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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수운 작가 우듬지 Feb 18. 2020

마스크가 지배하는 풍경

코로나 바이러스 이후


나는 페이스 인식 기능이 되는 아이폰을 쓰고 있다. 요즘은 페이스 인식이 안돼서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른다. 마스크를 쓴 내 얼굴을 아이폰이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현재 코로나 바이러스로 몸살이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상륙한 지 두 달이 넘어가고 있다. 백화점의 풍경도 사뭇 심란하다. 지난주에는 급작스레 정기휴일이 결정되어 백화점 전체 방역을 했고, 모든 데스크 및 매장에는 손소독제가 비치되었으며, 전 직원이 마스크를 착용한 채 일을 하고 있다. 물론 백화점이 이렇게 나름의 철저한 모습을 갖추기까지도 참 지난한 과정이 있었다.


처음 코로나 바이러스가 뉴스에 소개(?)되기 시작할 때, 백화점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몇몇 고객밖에 없었다. 이미 뉴스를 통해 공포를 접한 고객들은 마스크를 쓰고 어딘가 불편해 보이는 모습으로 백화점을 돌아다녔고, 정말 예민한 극 소수의 고객들만이 손에 니트릴 장갑까지 낀 채 방문을 했었다. 그때는 이 바이러스가 그렇게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메르스가 그랬고 신종플루가 그랬듯 그냥 '먼 지역 아무개가 걸렸다더라' 하다가 금방 잠잠해질 줄 알았다. 아마 처음엔 백화점 측에서도 그렇게 안일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인지하게 되자 뒤늦게 불안해졌다. 생각보다 많은 고객들이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자 마스크를 쓰지 않은 우리 직원들이 위험하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직원은 백화점에서 마스크 착용을 지시해야만 마스크를 착용할 수 있는 위치다.)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언제든지 고객이 튀길 수 있는 침방울에 무방비로 노출된 우리 직원들은 대체 어쩌라는 거지. 왜 위에선 아무 말이 없는 거지. 죽어도 고객이랑 소통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건가. 불안을 넘어서서 회사를 향한 분개심이 치밀어 오를 때쯤, 한 고객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안내데스크 직원에 불만을 느껴 컴플레인을 걸었다. 그다음 날부터였을까. 비로소 심각성을 인지 한듯한 백화점은 부랴부랴 매장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할 것을 권고했다. 곳곳에 손소독제도 함께 비치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된 지 한 2주가 된 것 같다. 이제 백화점의 이 '마스크 풍경'은 일상이 되었다. 출근하면 직원들은 마스크를 쓰고, 역시나 마스크를 쓰고 온 고객을 상대하고, 서로 입 모양을 볼 수 없어 고객 응대 과정에서 목소리는 점점 커지지만 아무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는다. 피차 침방울에 맞아 사망하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겠지.


코로나 사태로 인한 백화점 풍경에도 이른바 '동향'이라는 게 생겼다. 사태의 초기에는 고객들의 방문 자체가 뚝 끊겼었다. 그런데 이제는 모두들 마스크를 '단단히' 쓴 채 열심히 백화점을 다시 방문하는 추세다. 우리 데스크는 보통 방문건수가 200건을 넘으면 '많이 왔다'고 치는데, 코로나로 난리인 이 상황 속에서도 요 며칠 계속해서 200건을 넘기고 있다. 아마도 이제 사람들이 코로나 사태에 어느 정도 적응을 한 것으로 짐작된다. 처음엔 바깥활동 자체를 꺼리다가, 이제는 자신의 생활방식에 코로나 대처법이 뿌리를 내린 모양이다. 역시나 바이러스가 어떻다 저떻다 해도, 여전히 인간은 식료품을 구입하고 소비활동을 하러 밖으로 나와야 하는 존재인 것이다. 요즘의 고객들의 표정을 보면, 정부의 지침대로 완전무장을 했으니 더 이상 자신의 활동에 제제를 받지 않겠다는 굳건한 의지가 보인다. 그러고 보면 인간의 적응력은 참으로 놀랍지 않을 수가.


