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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항대신 공원을!

by 임영신

바르셀로나에 머물고 있던 2023년 가을, 한국에서 한 컨퍼런스의 초대장이 왔다. 초대장을 보낸 곳은 부산 가덕도 신공항팀에서 준비하는 에어시티 컨퍼런스, 지속가능한 에어시티 개발을 위해 각계의 전문가를 초대해 개최하는 컨퍼런스였다. 마침 바르셀로나에서 참여하고 있던 컨퍼런스는 아이러니하게도 바르셀로나 제 2공항을 반대하는 주민과 지역활동가, 공정여행전문가들이 모인 포블레노의 지속가능한 책임관광 로컬 컨퍼런스였다.

그날 모인 사람들의 요구는 새로운 공항이 아니라 탈성장, 관광에 지나치게 의존한 바르셀로나 경제의 다양성을 회복하고 보다 지역에 뿌리내린 사회연대 경제를 통해 관광을 보다 책임있고 공정한 것으로 전환해 가자는 로컬 컨퍼런스였다. 가덕도 신공항뿐 아니라 제주 제 2공항을 비론 전국에 준비 중인 10개의 공항, 그 공항을 만들어 가는 지역개발의 주장들 위로 공항대신 공원을 택하는 베를린 템펠호프를 찾아갔던 베를린 여행이 떠올랐다.

download.png 시민들의 주민투표로 보존된 템펠호프

https://www.tempelhoferfeld.de/service-infos/presse-news/detail/mit-neuen-rueck-und-ausblicken-in-die-saison-2022/


공항에서 공원으로, 베를린 템펠호프 여행

베를린 템펠호프 공항에 처음 다다른 것은 베를린 공대 도시설계학과 마이클 라퐁드 교수와 생태주의 공동체 우파파브릭이 개최한 실험적 날들(https://experimentdays.de) 축제에서였다. 우파파브릭을 중심으로 베를린 곳곳에서 3일간 이어진 실험적 도시들에 대한 여러 컨퍼런스와 세션 중 하나가 템펠호프 공항 투어였다.

베를린 템펠호프는 1941년 개설되어 나치의 주요한 공군기지로 쓰였던 유서 깊은 장소였다. 2008년 폐쇄된 후 남은 공항 부지와 활주로, 건물들을 재생해 2010년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전환되었다. 도심유후지 재생의 사례로도 탐방을 많이가는 제법 알려진 공원이었다. 그러나 그 공원이 어떻게 공항에서 공원이 되었는지, 도심 한가운데 어떻게 1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땅이 개발되지 않는 빈 공간으로 유지될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도시재생 공원, 템펠호프

베를린 시는 나치 당시 주요시설이었던 템펠호프의 시설들을 부수고 무언가를 다시 짓는 대신 낡은 건물들을 재생하는 쪽을 택했다. 공항의 인프라를 그대로 남겨둔 긴 활주로와 잔디밭, 도심 한 가운데 펼쳐진 확 트인 수평선은 시민들에게 팍팍한 삶에서 숨통을 틔여주는 공간감을 선물해 주고 있었다. 드넓은 공원 곳곳에는 스케이트나 보드,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달리는 사람들로 활기가 넘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활주로 곳곳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스카이보더 들이었다. 낙하산 같은 것을 등에 매고 바람을 이용해 달리다가 높이 날아올라 잠시 비행을 하는듯 머물다 착지하며 다시 활주로를 달리는 진귀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막힐 것 없는 평원에서 바람을 느끼며 연을 날리는 사람들, 한 켠으로 펼쳐진 초원과 도심 숲에서는 텐트와 캠핑도구를 가져와 캠핑을 즐기는 가족들이 평화롭게 공존했다. 다시 상기하지 않으면 여기가 베를린이라는 거대한 도심 한 가운데라는 것을 잊게 되는 목가적 풍경이었다.

여행을 이끄는 라퐁드 교수는 자전거를 타고 거대한 공원의 서쪽 일부를 돌아보며 남은 유휴시설이 어떻게 재생되고 활용되는지 설명 해주었다. 자전거를 타고 20여분 공항을 가로질러 활주로 동쪽 끝에 위치한 템펠호프 도시농장 ‘공동체의 집’에 도착했다. 한창 사람들과 도시 텃밭을 일구던 프란츠가 장화를 신은 채 맞이 해주었다.



공항텃밭.jpg

https://www.tempelhoferfeld.de/fileadmin/tempelhoferFeld/content/06_Presse_und_News/Pressefotos/tempelhoferfeld_pressefotos_projektnutzung_gemeinschaftsgarten_c_manuelfrauendorf.jpg


“템펠호프가 모두의 공유재이듯 농장 역시 사유화하는 대신 ‘모두’와 ‘지역사회’가 함께 일구는 공동체적 도시농장을 표방하고 있어요. 어른들 뿐 아니라 아이들도 참여하고 필요한 사람이 작물을 가져가는 방식이죠.”

도심텃밭 공동체인 ‘공동체의 집’ 한 켠에는 정말 몇 채의 집들이 있었다. 그 집들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공동체의 집을 상상하며 지어볼 수 있도록 허용된 건축 놀이터였다. 톱을 들고 나무를 켜는 아이, 망치를 들고 서툴게 못질을 하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위험하다’는 훈계 대신‘조심하는 법’을 가르쳐주며 아이들의 실험과 창작을 안전하게 돌보아 주고 있었다.

잔디에 둥글게 앉아 활주로에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하며 농장과 템펠호프를 지키기 위해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템펠호프는 보이는 풍경처럼 그렇게 평화롭기만 한 곳은 아니었다. 주말에 시민들이 그곳에 나와 농장을 일구고, 캠핑을 하고 자전거를 타는 일상을 지키기 위해 활동가들은 도심 내 공유지의 필요성에 대해 시의회와 긴 시간 씨름하고 있었다.

