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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Jan 20. 2020

책을 사지 않아도 책과 친해질 수 있다

책을 사지 않은 6개월간 책을 끊지 않은 방법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면서 집에서 가장 많이 비워낸 것은 책이었다. 어려서부터 책 욕심이 많았고, 그만큼 책이 많았다. 하지만 그래서 그간 얼마나 많은 책을 읽었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할 말이 없다. 미니멀 라이프에 도전하기 직전 1년간 읽은 책은 채 10권도 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책까지 읽을 여유가 없었다는 그럴듯한 변명이 있다. 하지만 미니멀 라이프 도전 6개월 만에 이 변명이 말 그대로 변명과 핑계에 불과한 것으로 판명 났다. 책을 비우면서 더 이상 책을 구입하지 않았지만 6개월간 내가 읽은 책은 제목을 메모해 둔 것만 55권이었다. 꼼꼼하지 못한 내 성격상 읽고 메모하지 않은 책들까지 포함하면 70권 이상은 읽었을 터, 다독가들에 비하변 보잘것없는 수치일 수 있겠지만 책을 사들이고 모으는 데 급급했던 직전 1년과 비교하면 눈부시게 발전한 성적표 아닌가.




책을 사지 않았으면서도 오히려 책과 친해질 수 있었던 비결은 도서관에 있다. 도서관에 책이 많은 것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직장이나 집 근처에 도서관이 있는 사람이나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빌릴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코웃음을 치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직장인 서울 중구 필동에는 도서관 건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책을 빌린 공간은 필동 경로당 3층이다. 이곳에는 `필동 작은 도서관`이라는 아담한 마을문고가 있다. 회사와는 도보로 5분이 채 걸리지 않은 거리고, 나 역시 10년이 넘게 한 직장을 다니며 근처를 오갔지만 이곳에 마을문고가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꼭 관할 지역에 직장이나 집이 위치해 있지 않아도 서울시민이면 누구나 이곳에서 자유롭게 책을 빌려볼 수 있다. 하지만 규모가 아담한 만큼 보유하고 있는 장서도 적은 편이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마을문고에 있는 경우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적었다.



하지만 상호대차 서비스를 이용하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중구 통합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원하는 책을 검색한 후 `상호대차 서비스 신청`을 클릭하기만 하면 중구에 있는 도서관에 있는 책이 2~3일 내 필동 마을문고에 도착한다. 책이 필동 마을문고에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가 오면 그곳에 들러 책을 빌려오기만 하면 된다. 서점에 가는 것보다도 훨씬 간편하다. 마치 필동 마을문고는 일반 사람들에게는 경로당, 내게는 소설 해리포터에서 마법학교 호그와트로 향하는 9와 4분의 3번 승강장과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작은 도서관(마을문고) 들은 꼭 중구뿐 아니라 서울을 비롯해 전국 곳곳에 숨어 있다. 일례로 내가 사는 집 근처에는 주민센터 2층에 마을문고가 있다. 역시 관심을 두지 않으면 도서관이 주민센터 위층에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란 쉽지 않다. 주민센터 옆 교회 건물에는 어린이 책만 대여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도 있었다. 서울시민이라면 간단한 가입절차를 통해 서울에 있는 도서관·작은 도서관 책을 자유롭게 대출할 수 있다. 내가 서울에 살고 있기 때문에 서울의 예시를 들었을 뿐 이러한 서비스는 전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책이음 서비스`에 추가로 가입하면 서울뿐 아니라 전국의 참여 공공도서관에서 자유롭게 책을 빌릴 수 있다.






사정상 도서관을 방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전자책(ebook) 대출도 가능하다. 전자책은 종이책에 비해 종류가 많지는 않지만 회원 가입만 하면 어디서나 책을 대출해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자책 리더기를 보유하고 있지 않더라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노트북 등 스마트기기에 전자책 뷰어(viewer)만 다운로드하면 전자책을 읽을 수 있다.






일본의 미니멀리스트 아키는 미니멀리스트가 되려면 `필요한 물건은 모두 소유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도서관을 이용하면 책을 보관할 장소를 따로 마련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간소한 삶에도 큰 도움이 된다. 책 `사지 않는 습관`에서는 도서관을 `인류가 생각해 낸 시스템 중에 가장 이로운 것`이라고 표현한다. 전 세계의 고전부터 최신 비즈니스 서적까지 무료로 읽을 수 있고, 대여도 가능한 도서관은 사지 않는 생활을 빛나게 해주는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물론 지금 당장 책에 담긴 정보가 필요할 때에는 주저 없이 값을 치르고 책을 구매해야 한다. 미니멀 라이프는 무작정 소유를 줄이기만 하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책을 무료로, 공간의 낭비 없이 실컷 읽다 보니 한편으로는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 역시도 작가들과 결은 다를지라도 글을 쓰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그들의 노고를 너무 대가 없이 소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죄책감마저 느껴진다.



핀란드와 노르웨이 등 유럽 국가에서는 예전부터 `공공 대출권 제도`라는 게 시행되고 있다고 한다. 공공도서관이 확대되고 무료 대출이 늘어나면서 저작권·인세 수입에 타격을 입은 작가들에게 일종의 보상을 해주는 제도라고 한다. 공공도서관에서 책이 대출될 때마다 저자에게 보상금을 지급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마련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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