코로나 사태에 착실히 적응 중인 건 우리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왜 우리 백화점은 휴점을 안 하냐, 미친 것 아니냐 열띤 토론을 했지만, 이제는 그냥 성실히 출근해 매일매일 그날 지급받은 마스크를 당연하듯 챙기고, 착용하고, 그 사이로 번진 화장을 잘도 수정한다. 완전히 루틴이 되어버렸다. 물론 우리가 쓰는 마스크는 뉴스에서 권장하는 kf94짜리 고급 마스크는 아니다. 비싸기도 하거니와 매일매일 전 직원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런 고성능 마스크는 '지급용'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일 테니까. 하지만 '마스크 언제 줘 - 왜 안 줘 - 우리 죽으라는 거야?' 하던 불안을 겪어서인지 이제는 그런 생각이다. 기능이 한참 떨어지는 마스크면 어떠랴. 우리한테 공짜로 지급해주는 게 어디야. 뭔가를 입에 덧대 고객의 침방울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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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웃의 L 백화점 본점에서는 확진자가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스물몇 번째 확진자라더라? 그 고객이 다녀간 뒤 L 백화점은 3일간 임시 휴점을 했다. 백화점 직원으로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 하루만 운영을 안 해도 타격이 클 만큼 백화점의 하루 매출은 상상 이상으로 큰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무려 3일이나 쉰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없을 규모로 타격이 클 것이었다. 어디 그뿐이랴. 확진자가 다녀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흉흉한 소문이 돌고 돌아 앞으로의 고객의 발길 또한 저해할 것도 분명했다.


L백화점의 임시휴업 뉴스를 접한 나의 친정엄마는, 딸이 온갖 사람들이 방문하는 백화점에서 근무한다는 것이 초조했는지 거의 매일같이 카톡을 보내오고 있다. 마스크는 잘 쓰고 일하는지, 출퇴근 길에도 마스크를 끼는지, 쓰고 있는 마스크는 kf80 이상인지 말이다. 요 며칠 전에는 근무에 쩔어 심드렁하게 "코로나고 나발이고 될 대로 돼라, 죽을 사람은 죽겠지"하는 나의 반응에 놀랐는지, 엄마는 세종에서 분당까지 마스크 몇십 개를 택배로 보내오기까지 했다. 엄마에게 미안했다. 일을 하다 보면 마스크를 끼는 것 자체가 짜증 나고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랴 싶은 순간들이 많은데, 그때마다 엄마가 보내온 아주 다양한 종류의 마스크들을 보면서 한 번씩 깨닫곤 한다. '아 맞아, 심각한 상황이지 참'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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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백화점을 비롯한 여러 백화점들이 지난 10일, 방역을 했다. 여전히 고객들은 마스크와 니트릴 장갑을 끼고 방문을 한다. 가끔 손으로 직접 태블릿을 눌러달라고 하면 버럭 성질을 내는 고객도 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이 눈만 내놓은 채 하관을 마스크로 가리고 다니는 것이 이제 당연해진 풍경. 서로에게 침이라도 튈 세라 눈을 흘기고 다니는 풍경. 한 번씩 그 풍경이 씁쓸하게 느껴지곤 한다. 언제쯤 이 사태가 끝나게 될까. 무엇보다, 마스크 안으로 습기가 차서 화장이 지워지고 피부 발진이 일어나며 답답하고 찝찝한 이 상태를 대체 언제까지 유지해야 할까. 


쓰레기통에 비비크림이 잔뜩 묻은 마스크가 쌓여간다. 2월이 지나면 꽃이 피기 시작할 것이다. 목련과 개나리와 진달래 그리고 벚꽃이 차례차례 피어나겠지. 그러면 우리는 꽃구경을 가야 한다. 바깥에서 봄내음을 맡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 그때쯤이면, 부디 잠잠해질까. 생각보다 길어지는 코로나 사태에, 조금씩 지쳐간다. 우리가 원래 당연하게 영위했던 활동들을 언제쯤 다시 자유로이 할 수 있을까. 장갑과 마스크 없이 온전한 우리의 육체와 감각으로 말이다.





2020 일상의짧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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