단지‘공원’이라고 말하기에 템펠호프는 지나치게 큰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공항의 면적은 무려 106만평, 축구장 420개에 달하는 크기로 세계 3대 도심 유휴지에 속한다고 했다. 그것도 지하철 6호선이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는 요지에, 언덕 하나 없는 평지로 구성된 공유지는 보기 드문 도시의 가용 자산이었다. 특히나 주택난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베를린 시의 입장에서 템펠호프는 누군가를 내어쫓거나 파괴하지 않고 거대한 주상복합 단지를 설계할 수 있는 매우 쓸모있는 유휴지였다.

개발을 반대하는 주민투표

그러나 주민들의 생각은 달랐다. 시 정부의 부지 이용 계획이 발표되자 강력한 반대 의사를 표시하며 수천 명의 시민들이 공항을 점거했다. 주민들이 점거하며 한 일은 그들이 늘 공원에서 하던 일들이었다. 농사를 짓고, 보드를 타고, 캠핑을 하고, 바베큐를 하며 이웃들을 불러 모았다. 그러나 쉽게 흩어지지 않는 이 저항은 경찰과의 충돌을 불러일으켰다. 주민들은 보다 조직적으로 저항하기 위해 2011년, '100% 템펠호프 공원(100 % Tempelhofer Feld)'라는 단체를 결성했다. 그리고 전문가들은 매주 템펠호프 공항으로 가는 여행을 조직해 사람들에게 템펠 호프 공원의 소중함을 경험하도록 도왔다. 그곳에서 텃밭부터 달리기까지 쉼 없이 시민모임을 개최했다. 결국 주민들의 강력한 저항과 요청으로 2014년 5월 25일 탬펠호프 공항의 개발에 관한 주민투표가 진행되었다. 결과는 주민들의 승리였다. 시정부가 주도하는 '민영화', '상업화'를 근간으로 하는 계획에 반대하고, 공항 부지를 공원으로 남겨두자는 안에 주민들의 61%가 찬성표를 던진 것이다.



도시에는 ‘빈 공간’이 필요하다.

템펠호프 공원개발 반대운동에 함께 한 베를린 공대 도시설계학과 마이클 라퐁드는 템펠호프 공원 운동의 의미를 도시전문가의 시선으로 설명해 주었다.

“도시는 삶을 위한 장소죠. 하지만 모든 공간이 쓸모로 꽉 차버리면 창의적이고 실험적인 삶의 역동성은 깃들 공간은 소멸되죠. 도시에 다양한 문화와 시민들의 삶이 깃들려면 공간의 종 다양성이 필요하니까요. 낙후되고 오래된 공간, 그저 텅 빈 공간이 의미있는 이유죠. 베를린이 힙스터들의 성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동베를린의 빈집, 점유가 가능한 텅 빈 낡은 공간들 덕분이었죠. 지금 베를린 시는 밀려오는 관광객을 위해 낡은 것을 없애고 빈 공간에 호텔이며 새로운 건물들로 채우려고 하고 있죠. 하지만 제인 제이콥스가 말한 것처럼 마주칠 공간이 없는 도시에서는 어떤 창의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죠. 민주주의가 피어날 공간은 절멸되구요. 도시에 더 많은 빈 공간이, 광장과 공원이 필요한 이유죠.” 시민들의 요구와 행동대로 탬펠호프는 도심 안의 텅 빈 공간, 모두가 서로를 마주칠 수 있는 텅 빈 장소가 되어 주었다. 2023년 주거난이 심각해지며 다시 템펠호프 개발 논의가 진행되었다는 이야기에 템펠호프의 근황이 궁금해 홈페이지에 접속해 보니 친절한 안내문이 뜬다.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 개방 공간 중 하나인 Tempelhofer Feld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전에 이곳에서 비행기가 이륙하곤 했고, 엔진은 굉음을 내며 등유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라인 스케이트는 매끄러운 아스팔트 위를 굴러가고, 희귀한 종달새의 지저귀는 소리가 공기를 가득 채웁니다. 사람들은 초원에 모여 축하하고 여유롭게 휴식을 취합니다. 2010년 5월 기존 활주로와 녹지공간이 공유지로 개방되며 템펠호프는 대도시 한복판에 사람과 동식물의 오아시스가 되었습니다. 템페호프는 축구장 420개의 크기, 300헥타르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도심 유후지입니다. 넓기 만한 공간은 단조로울 수 있기 때문에 템펠호프 필드Tempelhofer Feld에서는 피크닉, 정원 가꾸기, 자전거 타기 등. 재미있는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아니면 그저 구름아래, 잔디에 누워서 자유가 무한할 수 있다는 것을 감상해도 좋습니다.

템펠호프는 여전히 텅 빈 숨구멍으로 베를린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듯했다. 다시 베를린에 간다면, 템펠호프에 가서 그저 잔디에 누워 무한한 자유를 감상해 보아야겠다. 누군가 베를린에 처음 가는 여정이라면 공항에서 공원으로 전환된 템펠호프의 시공간을 여행하는 템펠호프 투어에 참여할 것을 권해본다. 따라다니는 여행이 싫다면 그저 가서 걷고 어딘가 한 켠에 잠시 머물며 숨을 돌리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그저 구름아래..



→ 템펠호프 영어 가이드 투어

: https://www.thf-berlin.de/ihr-besuch/fuehrungen/english-guided-tour#/

: 소요시간 2시간, 비용 18유로, 월-화 9-4시, 토-일 9-1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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