 분이 그려주셨어요..제 글을 보고 그려주신 그림이라 감회가 남다르네요. ^^

 브런치 매거진 속에서도  '직장생활생존기'라는 미니시리즈로, 간간히 소개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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