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코치의 뉴스레터 '리더십의 순간' No. 30)
사업계획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빠른 회사는 8월이나 9월에 사업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해서 늦어도 11월에는 대부분 내년 사업계획을 완료합니다. 올해는 불확실성이 어느 해보다 높아서 일찍 시작한 회사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업계획은 대개 숫자 목표와 과제로 구성됩니다. 숫자 목표는 매출액, 영업이익, 판매량 같이 숫자로 나타나는 목표이고, 과제는 어떤 일을 언제까지 어떤 수준으로 완료하겠다고 하는 계획입니다.
부서나 사업부 단위의 사업계획 초안을 보면 다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숫자 목표는 ‘상저하고’(上低下高)의 모습을 보입니다.
‘상저하고‘는 상반기의 매출 목표를 하반기보다 낮게 세우는 경향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업은 계절성이 있어서 매월의 매출이 연 목표의 12분의 1인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즉, 사업 성과는 계절성을 반영합니다. 그런데 계절성을 감안해도 상반기에 비해 하반기의 목표가 과도하게 높은 현상이 숫자 목표의 ’상저하고‘ 입니다.
이렇게 ‘상저하고’의 숫자 목표를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준비가 필요해서 입니다. 작년 대비 10% 높은 매출 목표를 세웠다고 바로 첫달부터 작년의 110%의 실적이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이달부터 10%를 더 하지 못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10%를 더 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품질 불만이 있었던 제품의 품질개선을 끝낸다던지 신규 고객사에 납품하기 위한 인증을 받는다던지 하는 일을 말합니다. 이렇게 상반기에 준비를 해서 하반기에 매월 20%를 더 하면 올해 대비 연 10%의 매출을 더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준비 작업이 해당 부서 및 관련부서의 내년 과제 목표에 포함되어 있는지 살펴 보아야 합니다. 물론 올해 준비가 되었다면 내년 초부터는 10% 이상 더 할 수 있겠지요.
상저하고의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가능하면 목표 달성에 대해 질책받을 일을 줄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을 때 차질 원인을 분석하고 만회대책을 수립하는 것은 유쾌하지 않은 일입니다. 게다가 새해 초부터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더욱 기운빠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상반기 실적은 소위 ‘안전빵’으로 낮게 세우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업계획 초안에서 관찰할 수 있는 두번째 특징은 과제의 완료 시점이 분기말이나 월말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규모가 큰 과제는 특정 분기말에 완료하겠다고 하고 규모가 작은 과제는 특정 월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문제냐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분기나 월 단위로 계획을 수립하면 늦어질 경우 분기나 월 단위로 늦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빨리 완료된다고 분기나 월 단위로 당겨지는 것은 아닙니다. 잘 해야 월이나 주 단위로 조기 달성하게 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역시 질책 받을 일을 줄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일정 상의 여유가 있으면 아무래도 제 일정에 완료하지 못할 확률이 줄어들 테니까요. 그렇지만 프로젝트 계획을 정밀하게 짜면 큰 과제는 월 단위로 계획을 짤 수 있고 짧은 과제는 주 단위로 짤 수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은 ‘아, 박 코치가 현역 경영자 때는 엄청 깐깐했겠구나.’ 하고 짐작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과제는 분기나 월 단위가 아니라 주 단위로 일정을 정하고 완료보고는 미리 몇월 몇일에 몇시까지 정하라고 해서 불평이 많았습니다. 대신에 저는 숫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혼내지는 않았습니다. 목표 달성을 위한 준비나 과제 수행을 게을리한 것에 대해 나무랐습니다.
사업계획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숫자 목표일까요? 아니면, 숫자를 도출하고 과제를 정하는 과정일까요? 숫자 목표도 중요하지만 숫자를 도출하고 과제를 정하는 과정도 그만큼 중요합니다. 사업계획의 과정은 탑다운(top-down)이든 바텀업(bottom-up)이든 숫자 목표에 영향을 미치는 시장 변화와 경쟁 환경을 살펴보고 할 일, 즉 과제의 내용과 목표 수준과 타이밍을 정하는 일입니다.
목표는 반드시 달성해야 할까요? 세심한 사업계획 수립 과정을 통해 숫자 목표와 과제를 정하고 실행에 옮겼다면 숫자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고 나무랄 일은 아닙니다. 숫자만 보고 질책한다면 소위 밀어내기나 부정한 방법으로 목표를 달성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세우고 있는 사업계획은 내년 초에는 벌써 시효가 지난 것일지도 모릅니다. 사업 경영자의 매순간은 계획을 세울 때의 가정과 지금의 상황을 비교하고 앞으로 할 일을 고민하는 시작점입니다.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지, 더 할 것인지, 덜 할 것인지, 하지 않을 것인지 정하는 일이 경영자의 일입니다.
아직 1분기가 남았습니다. 내년 사업을 구상하시면서 남은 일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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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반 전에 쓴 글이라 시점이 좀...^^