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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바이킹 Jul 24. 2017

언제쯤 안정될 수 있을까

20/  불안이 불안한 김대리에게



"남들이 들으면, 미친 소리라고 하겠지."  

K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올봄부터 토요일마다 함께 남산 달리기를 하고 있는 그녀는, 나와는 대학 동창이자 주말의 러닝 메이트다. '토요일마다 달리기'라는 말이 주는 뭔가 있어 보이는 느낌과는 달리, 주중 이미 모든 체력을 소모해버린 직장인 둘은 언제나 무리에서 가장 없어 보이는 모습으로 번갈아 꼴찌를 담당한다. 사실, 우리의 진짜 접선 목적은 운동을 핑계로 매주 찍는 먹방, 그리고 오후 내 이어지는 각종 고민 -불안, 불만족, 걱정, 뒷담화- 공유 타임에 있다. 소모한 칼로리를 다시 그대로 입에 집어넣으며 K는 덧붙였다.

"회사에 나가 일만 하는 시간이 너무너무 불행해. 내 시간을 쓰레기통에 마구 처박는 느낌이랄까."


K는 공무원이다. 따라서 그녀의 '회사'는 이 나라 정부다. 고등학교 때부터 2G 핸드폰에 '미래의 공무원' 여섯 글자를 박아 넣고 공부했을 정도로 그녀는 쭈욱 '안정적으로' 공무원을 꿈꿨고, 계획대로 대학을 입학한 이듬해 신림으로 갔고, 오래지 않아 진짜로 꿈꾸던 공무원이 되었다. 또래 모두가 여러 번의 진로 변경과 거지 같은 연애 실패에 허덕이던 서른, 그녀는 결혼했다. 아마 뭇사람의 부러움을 샀을, 직업도 성격도 참 안정적인 남자와.


이 나라에서의 '안정 레벨'로 따지자면 소름 끼치게 완벽한 스펙의 그녀를 몇 년째 괴롭히고 있는 고민은, 그녀 말마따나 남들이 들으면 미친 소리라고 할 만한 그것은, 그러나 놀랍게도 이러하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안정될 수 있을까?"




/

평일 저녁 영어 학원에 가면


대체 무엇이 되어야 할지 몰라 불안했던 20대를 지나 일단 뭐라도 되고 난 후의 30대 초년생은, 혼란스럽다. 기대와는 다르게 여전히 불안해서. 분명 한때 너무나 간절했던 것 중 조금은 이루었고 죽어라 애쓴 시간들은 취업이라는 이름의 보상을 받았는데, 왜 마음은 여전히 쫄리고 방황하기를 멈추지 않는 건지. '자, 취업을 했으니 이젠 안정을 좀 취해 볼까?' 하는 순간, 마음 어딘가에서 '응, 아니야' 하는 대꾸가 들린다. 초반 얼마간의 경험을 통해 일만 죽어라 하는 건 좋지 않다는 깨달음을 얻었고, 그렇다고 일은 일대로 두고 전혀 다른 취미 활동을 하자니 언제 이 일을 그만두게 될지 몰라 왠지 무엇이든 써먹을 수 있는 걸 해야 할 것 같다. 수시로 밀려오는 불안함과 헛헛함에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배워본다. 자기 계발! 직장인 버전의 안정적 취미활동이다. 평일 저녁 강남이나 을지로 등지의 영어 학원에 가면, 오만 군데의 사원, 대리, 과장들이 빼곡히 모여 앉아 "How was your day? — It was great!" 뻥을 치며 더듬더듬 그 날의 불안함을 달래고 있다. 대부분은 아직 머릿속에 널브러져 있는 내일의 할 일들을 미처 주워 담지 못한 채로, 야근과 팀장님의 잔소리를 끊고서, 아마 김밥이나 샌드위치를 대충 입에 뜯어 넣은 후에.


주말의 달리기 모임, 독서 토론회, 재테크 스터디, 가죽공예 클래스 등 각종 배움과 경험이 있는 곳엔 진짜로 그것에 관심이 있어서 온 사람들의 열정과 왠지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온 직장인들의 불안함이 공존한다. 밑 빠진 독처럼 채워도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그 어딘가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시작들을 반복하는 우린, 가끔 많이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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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안정적이지 않다는 생각


K와 나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가장 큰 불안요소였던 취업이 해결된 후에도 '아직' 안정이 되지 못했는데, 도대체 무얼 이룬 후라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병인가?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멀쩡한 직업을 가진 젊은이들이 허구헌 날 디스코팡팡 난간에라도 매달린 양 불안해하며 안달복달 살아가는 것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대체 이 끝없는 불안정함의 정체는 뭘까? 인생을 바쳐 [대입→취업→독립→이직] 등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후에 밀려드는 허무함? 아니면 너무 해야 할 것들이 많은 인생을 살아온 나머지, 계속 뭔갈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관성의 법칙 같은 거라도 생긴 건가? 그럼 '아직' 남아 있는 [결혼→출산→육아], 혹은 [승진→주재원→이직 2, 이직 3...]등등을 계속 클리어하고 나면, 그런 뒤에는 마침내 'inner peace'가 찾아올까?


