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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대의 문

by 임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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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Neulbom Lee



어제는 막내가 덴마크에서의 한달 여정을 마치고 베를린에 도착하는 날이었다. 8시간의 장거리 버스를 타고늦은 밤, 낯선 도시 외곽의 터미널에 도착해 먼 곳의 숙소를 찾아가야 하는 형편이었다. 독일에 1년 교환학생을 했던 언니는 여러가지를 고려해 환승없이 도착가능한 지하철 역 근처 게스트 하우스를 예약해 주었다. 스물한 살 장거리 여행은 처음이었으나 두려움 가득한 여행자는 아니었다. 초등학교 5학, 낯선 도시에 살아보고 싶다며 할머니 댁에서 북한산 초등학교를 이년간 혼자 다녔던 독립적인 아이였다. 서울에서 화성까지 주말이면 두 시간이 넘는 먼 길을 대중교통으로 오가던 이력으로 낯선 도시의 밤 정도는 감당가능한 여정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유럽의 밤과 밤과 거리가 그리 친절하지도 한국처럼 편리하지도 않다는 것을 익히 아는 터라 한밤중 짐을 들고 낯선 길을 찾아가는 고단함에 마음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코펜하겐에서의 출발이 가까워 오던 어느날, 베를린의 지인, 정순영 선생님이 두어달 전 이야기한 일정을 기억하고 연락을 주셨다. 너무 늦은 밤 도착인지라 호스텔을 예약해 두었으니 걱정마시라 했으나 걱정을 거두지 못하셨다. 늦은 밤 황막한 터미널에 도착해 혼자 한 시간 거리의 숙소를 찾아가는 일은 얼마나 막막한 일이겠느냐며 마중을 나오겠다고 계획을 세우셨다. 이미 숙소는 환불불가라 그리 가야 한다고 말씀드렸으나 결국 그 늦은 밤 남편과 함께 한 번도 마주한 적 없는 스물 한 살 여행자를 마중해 집으로 데려가 주셨다. 덕분에 염려대신 평온으로 밤을 지내고 시차에 맞추어 늦은 아침 연락해보니 한식이 그립지 않겠느냐며 조반을 차려주신다 하여 기다리고 있다한다. 친척도, 지인도 아닌 심지어 한 번도 본 적 없는 청년의 두려운 밤과 고단함을 헤아려 잠자리와 조반까지 준비해 준 그 마음... 그 식탁에 내가 앉은 것마냥 따순 밥 한 술 한 술 목울대가 뜨거워졌다. 어젯밤 환대에 기대어 편안히 잠들 수 있었던 것은 베를린의 슬빛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가진 것 없는, 가지려 하지 않는 부모 밑에서 자라나 어른이 된 아이들은 뒤늦게 부모의 삶을 바라보며 "그렇게까지 덜어내는 쪽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었을까?" 되묻곤 한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답이 부모의 선택이었을 뿐임을 가늠하며 아이들은 그 삶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이 지불한 값을 헤아려보곤 한다. 그 물음 앞에 우리가 버린것은 헤아릴 수 있으나 얻은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면 함께 걸어온 다른 세상의 지도를 펼쳐보곤 한다.


순영샘의 환대에 마음이 뜨거워지던 밤, 오래 전 중동에 처음 도착해 가가호호 사람들의 집을 방문하던 날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전쟁 통 가난한 살림살이에도 찾아온 손님에게 귀하고 좋은 것을 내어주려 애를 쓰는 사람들의 지나친 환대에 놀라고 감복하다 지쳐, 안내해주시던 수하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왜 이곳 사람들은 이토록 척박하고 빠듯한 삶 속에서

이렇게까지 극진하게 사람을 맞이하고 환대하는 걸까요?"


수하드 아주머니는 가만히 생각하시더니 "척박하고 빠듯한 삶이니까요"하고 답하셨다.


"생각봐요. 우리가 사는 곳은 사막이잖아요. 오늘 밤 내가 집 앞에 도착한 나그네가 두드리는 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면 저 사람은 어떻게 되겠어요? 누구도 환대의 문을 열지 않을 때 그 사람이 어떤 밤을 맞이할 지 우린 알고 있기 때문인거죠. 오늘 이 밤, 낯설고 두려운 이에게 열어주는 이 문이 언젠가 내 소중한 사람이 사막을 건너다 낯선 곳에 도착한 막막한 밤, 환대의 문이 되어주기를 소망하는 믿음을 내보내는 거죠. 우리 그 환대에 기대지 않으면 이 사막을 건널 수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그제사 사막 한 가운데 오아시스가 희망이 되어주는 것은, 샘이 아니라 그곳에 삶이 있기 때문이며 그 문을 열어 환대해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임을 깨닫는다. 어쩌면 지난 밤, 순영샘이 베풀어 준 환대는 그녀가 도착했던 수많은 낯선 밤과 막막했던 순간들, 이국의 사람으로 베를린에 도착해 때로는 두드리지도 못한 채 돌아섰을 수많은 문들, 혼자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울었을 막막했던 이국에서의 밤들이 켜켜히 쌓여 만들어진 환대의 문 아니었을까...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을 덧입었으나 베풀어 주신 환대를 되갚을 길은 없다. 다만 내게 찾아올 낯선 이를 향해 내 몫의 환대를 내어주기 위해 문 한켠을 열어둘 뿐이다. 그것이 우리가 두려움 대신 환대와 연결의 장소를 만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길 위에서 배우고 익힌 까닭이다.


혼자 처음 먼 길을 떠나 낯선 도시에 도착한 어린 딸에게 아득한 이야기를 건네어 준다.

"낯선 곳에 다다른 밤, 누군가 너에게 환대의 문을 열어주었다면

그건 네가 사막을 건넜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사막을 버텨왔기 때문이라고...

그 마르고 척박한 광야에서 두려움 대신 환대를 선택한 마음의 지층들이 켜켜히 쌓여

오늘 너에게 그 문이 열리는 것이라고.. 오래전 사막에서 들었던 환대의 문 이야기를 건네어 준다.



"막막하다, 할 때

이게 사막의 '막'자에요.

어디로 가야 할 지,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는 거에요.


분명한 건, 이 막막함은 좋다는 거에요.

또는, 좋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에요.

바다 한 가운데서 바라보는 막막함

그 막막함으로 들어가면 누구나 수도자가 돼요.


씨앗 하나가 자랄 때 얼마나 막막하겠어요?


막막함은 시작도, 끝도 막막해요

수평선과 지평선의 막막함...

막막함은 내 손에서 빠져나가는 것,

끝끝내 닿을 수 없는 것이에요.


이 막막함이 글에는 생명을 주고

글쓰는 사람을 정화시켜요.

항상 막막함을 앞에다 두세요.

그러면 바르게 판단하고, 바르게 쓸 수 있어요"


- 이성복 시론, "불화하는 말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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