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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봄 May 29. 2016

당신이 놓치고 있는 순간들

작은 화면 때문에 잊혀진 빛나는 세계에 위로를 고하며..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차지 않은 바람과 적당한 기온에 모두들 들뜨는, 그런 하루였다. 나 역시 집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길을 나섰다. 나만큼 들뜬 많은 이들이 짧은 계절이 주는 선물 같은 하루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와있었다. 


 오랜만에 나들이를 나온 듯 한 젊은 부부가 유독 눈에 띈다. 모처럼 날씨가 좋아 이제 갓 100일이 지난 듯한 아기도 함께 마실을 나온 모양이다. 엄마는 유모차를 밀고, 아빠는 엄마보다 조금 앞서 걷는다. 살랑거리는 봄바람에 기분이 좋은 아기가 옆에 있는 아빠를 만지겠다고 손을 뻗는다. 고사리 같기도 하고 단풍잎 같기도 한 손이 유모차 밖으로 쑥 나와서는 열심히 아빠의 손을 찾는다. 



하지만 아빠는 정작 스마트 폰을 보느라 그 모습을 놓친다. 아빠의 스마트 폰 화면에는 뭐가 담겨 있을까. 오늘 막 업데이트된 웹툰일지도, 아직 보지 못한 오늘의 주요 뉴스일 수도. 아니면 친구들의 일상과 하소연, 혹은 자랑이 가득한 SNS 일 지도 모른다. 


 그 화면에 무엇이 들었든, 아빠의 체온을 느끼고 싶어 파닥거리는 아이의 손짓만큼 감동적이고 흥미로울까. 몇 번이나 유모차 밖으로 나오던 작은 손짓은 이내 지친 듯 굼떠지더니 다시 안으로 쏙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유모차를 밀면서도 카카오톡으로 수다 삼매경에 빠져있던 엄마는 자기 앞에 턱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한다아마 산후 조리원 동기들과아니면 인생 선배들과 육아에 대해 진지한 상담을 털어놓고 있었을 수도 있겠지하지만 아이는  사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덜컹대는 유모차 속에서 작은 사고를 경험한다휴대폰을 떨어트릴   엄마는 잠시 놀라더니 다시 메신저 창으로 시선을 향한다

 

  지하철 안에서는  다른 아이와 엄마를 만났다오랜만에 엄마는 아이에게는 ‘이모’라고 불리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바람을 쐬러 가는 길인 듯하다. 몇 정거장이 지나도록 자기한테  눈길 한번 주지 않는 엄마가 원망스러운 아이가 엄마의 옷가지를 잡는다놀아달라고나랑도 이야기를  달라고조르는 아이에게 엄마는 ‘잠깐만’이라고 말하며 가방을 뒤적이더니 스마트폰을 꺼낸다. 이윽고 터치 몇 번으로 게임 어플을 실행시킨 뒤 다시 아이에게 쥐어준다. ‘어디까지 얘기했더라?’ 그녀들은 다시 대화를 이어간다. 엄마의 옷을 잡던 아이의 손에는 이제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뭔가 닮은 느낌의 세 가지 장면이 내 앞에 스치자 나는 몇 년 전 저 세상으로 가 버린 스티브 잡스에게 새삼 고마워졌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아이폰 개발을 미뤄준 그의 ‘배려’ 덕분에 내가 사랑과 관심이 풍족한 어린 시절을 보낼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30 전에 비해 세상은  없이 풍요로워졌지만, 작은 화면 때문에 놓친 사소한 감동의 순간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기억에는 없지만 어린 시절 수도 없이 나와 눈을 마주치려 애썼을 젊은  엄마 아빠에게도 사무치게 고마웠다그들이 나와 눈과 볼을 맞댄 시간만큼  마음의 키가 자랐을 것이다. 엄마와 아빠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보고 사랑을 배웠을 것이다그들이 잠시 세상에서 관심을 거두고 ‘나’라는 작은 생명체에 온전히 관심을 기울였던 순간순간마다 그들의 눈빛으로 만들어진 나의 세계가 한없이 커졌을 테지. 언젠가 태어날 나의 아이에게도 그런 세계를 만들어 주고 싶다. 빛을 내는 네모나고 작은 물체보다 자기 자신이 훨씬 빛나는 존재라는 것을 잊어버리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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