더 이상 잡아 뜯을 머리가 없을 즈음, 다른 의문이 생겼다. 반드시 안정적이 되어야만 한다는 이 강박은 어디서 오는 거지? 스스로 안정적이라 말할 수 없으면 평생 행복이란 것 근처에도 가지 못할 것처럼. 우리가 그토록 고파 하는 안정적인 상태, 말해 보자면 '내가 선택한 직업에 대해 한 터럭의 의심도 들지 않으며 마음속 불안함을 없애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필요 없는' 상태란 게 말이 되기는 하는 건가. 그리고 그 안정이란 건, 꼭 하나의 직업으로만 이룰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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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필요조건


적어도 직업에 있어 '안정'이라는 두 글자는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 '철밥통'을 의미했다. 그러니까 자주 바꾸거나 땜질할 필요 없는 더 튼튼한 밥통을 주는 직장이, 더 안정적인 직장이었다. 그런 곳에 다녀야만 안정적으로 돈을 모아 집도 사고, 안정적인 배우자도 만나고, '평범한' 삶을 안정적으로 누릴 수 있다는 게 정설이었다. 물론 직장, 집, 배우자의 삼박자는 결코 평범한 포트폴리오가 아니다. 하지만 대다수가 '적어도 그 정도는 되는' 삶을 살기 위해 평범하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며 이를 악물고 살았다. 안정적인 직장이, 안정적인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다고 믿었다. 적어도, 우리 부모 세대는 그랬다.


우리는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랐다. [안정적 직장 = 행복한 미래]라는 등식에 길들여지며 인생에서 그것을 성립시키기 위해 우리도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막상 직장을 얻고 나서 보니 이것이 그 안정적인 상태가 맞는지 아리송하다. 우리가 자라 온 세상과 일해야 할 세상은 그새 달라졌다. 말도 안 되게 많은 직업이 생겼고, 없어졌고, 변했다. 내가 중학생 때 우리 엄마가 '돈 못 번다'며 뜯어말린 직업은 현재 최고로 각광받는 직업 중 하나가 되었다.(어머니!) 더 이상 하나의 직장에 머무는 것이 꼭 안정적인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게 되었고, 모두가 추구했던 정답과는 관계없이 세상의 선택지는 다양해졌다.



어느 회식 자리에서 50대 상사가 이런 농담을 했다. "직장생활 별거 없어. 20대엔 20평, 30대엔 30평, 40대엔 40평, 50대엔 50평을 목표로 하고 살면, 대~충 맞아." 주변에선 허허허허 웃음이 터졌고, 30평은커녕 30㎡도 안 되는 월세방에 사는 그 자리의 30대들은 차마 웃지 못하는 입에 고기를 쑤셔 넣었다.


그의 말처럼 누군가 30대에 30평을 가능하게 해줄 직장에 다닌다 해도, 지금의 사회에서 그것이 모두에게 안정적인 직업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요즘의 직장인들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사람보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이 더 부럽다. 좋아하는 일을 찾을 때까지, 혹은 직장이 달라지더라도 나의 능력을 여전히 적용 가능한 "그 직업"을 찾을 때까지, 스스로의 직업적 상태를 안정적이라 규정하지 않는다. '안정적인 직장'이란 행복의 충분조건으로서 여전히 유효하지만, 이젠 반드시 그것만이 행복의 필요조건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일생동안 가지게 될 직업의 수가 늘어나면서, 내가 안정적인 회사에 다니는가 만큼 내가 '안정적인 인력'인가의 여부가 중요해졌다. 그래서 오늘 저녁 영어 학원에서는 오만 군데의 사원, 대리, 과장들이 모여 더듬더듬 뻥을 치고 있는 거다. 앞으로의 세상이 또 어떻게 바뀔지 몰라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서, 지금은 일단 뭐라도 하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나는 '아직' 안정적이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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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불안하지 않다


'안정적 직업'의 의미 자체가 변했기 때문에, 예전의 [일단 직장에만 들어가면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명제는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 따라서 남들 보기에 좋은 직장을 얻었는데 정작 본인은 행복하지 않다거나, 취업한 지 십 년이 다 되어 가는데 계속해서 진로 고민이 된다거나, 남들보다 잦은 이직을 한다거나 해서 스스로 그것을 이상하다거나 뭔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할 필요는 없다. 첫 번째 직장을 갖는다는 것이 더 이상 안정을 담보하지 않는 세상에서, '불안'이란 불안한 어떤 소수의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당연한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K는 본인의 이름이 새겨진 철밥통을 끌어안고 몇 년간 뼈가 시린 고뇌의 시간을 보낸 후 깨달았다. 어쩌면 이 밥통은 그녀에게 아주 튼튼한 족쇄일 수도 있겠다는 걸. 그녀가 깨달은 진짜 그녀의 모습은 이 튼튼한 밥그릇에 평생 같은 밥을 담아 먹는 사람이 아니라, 어디에서든 자유로이 밥을 먹을 수 있는 튼튼한 숟가락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K는 고민하던 시간을 쪼개 야간 대학원을 갔고, 드문 드문 독일어를 공부하고 있다. 여전히 자주 나를 만나 고민 공유 타임을 갖는다. 그녀가 꿈꾸는 20년 후 그녀의 모습은 모 부처 장관이 아니라 번역가이자 필라테스 강사이자 훌륭한 엄마다. 얼핏 듣기엔 뭔가 비현실적이고 불안정한 것 같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목표가 이유도 모른 채 공무원 하나만 보고 달리던 예전에 비해 훨씬 더 안정적이고 현실적이라 느낀다.


안정이라는 게 '드디어 내가 가진 모든 것에 100% 만족하고 가만히 있게 되는 상태'를 뜻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내게 어울리는 삶의 형태가 무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흔들리며 나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다면, 그런 고민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삶의 궤적을 그려 가는 것도 지금의 우리에겐 안정적인 삶의 태도가 아닌가— 하는 합리화를 해 본다. 그러니 동지 여러분, 내 안의 불안과 화해를 하고, 느긋하진 못해도 조금이라도 마음 편히 내 오늘과 다음 오늘을 고민해 보자.





| 신입 영업사원, 신입 카피라이터로 두 번 입사한 8년 차 직장인. 여전히 변비 같은 진로 고민 진행 중.


*커버 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babuminja/1587687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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