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크는 내내 공부해라, 일찍 일어나라 잔소리 한 적이 없었다. 하고 싶은걸 하며 살으라고, 늘 최선을 다해 응원하고 지지해 주었다. 재수하겠다고 했을 때는 서울로 보내주었고, 박사과정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는 앓아 누운 아빠 대신 등을 떠밀어 주었다. 창업을 하고 이런저런 일을 겪을 때도 늘 엄마는 네 선택을 존중한다는 말 뿐이었다. 그런 망아지 같은 딸이 마흔에 데리고 온 남자랑 결혼을 하겠다더니, 결혼하고 일년 만에 네명의 조카들을 키우겠다고 나섰다. 그래도 앞에서 싫은 티 한번을, 안된다 반대 한번을 한 적 없었던 우리 엄마.
그래서 나는 건방지게도 엄마는 내 마음을 다 안다고, 나를 100% 이해한다고 착각했다.
셋째 이모네 집에서 다섯 이모가 모여 술을 한잔 한 날, 엄마는 처음으로 딸을 잘못 키운 것 같다며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지 하고 싶은대로 훨훨 날으며 살으라고 키워놨더니 뻐꾸기 새끼들 키우느라고 내 딸이 닳고 닳는 닳는 다고. 다섯 이모 중 딸이라고는 나 하나였으니, 내가 엄마만의 딸이었을까. 늦은 밤까지 속상함에 훌쩍이는 소리에 사촌 동생은 내가 밉고 원망스럽고, 안쓰러웠다고 한다.
나도 누군가의 딸임을, 누군가의 자식임을, 누군가의 전부임을 잊지말아야지. 자랑스런 딸은 못 되도, 부끄러운 딸은 되지 말아야지.
엄마, 진짜진짜 사랑하고 존경해요.
#딩크인데애가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